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부터 여린 열무를 사다 열무김치도 담아먹고, 열무와 얼갈이를 섞어 또 열무얼갈이김치도 맛보았다. 한동안 식탁 위 한자리를 오래도록 차지했던 계절김치였던지라 먹을 만큼 먹었다 싶어, 올해는 이것으로 됐다고 맘먹고 있었다. 그런데 여전히 마트 한자리를 차지하고 가끔 매력적인 가격으로 유혹하며 구매를 촉구한다. 고 녀석들이 말이다.
크기도 제법 커지고, 색깔도 진해지고 몸통도 또 튼실해졌다. 한눈에 봐도 제법 억세 진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그 유혹에 빠져들었다. 이번엔 다른 맛을 내보자고 계획도 바꿨다. 평소에 먹던 김치가 아니라 물김치로 변신!!
열무는 제법 억세 보여 패스하고, 통통하게 포기가 제법 차보이는 얼갈이로 한단 집으로 데려왔다. 오이도 5개에 3천 원도 안 되는 가격이라 길고, 통통한 놈으로 골라골라 가져왔다. 얼갈이의 큰 겉 잎은 따로 모아 데쳐서 시래기로 만들고, 연한 속살로만 깨끗하게 씻어 소금물에 살짝 절였다.
너무 살~~짝 절였나? 저러다 살아나서 고향으로 돌아가시겠다.ㅋㅋ
오이도 깨끗이 씻어 한입에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십자 칼집을 살짝 넣어 팔팔 끓는 소금물에 아삭하게 절여 준비했다. 요즘 오이는 통통하기는 하지만 그만큼 속 안에 든 씨도 제법 영글어 배를 갈라 사등분하면 씨앗이 지저분하게 쏟아져 나오기도 하고, 또 자칫하면 그 부분이 물러지기도 쉬어 요렇게 통으로 해보았다.
여기에 요즘 과일만큼이나 아삭하고 달콤한 양파도 굵게 썰어 오이와 함께 살짝 절여서 준비했다.
팔팔 끓는 뜨거운 소금물에 절여도 그 파릇함은 살아있죠!
이번 물김치에 들어가는 주재료는 얼갈이배추, 오이, 양파 딱 세 가지다.
이번엔 물김치답게 물을 넉넉하게 잡아, 한겨울에 입안을 톡쏘게 매력적인 동치미맛을 품은, 물김치 흉내를 제대로 내볼 생각이다. 될까?
사실 고백하자면 난 물김치라는 걸 담아본 적이 없다. 주로 열무와 얼갈이김치를 담을 때 그 국물을 시원하게 먹어보자고, 국물을 다소 넉넉히 잡아 자박자박하게 담아본 적은 있어도 말이다.
어디서 물김치를 담을 땐 말린 홍고추를 불렸다가 갈아서 그 국물을 쓰면 더 칼칼하고 맛나더라는! 얘긴 들은 바 있어, 언제 냉동실에 넣어뒀는지도 기억에도 없는 마른 고추를 꺼내어 불리고 갈아서 고춧국물을 만들었다. 거기에 태양초 고추가루도 섞어 빨갛게 고운 김치국물을 넉넉하게 준비해 고운체에 바쳐두었다.
얼갈이배추는 소금물에 절이고,
오이와 양파는 먹기 좋게 잘라 팔팔 끓는 소금물에 절이고,
다진 마늘과 생강은 망에 담아 김치국물에 넣어 꾹꾹 차서 그 향과 맛이 국물에 쏙 배이게 해 주고,
껍질 벗긴 마늘 중에 알 굵은 몇 개는 편으로 썰어 김치국물에 넉넉히 넣었다.
이제 김치국물의 간을 제법 삼삼하게 맞춰보자.
굵은 소금을 한 줌 넣고, 이번엔 군더덕이 없이 깔끔한 단맛을 위해 꽃사과청 액기스을 듬뿍 넣었다.
소금과 꽃사과청 그 외엔 아무것도 넣지 않았다. 감칠맛을 살려줄 액젓이나 새우젓도 생략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맛을 위해서 말이다.
그래 그런지 김치국물 맛이 달달하고 상큼하다. 꽃사과청이 만들어내는 단맛이 상당히 매력적이다.
이제 물기 쪽 뺀 주재료와 김치국물을 합채 해서 골고루 머무려 주기만 하면 된다.
자~~ 이렇게!!
한다라이 잘 어우러지게 담았습죠! ㅎㅎ
국물이 짭조름하면서 달달하면 간은 적당할 것이다. 살짝 절인 주재료에도 국물에서 간이 배어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김치국물이 너무 밍밍하면, 제대로 된 김치 맛을 낼 수가 없다. 국물맛이 너무 심심하다면 소금 한 줌 더 넣고, 으~~ 너무 짜다 싶으면 생수를 적당히 넣어 그 짠기를 덜어주면 된다.
국물이 달짝지근해야 맛이 들었을 때 새콤달콤하게 제맛이 난다. 대체로 김치는 숙성이 되면 단맛이 많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물김치 간 맞추는 건 생각보다 쉽다. 자꾸자꾸 맛을 봐가면서 맞춰도 부담이 없다.
사실 김치의 간은 주재료의 절여진 정도에 따라 소금이나 액젓의 양이 상당히 가감이 되기 때문에 딱 잘라 이만큼이라고 말하기도 그렇긴 하다. 나 같은 하수의 입장에선 더더욱이나 말이다.
아직도 나는 간 보다가 배가 불러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여전히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딱 좋은 그 맛을 찾아가는 여정, 그 감을 익혀가는 과정은 진행중. 간 맞추기 고수의 길은 멀기만 하다.
모든 것이 잘 어우러졌다.
색감도 예뻐서 보기에도 참 예쁘고, 만든 사람으로서도 많이 흡족하다. 내가 그리던 그림이 그렇게 딱 나와서 더욱 기분이 좋다. 처음이라고 하기엔 제법 의아해할 만큼 제대로 폼이 나는 것 같다.
냉장고 속에 뒹굴던 아삭이고추, 쌈배추도 몇 조각 넣었죠!
과연 맛은? 글쎄~~
그건 하루정도 상온에 뒀다가 뽀글뽀글 기포가 피어오르면 냉장고에 넣어 잘 숙성시켜서 냉기 충만히 채워 맛을 봐야 알겠죠?
새콤달콤하게 맛들면,
소면 뽀얗게 삶아서 한 그릇 뚝딱 말아먹으면 삼복더위에 냉면도 부럽지 않을 것 같긴 한데.........
이렇게 초간단으로 만든 여름 물김치가 한겨울 동치미의 깊은 맛을 흉내라도 낼 것 같으면 좋으련만, 그 재료부터가 택도 없으니.... 그건 나의 과한 욕심이었을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