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중충하게 종일 오락가락하며 내리는 비는 역시나 우울감을 불러일으킨다.
모든 비가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요즘 같은 장마철에 내리는 비는 꼭 그런 것 같다.
거기에 더해 장마철에 속절없이 쏟아지는 강한 빗줄기는 우울에 더해 근심 걱정거리까지 불러들이곤 한다.
'장마에, 폭우에 큰 물난리 없이 지나가야 할 텐데...' 하고 말이다.
비가 온다.
오다 말다를 반복한다.
갠 듯하다가 쏟아지고, 쏟아지다 또 잠깐 멈춰 선다.
멀거니 서서 창밖을 보고 있다가, 창문을 타고 또르르 또르르 굴러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야! 요 녀석들~ 신났구나!" 그 모습이 미끄럼 타고 신나게 쏜살처럼 내달리는 개구쟁이 꼬마 녀석들 같았다.
비가 오면 퇴근길에 발길을 돌려 전집으로 달려가 막걸리 한잔에 목 축이며, 그 고소한 기름기 가득 품은 전 한 조각 먹고픈 생각이 불끈 솟아오른다. 하지만 현실은 저녁 준비에 다급해져 발길 재촉하는 집밥선생 늘봄님의 부산한 움직임뿐이다.
이런 전에 막걸리 한잔? 크~읔!
부랴부랴 집에 도착해서 일단 쌀부터 씻어 전기밥솥에 넣고, 취사를 누른다.
밥이 되려면 최소 20분 이상은 기다려야 한다.
"꼬맹아! 오늘 저녁은 돼지고기고주장찌개 어때? 그리고 오징어볶음 해 먹으려고 아침에 엄마가 냉동실에서 꺼내놨거든! 좋지?" 울 꼬맹이 딸은 좋다는데, 내가 좋지가 않다. 요즘 다이어트 한답시고, 점심을 과일야채샐러드로 간단히 해결해서 그런지 급 몰려온 허기에 그 시간을 기다릴 수가 없다.
"안 되겠다. 일단 비도 오고 하니까 오징어야채전 하나 부쳐서 먼저 먹고, 밥을 먹자! 괜찮지?"
그렇게 나의 주 무기인 스피드신공을 발휘한다.
냉장고 속을 본다.
야채가 넉넉하다. 오이, 상추, 토마토, 호박, 부추, 당귀, 양파, 고추 등등! 남들 텃밭에서 기르는 작물들이 우리 집 냉장고 속에 터를 잡았다. 모두 언니네, 고모네, 외삼촌네서 보내오고, 얻어온 것들이다.
일단 호박, 부추, 양파 그리고 손질해 둔 오징어를 꺼낸다. 오징어도 잘 해동되어 있다.
일단 부추를 삼등분해서 자르고,
호박도 이등분해서 세로로 길게 편을 갈라 채를 썰고,
양파도 가늘게 채 썰어 준비한다.
오징어도 가로로 길게 길게 채를 썬다.
이렇게 굵기를 대충 맞춰 가늘게 썰어야 재료끼리 어색함 없이 잘 섞이게 된다.
먼저 이렇게 잘 썬 야채들을 큰 볼에 넣어 뒤적뒤적 버무리듯 골고루 섞어준다. 그러고 나서 부침가루나 튀김가루를 적당히 넣어 뒤적뒤적 머무려 준다. 전을 맛있게 먹으려면 일단 밀가루의 양을 되도록이면 적게 하느것이 좋다. 물기 가득한 야채에 밀가루를 옷 입히듯 묻힌 다음 물과 밀가루를 조금씩 더 넣어가며 농도를 맞춰 반죽하면 된다. 전을 부칠 때 밀가루는 야채들이 떨어지지 않게 접착제 정도의 역할만 해줘야 사실 맛이 훨씬 좋다. 특별히 오늘처럼 야채튀김마냥 바싹하게 전을 만들어먹고 싶은 날은 부침가루 대신 튀김가루를 활용하면 좋다.
일단 되직하게 밀가루 반죽을 한 다음, 야채를 넣어서 반죽하는 방법이 쉽긴 한데, 그러다 보면 밀가루가 과하게 들어가기가 쉽기 때문에 나는 항상 나만의 방법을 이용해서 야채튀김 같은 비주얼과 맛의 야채전을 부치곤 한다. 단점은 기름을 너무 많이 써서 좀 느끼하다는??
커다란 프라이팬 그러니까 우리 집에서 사이즈가 가장 큰 30cm짜리 팬을 꺼낸다. 허기가 많이 지는 모양이다. 기름을 욕심껏 두른다. 그리고 기름의 온도가 상당히 오르면 찌~~ 익 소리가 절로 나도록 국자로 야채 반죽을 떠서 팬위게 동글게 편다.
전은 두께가 얇을수록 맛이 있긴한데, 이렇게 야채가 듬뿍 들어간 전은 두꺼워도 좋다. 기름을 또 한번 넉넉히 두르고 고열에 전이 바싹하게 튀겨지도록.... 이때 주의할 것은 고열에 이대로 야채를 손쓰지않고 두면 노릇하다 못해 금방 까맣게 탄다. 그래서 한쪽이 노릇노릇하게 익을때까지 온도를 낮추는 대신 쉴새없이 팬을 흔들어줘야 바싹하게 퇴긴듯한 야채전을 맛볼 수 있다.
아이쿠!
전 먹을 생각에 정신줄을 살짝 놓았는지,
배가 고파 기름맛에 취했는지,
사방팔방으로 기름이 튄다 튀어.
우리 집 하이브리드레인지 바닥이며 타일이 기름 범벅이 됐다.
오랜만에 먹기도 전에 기름에 취할 판이다.
빗소리에, 기름에 튀기듯 익어가는 야채전 소리에 허기진 배속의 요동이 잠시 고요해진다.
맛볼 준비가 다 됐다는 뜻이리라.
앞뒤로 바싹하게,
야채튀김마냥 두둠하게,
욕심을 과하게 부린 오징어야채전 한판이 완성되었다.
바삭바삭!
소리도 즐겁고 입은 더 즐겁다.
"비오는 날엔 역시 전이지!"
꼬맹이 딸이 엄지척 하며 고개춤을 춘다.
기분이 엄청 좋다는 얘기다.
그 큰 전 한판이 바닥이 드러날즈음 취사를 알리는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취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아가씨! 미안하지만 우리집에 밥 먹을 사람 없어요!"ㅋㅋ
"엄마 나 느끼해서 더는 못 먹겠어?"
"야? 다~~먹고서 무슨 소리야?"
"거기 한 젓가락 남았잖아? 그건 엄마한테 양보할께?"
귀여운 것, 그러고서 씨익 웃는다.
어제 저녁 오랜만에 딸이랑 둘이서 오붓하게 또 맛나게 야채오징어전 한장 부쳐먹고, 그 기분좋은 느낌을 남겨본다
저녁밥은 생략했다. 그럴줄 알았다.ㅠㅠ
허나 오징어야채전의 느끼함 오래도록 남아,
그 느끼함 잡고저 밤9시가 넘어서 기어코 오짬라면 한그릇 칼칼하게 끓였다네.
그 국물까지 깨끗하게 비웠다네.
다이어트용 과일야채샐러드가 무슨소용!!
2024년 07월 09일 화요일
바싹한 전맛에 반한 딸래미와 늘봄엄마...........그 기분좋은 한끼를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