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명절이 다가온다. 일주일 전부터 올해 추석엔 차례 지내러 큰집에 가냐고 큰 아들이 자꾸 물어본다. '음! 역시 장남은 뭐가 달라도 다르군! 저게 장남의 책임감 같은 것인 감?' 아무 생각 없는 두 동생과 달리 집안일에 저리 관심을 갖는 아들이 대견스러워 뒤통수 한번 쓰다듬어 줄 뻔했다. 사실 이 엄마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러니 명절에 앞서 올 추석 차례를 어떻게 할지 궁금해하는 그 모습이 어찌나 대견스럽고, 어른스러워 보이던지....
"왜? 역시 우리 큰아들이네. 장남이라 그런지 다르긴 달라. 큰집에서 결정할 일이긴 한데 아직 아무 말씀이 없으시네?" 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 이후 지금껏 집에서 지내는 명절 차례와 제사는 생략하고, 시조부모님과 아버님의 산소를 찾아 성묘드리는 것으로 명절 행사를 축소해 진행해 왔었다.
"아! 연휴에 언제 쉴지 정할라구요. 금토를 쉴지, 일월을 쉴지, 월화를 쉴지. 차례 지내면 무조건 토요일은 쉬어야 하잖아요?"
"야! 니가 고3도 아니고, 재수생씩이나 돼가지고 명절에 쉴 생각을 하냐? 이거 정신 못 차렸구먼. 이제 시간도 얼마 없어! 임마~ 정신 차려!" 뒷목이 땡기면서 험한 말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온다. 지금껏 참고 참았던 악담들의 향연이다. 이 엄마도 교양과 지성이 넘치는 우아한 삶을 이상향으로 삼는 평범한 아줌마건만, 니 행동을 보고 있으면 속이 터져서 교양은 저리 가고 말과 행동이 과격해지는 깡패 엄마가 된다. 이눔아~
그거였다. 우리 아들의 관심은!! 하지만 올해는 큰 집 하나밖에 없는 형이 군대 가고 없으니, 제사를 지내게 되면 자기는 그래도 꼭 참석해야 하지 않겠냐고.
명절을 앞두고, 오빠가 깔끔하게 이발 끝낸 아버지 산소 모습을 사진으로 보내왔다. 벌초 끝낸 아버지의 묘소를 보고 나니 숱 많았던 아버지의 덥수룩한 모습이 떠올라 울컥했다. 아직도 집 앞 평상에 앉아 동네 사람들과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고 계신 것만 같은 울 아버지다.
벌초?? 하니까 이번 여름에 있었던 웃질 못할 만큼 당황스럽고 황당했던 일이 생각나서 핸드폰 속 사진첩을 뒤져 봤다. 다행 제비아빠가 찍어서 카톡으로 보내준 사진이, 증거 사진?이 있다.
시간은 바야흐로 폭염이 한반도를 강타할 즈음인, 모두들 휴가를 보내느라 바빴을 7월 30일. 그날은 토요일 이었다. 더 어이없이 황당했던 건 그 전날 제비아빠가 퇴근 무렵 한 전화 한 통이었다.
"ㅇㅇ아~ 내가 점심시간에 철물점에 갔다가 하나 살까 두 개 살까 고민하다가 너를 위해 두 개 샀어!" "뭘?"
"응! 낫" 뭐라고??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들은 거야? 나를 위해 낫을 샀다고??
일의 시작은 이랬다.
아주버님께서 오랜만에 할아버지 산소에 갔었는데, 풀이 너무 자라서 벌초를 좀 해야겠다고 전화가 왔었단다. 개망초가 무릎 높이까지 웃자란 모습이 눈에 많이 거슬린 모양이다. "한 여름에 다 그렇지. 기다렸다가 추석 때 벌초하면 되지." 그랬더니 성격상 그게 안 되는 우리 아주버니는 주말에 꼭 벌초를 해야겠다고 했단다. 아침 시간엔 컨디션 때문에 일찍 못 일어나까 퇴근 후 6시쯤 만나서 벌초를 하자고. 그럼 그렇게 하면 되지 뭐가 문제야? 그건 아주버니 생각이고...
울 제비아빠는....
일을 하려면 이른 새벽에 해야지, 한여름 땡볕에 오후 6시도 더워서 아무것도 못한단다. 형이 뭘 몰라서 하는 소리지. 약속은 그리 정하고, 울 제비아빠는 자기 뜻대로 벌초를 하고 싶었던 게다. 토요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산소에 가서 대충 웃자란 망초대만 슬슬 정리하고 오자. 혼자 가면 심심하니까 나한테 일당 줄테니까 같이 가기만 하자고 슬슬 구슬렀다. 그래서 같이 가주기는 할께. 일당은 10만원이야. 딴소리 없기 그랬는데..... 이건 뭐지? 나를 위해 낫을 샀다고??
