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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되면....

니 동생도 다 해! 너무 억울해 하지마~ㅎㅎ

by 늘봄

이젠 발받침대 없이도 싱크대 앞에서 설거지를 능숙하게 하고 있는 울집 꼬맹이를 보고 있자니, 옛날 생각이 나서 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한때는 엄마 품을 쏙쏙 파고들어 가슴에 폭 안기던 고 작고 사랑스런 꼬맹이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태평양 같던? 엄마품은 여전한데, 그 천진난만한 미소에 장난기 넘쳐나던 녀석들은 온데간데없다. 시간이 데려간 것일까? ㅎㅎ


우리 집엔 불문율처럼 정해진 규칙이 하나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쯤 되면 덩치도 커지고, 손끝도 야물어지니 이젠 이 정도는 잘할 수 있겠다 싶어 엄마의 일을 하나 떼어 종종 제대로 맡겼다. 그중에 하나가 설거지였다. 청소기 돌리고, 걸레질하고, 빨래 개고, 신발 정리하는 소소한 집안일이야 아주 어렸을 때부터 놀이삼아 해왔던지라 따로 규칙이 필요 없었지만 설거지만큼은 주의도 필요하고, 요령도 필요하고, 위생상 대충 해서도 안되니까 제대로 된 때가 필요하긴 해서 나름 시기를 잡았었다.


첫 시작은 큰아이 초등 5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기본적인 방법을 알려주고, 간단히 먹는 아침과 점심 설거지를 주로 맡겼다. 아이도 재미있어했고, 나도 편하고 여러모로 쓸모가 있었다. 어린 막내는 오빠따라 하겠다고 식탁의자를 갖다놓고, 옆에서 장난치며 참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아이들 어릴 때만 해도 방학 숙제로 집안일 돕고 인증샷 남기는 것이 미션이기도 했었으니까. 큰아이는 별 불만없이 자기 몫인줄 알고 잘 했고, 설거지 양이 많은 날은 반만 하고서 좀 쉬었다가 이따 하겠다고 해 놓고선 그대로 꽁무니를 빼기도 하고, 그릇은 다 했는데, 숟가락 젓가락만 엄마가 해주시면 안 되겠냐고도 하며 나름 역할을 잘해주었다. 별 불만이 없었다. 중2학년이 되자 훌쩍 큰 키에 싱크대 높이가 맞지 않아 설거지하고 나면 허리가 아프다고 가끔 호소하긴 했다.


둘째는 5학년 겨울 방학을 시작으로 설거지에 투입되었다. 중3이 돼가는 형의 바통을 물려받아 묵묵히 제 일이다 하고 하면 되는데, 요 녀석은 불만이 많았다. 형은 지금껏 자기가 많이 했으니까 이젠 니가 열심히 하라고 손을 털고, 형과는 달리 대충하는 법이 없는 녀석은 매번 입이 주먹만큼 튀어나와서는 왜 자기만 해야 되냐고 툴툴 거렸다. 이제 겨우 초등 일학년인 막내 동생을 꼴아보며 재는 왜 맨날 아무것도 안하고, 놀기만 하냐고 성화였다. 투덜대면서도, 짜증을 있는대로 내면서도 요 둘째 녀석은 놀라울만큼 완벽하게 설거지를 너무 잘 했다. 사이즈별로 줄 맞춰 두번 손 안가게 말이다. 마치 엄마가 해놓은 설거지마냥 그 정도가 최상이었다.


이에 반해 설거지에 불평불만이 없이 항상 성격좋게 알았어요라는 대답과 함께 설거지를 하던 큰아들의 식기건조대 위는 항상 난장이 섰다. 그냥 씻어서 되는 대로 엎어만 놓은 그릇들은 꼭 엄마의 손길이 한번 더 필요했다.


그러다보니 결과에 상관없이 시작도 하기전에 툴툴대는 작은 녀석은 항상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들으면서 상한 기분으로 설거지를 할 수 밖에 없었고, 매번 그렇게 성질 내가면서 할거면 하지 말라는 엄마의 짜증을 한번 더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형처럼 대충하다 자리를 비우는 법이 없었고, 나머지는 엄마가 해달라고 일을 미루는 법도 없었다. 해야 할 일은 투덜대면서도 마무리까지 책임을 다 했다.


