오래전에, 그러니까 벌써 20년이 흘렀다. 첫 아이가 태어나고, 그 기쁨에 인터넷 한자락을 얻어 육아일기를 소소하게 기록하던 때가 있었다. 첫째를 키울때는 짬짬히 여유있는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둘째가 태어나고, 아이들의 활동반경이 넓어지면서부터 그런 여유를 찾기에 내 체력이 감당이 안되었다. 건강이 심하게 나빠져 오랜동안 약물치료가 필요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만큼 초보엄마에게 주변의 도움없이 28개월차 두 아들을 키우는 건 상당히 고된 일이기도 했다.
오랜만에 그렇게 기록해두고 잊고 산지 오래된 그곳을 방문했다. 이름도 바뀌었고, 분위기도 바뀌었지만 20년전 나의 기록들이 고스란히 잠들어 있었다. 오랜만에 들여다보니, 새롭고 신기하기도 하고, 간간히 울컥 울컥 하기도 했다. 아쉬운 건 그 기록이 둘째의 초등입학을 마지막으로 멈췄다는 것이다. 아쉽게도 셋째에 대한 기록은 없다. 한참 늦둥이? 셋째를 키우던 시절엔 뭐가 그리 바빴을까?
첫째가 초등학교 입학하던 그해 12월에 셋째가 태어났는데, 그 이후 스마트폰을 사진첩 삼아 활용하면서 아마 그 공간을 완전히 잊었던 것 같다.
오늘 한가한 틈에 그 공간에 찾아들어 예전 기록을 보다, 그 기억이 떠올라 내 글을 읽으면서도 내 가슴 한켠이 먹먹해졌다. 자그만치 20년 전이다. 이제 그때 그 아기들도모두 성년이 됐을 것이다.
그때우리 첫째가 백일을 며칠 앞둔 시점이었고, 그래서 더 가슴 아팠던 순간의 기억이었다.
그때 그 TV프로그램은 막을 내린지 오래됐지만, 그 프로그램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꽤 있을 것이다.
SBS에서 방영됐던 예능프로그램의 한 코너 사랑의 위탁모!
그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를 울게 했던 해외로 입양간 아이들이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지 너무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다 커서 자신의 뿌리를 찾아 홀로 어려운 길을 되돌아오기전에, 우리가 나서서 그들을 찾아 반갑게 맞이해줄 방법은 없을까?
방송이란 매체를 통해 그들을 다시 한번 만나볼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바램이 있었다.
방송국에 한번 이런 취지의 만남을 추진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제보도 한번쯤 해보고도 싶었다.
'우리가 잊지않고 멀리서 너희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길 두손 모아 기도하고 있었다고.....'
그 말을 전하고 싶기도 했다.
그때 그렇게 이 나라를 떠나갔던 그 프로그램속 아기들중에 내가 기억하고, 기록해 두었던 현규의 모습을 공유해본다.
일요일 저녁나절 우연히 T.V 채널을 돌리다가 여배우 전도연과 개그맨 신동엽이 나오는 '사랑의 위탁모'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내가 채널을 고정했을땐 상당히 진행된 후였는데 잠깐 보면서도 대략 어떤 내용의 프로그램인지 감히 잡혔다. 프로그램 이름에서도 짐작이 가듯 해외입양이 확정된 아기를 출국하기전까지 잠시 맡아 보살펴주는 위탁모의 역할을 우리가 잘아는 연예인이 참여함으로써 연예인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줌과 동시에 국내입양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입양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취지를 담은 프로그램이다.
오늘의 주인공은 현규. 돐이 채 안된 현규는 나의 어림짐작으로 7-8개월정도 된 아이가 아닌가 싶다. 이가 나고 손에 잡히는 것은 무엇이든 입으로 가져가는 아이는 하얀 피부에 아주 똘망똘망하게 생겼다. 그간 전도연엄마와 신동엽아빠의 사랑을 받으면서 많이 정든 모양이다. 오늘은 그간의 정을 뒤로한채 먼나라 미국으로 떠나는 날로써 그 이별을 못내 가슴아파하는 전도연엄마의 눈물이 그들의 이별을 더욱 가슴 아프게 하는 모습이 시종 화면 가득 했다.