"그럴 거면 낫 대신 가위를 샀어야지. 정원 가꿀 때 쓰는 것 있잖아? 낫을 어떻게 써?"
"내가 가르쳐줄게, 내가 알려주는 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돼" 정말?? 그렇게 토요일 새벽5시에 일어나 생전에 한 번도 뵌 적 없는 제비아빠의 조부모님 묘소에 이발해 드리러 갔다. 묘소는 생각보다 넓었고, 잔디가 잘 자라 있어 아주버님께서 지적하신 것만큼 지저분하거나 눈에 거슬리거나 하진 않았다. 분명한 건 아버님께서 관리하던 시절과는 대조적으로 잔디가 군데군데 많이 죽어있었다.
먼저 울 제비아빠가 시범을 보인다.
웃자란 잔디와 풀을 왼손으로 머리 끄댕이 잡듯 휘어잡고, 낫을 앞으로 끌어당기며 쓰윽 베어 주면 된단다. 잉? 그렇게 해서 이 많은 풀을 어느 세월에 다?? 같이 오기만 해 달라며?? 이건 뭐 제대로 부려먹겠다는 심사였잖아? 뭐야! 그런데 제비아빠 낫을 손에 쥔 손길이 왜 이렇게 엉성하고 어설퍼? 낫질해보기는 한거야?
"난 이 쪽부터 할 때니까 너는 저 쪽부터 대충해. 추석때 그때 맡겨서 제대로 하면 되니까." 구역까지 나눴다.
나 칼쓰는데 재능이 있나봐!
하긴 20년 가까이 식칼을 휘둘렀으니, 그 경력이면 처음보는 낫 정도 휘두르는 것도 낫설진 안잖아? 긴 낮자루 끝을 잡고, 택상이 가르쳐준 것과 반대로 낫을 휙휙 휘둘렀더니, 쓰윽쓱 소리까지 경쾌하게 풀이 너무 잘 베어졌다. 풀끄댕이 잡을 필요도 없었다. 하다 보니 요령이 생기고, 요령이 생기니 기막힌 속도감으로 스피드가 붙었다. 순간 칼잡이가 된 것 같았다. 풀이 쓱쓱 소리와 함께 깔끔하게 베어져 나가는 소리에 묘한 쾌감이 일었다. 칼잽이가 이런 맛에 검을 휘두르는구나!
완벽하고 깔끔하게 할아버지 할머니 묘소를 전문가 못지 않게 정리해 주고 싶었다. 한시간 만에 자신감 만땅 올라 의욕이 넘치는 내게 울 택상이 "워워" 한다. 이 정도면 됐단다. 이 정도 하고 추석때 그때 제대로 맡겨서하면 된다고 나를 말린다. 안하면 안했지, 이 정도로 끝내는 건 성에 안차는데, 많이 아쉬운데.... 울 제비아빠 출근도 해야 하니, 이 정도에서 끝내자고 재촉한다. 출근만 아니었음, 나 그 잠깐 사이 향상된 실력에 완벽하게 벌초를 마무리 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태어나서 첨으로 낫을 휘둘러보고, 울 아버지 산소에 자라난 풀 한포기 제대로 뽑아드린 적 없는 내가, 남편을 잘 만나 생애 첫 벌초라는 것을 해봤다. 아니지 아니지, 우리 제비아빠가 천복을 타고나 나같은 아내를 얻어 아내와 함께 조부모님 벌초를 해드리는 세상에 몇 안되는 천운을 누리는 것일 테지!ㅋㅋ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이번에 또 한번 나는 느낀다.
자네는 머리를 쓰시게!
몸은 내가 쓰겠네! 뭘해도 어설픈 저 몸짓, 손짓, 발짓!! 참 많~이 아쉽다.
쓸 머리라도, 빛나는 머리라도 있는 게 그나마 참 다행이지!ㅋㅋ
할아버지! 할머니! 시원하시죠? 이렇게 이발해 드리는 손주며느리가 또 어디있겠어요?
우리 아이들 건강하게 제 갈길 잘 갈 수 있게 지켜봐 주시고 밝은 빛으로 인도해 주세요? 아셨죠?
안 그러심 저 담엔 이발 안해 드려요.
추석이 코앞이다.
사람들로 북적대던 어린 시절 그 명절은 이제 다시 경험해 볼 수 없다. 일가친척 다 모이면 수십명이던 그 시절 그 명절! 어른들은 얼마나 힘드셨을까?
그 큰 애를 쓰셨던 큰어머니, 작은 어머니들, 그리고 우리 엄마 덕분에 나는 가슴 속에 따뜻한 명절의 추억을 담고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