그러고보니 게임을 할때도 마찬 가지였다.

시간 정해놓고, 타이머를 설정한 다음 게임에 들어갔던 두 녀석은 10분전 5분전 남은 시간을 알리며 빨리 정리하고 나오라고 예고를 하면, 큰 녀석은 "알았어요. 엄마! 여기까지만 하고 나갈께요" 하며, 5분 10분을 질질 끌다가 제 게임이 끝나면 마무리하고 헤헤 웃으면서 하는 말한마디가 잔소리를 닫게 했다. "엄마! 죄송해요. 끝날때까지 하다 보니 제가 많이 늦었어요" 였다.


이에 반해 둘째 녀석은 엄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컴퓨터를 끄고 나오면서 씩씩거리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책상을 치고, 소리까지 지르며 화를 표현하는 경우도 있었다. 엄청 중요한 타이밍이었는데 엄마땜에 망했다고 분노를 표현할때는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중요하면 좀더 하지 그랬어! 임마" 그런 날 이후엔 어김없이 컴퓨터사용 금지령이 내려지곤 했다. 형은 매번 원칙을 어기면서도 유들유들한 말 한마디에 화를 면하고, 둘째 녀석은 원칙을 지켜놓고도 짜증과 화를 있는대로 내서 매를 벌기도 하는 상황들이 반복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우리 둘째가 많이 억울해 했겠구나 싶다.


지금은 오빠들의 뒤를 이어 울 꼬맹이가 종종 설거지를 한다. 큰오빠와 둘째 오빠를 반반 섞어놓은 것 같은 모습이다. 어떤 날은 완벽하게, 어떤 날은 좀 이따가 하겠다고 미룬다. 그러다가 엄마가 좀 해주시면 안되느냐고 애교를 떤다.


이제 오빠들은 설거지를 하고 싶어도 하기 힘든 생활 리듬을 갖고 있다. 아침 7시50분에 집을 나서면 밤10시 30분이나 돼야 온다. 큰아들은 주6일, 둘째는 주5일을 그런 리듬으로 산다. 두 아들은 키도 훌쩍 커서 요 녀석들이 고 녀석들 맞나 싶어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그렇다. 가끔은 그때가 좋았었지 하며, 아이들 어렸을때 사진을 들춰보기도 한다. 해맑게 웃고 있는 아이들 모습속에서 그 시절 행복했던 추억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가끔 일요일 점심이나 저녁 설거지가 귀찮은 엄마가 아이들에게 주문을 건다.

오늘은 오랫만에 누가 설거지좀 해줄래?


역시 우리 큰아들!! 솔선수범이란 없다.

"야! 우리 가위 바위 보 해서 진 사람이 하기로 하자!"

답은 정해져 있다. 우리 둘째 투털이! 자기는 정말 재수가 없단다. ㅎㅎ

에이~ 하면서도 고무장갑을 끼고 싱크대 앞에 선다.


울 큰아들이 졌더라면 안봐도 비디오다.

"삼세판이야. 두번 남았어"ㅋㅋ


큰아들은 너무 유두리가 넘치는 고무줄 잣대를 갖고 있어서 걱정이고,

작은 아들은 너무 경직된 쇠잣대를 갖고 있어서 걱정이다.


아들아! 옛날에 막내 동생 꼴아보며 왜 쟤는 맨날 놀기만 하냐고 억울해 했던 그때 생각나니?

엄마 말이 맞지? 때가 되니까 다 하잖아. 코로나 덕분에 너보다 막내가 훨씬 더 많이 하고 있으니, 너무 억울해 했던 그 맘 풀고 막내 동생 많이 예뻐해 주려므나.

돌수제비 뜨던 오래전 추억속 삼남매


2022년 08월 30일

오랫만에 늦게 마신 커피 한잔에 잠 못드는 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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