새로운 부모와의 만남을 위해 먼먼 미국으로 떠나는 현규는 오늘의 기억은 까맣게 잊은채 한국인이 아닌 미국인으로서 자라나게 될것이다. 채 한살도 안된 아이의 출국을 위해 마련된 대한민국 여권을 보면서 그 아이의 앞날이 너무 가슴 아프게 다가 왔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나 그 조국의 사랑을 채 받아볼 새도 없이 먼먼 이국으로 낯선 사람들과의 새로운 인연을 위해 떠나는 어린 생명들이 지금도 숫하게 많다는 사실에 가슴 한편이 아리하게 아파온다.
오늘 현규는 이 한국땅을 떠나 새로운 양부모와의 소중한 만남으로 어엿하게 성장하여 언젠가는 제 뿌리를 찾아 먼 훗날 이곳을 방문하게 될 것이다. 아무쪼록 새로운 부모와의 인연이 현규에게 행복한 삶으로의 초대가 됐음하는 바램을 담아본다.
그 맑고 초롱초롱한 현규의 눈망울과 이쁜 모습이 쉬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그 귀여운 녀석이 맺을 새로운 인연의 끈이 진정 이 땅에서는 없었단 말인가?
그런 애기를 했다. 아직까지도 혈연에 대한 끈끈한 정이 남다른 우리나라에서는 입양을 하더라도 남들 몰래 그리고 그 아이도 그런 사실을 모른채 살아갈수 있도록 신생아 입양을 선호하고, 호적관계 및 유산상속 같은 문제를 고려해서 남자아이보다는 여자아이를 선호한단다. 얼마나 이기적인 어른들의 생각이냐고 진행자는 그 한마디도 잊지 않았다.
나도 지금 세상 태어난지 100일이 다 되어가는 한 아이의 엄마다. 그래 그런지 현규의 모습이 어찌나 가슴 아프게 전해오던지.... 예전엔 느끼지 못했던 전혀 뜻밖의 기쁨과 감동을 아이를 통해서 알아가고 있는 나이기에 현규 역시 부모에게 그런 기쁨과 감동을 주는 존재일텐데 무슨 인연이 기구하야 그 먼길을 떠나게 되었는지 못내 지켜보는 내내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입양은 사랑의 실천이라고 말한다. 나은 정보다 그 자라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기쁨이 더 크다. 내 아이이기 때문에 이쁘고 귀하게 생각되는 것 이전에 아이란 존재 자제가 이쁘고 귀하고 기쁨이라는 생각을 아이 엄마가 되어 하게 되었다.
사실 나 역시 입양이란 문제에 대해선 자신이 없다. 한때 이런 유사한 프로그램을 보면서 이런 생각도 잠시 했었드랬다. 아이를 입양해서 그 아이가 바르고 씩씩하고 건강하게 이 나라의 일꾼으로 잘 자라주면 좋겠지만 만에 하나 온갖 속을 다 썩이는 문제아가 되었을 때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 채 처음 나의 선택에 대해서 조차 후회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그런 이유로 결국 혈육이 아니라는 이유로 쉽게 인연의 끈을 포기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면..그것은 바로 서로에게 너무도 못할 짓이 아닌가....하는. 그래서 결과적으로 되려 그런 선택을 아니함만 못한 상처를 서로에게 남기게 된다면하는 생각말이다.
아무튼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입양이란 문제에 대해서 생각을 해본다. 아직까지도 내겐 남의 일같이 느껴지는 문제이지만 이 프로그램으로 인해 입양에 대해 다들 한번씩 생각해보는 계기가 됨과 동시에 새로운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국내 입양의 길이 많이 많이 열렸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리고 입양에 대한 편견과 잘못된 인식들이 많이 달라졌음하는 생각이다.
이제 현규는 현규라는 이름대신 까만머리 까만 눈동자에 쉬이 어울리지 않은 새로운 이름을 갖고 또 그렇게 불리게 될 것이다. 혹여 새 부모와의 다른 생김으로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 그 맑고 똘망똘망한 어린 현규가 현명하게 그리고 지혜롭게 모든 문제를 잘 해결해가며 그곳에 잘 적응해 갈수 있도록 좋은 인연을 만났으리라 기도해본다.
내가 기억하는 모습의 현규를 먼 훗날 어엿한 어른이 된 후에 다시 한번 좋은 프로그램을 통해서 볼수 있는 기회가 있길 소망해본다.
“현규야! 아주 씩씩하고 건강하고 현명하고 지혜롭게 잘 자라다오!”
2024년 06월 28일 금요일......
오랜만에 20년전 옛기록을 들쳐보고, 울컥한 그리움에 그 기억을 공유하며........늘봄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