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삭아삭 매력발산 숙주불고기

 숙주나물의 우아한 변신.....숙주불고기볶음

하루 종일 비가 온다. 제주도 서귀포 남쪽 바다에서 서서히 북상 중이라는 태풍 힌남노의 위력이 역대급이라더니 오늘 이 비는 그 예고편인가 보다. 오늘 밤과 내일 새벽이 고비란다. 제발 큰 피해 없이 지나가 주길 기도한다. 추석을 앞둔 이 시점에 웬 날벼락인가 싶다. 그런 날씨 여파로 노가다를 뛰는 것도 아닌데,  난 쉰다. 비가 오기만 하면 난 무조건 쉰다.  땀 뻘뻘 흘리며 두 시간 가까이 신나게 운동하고  1000 kcal를 소모했다. 한 끼만 제대로 먹으면 야속하게 채워질 의미 없는 숫자지만. ㅎㅎ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뛰고, 먹고, 쉬고, 또 먹고!!

그래서 저녁은 가볍게 준비했다. 숙주불고기볶음!

결혼 전엔 숙주나물을 거의 먹어본 적도 본 기억도 별로 없다. 결혼해서 시댁 제사상 준비하면서 생숙주나물을 제대로 봤다. 콩나물처럼 삶아서 간장 양념으로 숙주나물을 하얗게 무치시는 어머님 옆에서 말이다. 우리 엄마는 배추 속살을 끓는 물에 데쳐 하얗게 무쳐서는 숙주나물이라고 하시며 제사상에 올리셨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끓는 물에 데쳐서 무친 나물류를 숙주나물이라고 하는 줄 알고 살아왔다.

시댁에서 집안 제사 때마다 내가 별미처럼 먹게 되는 숙주나물은 맛이 그닥 매력적이진 않았다. 차라리 콩나물무침이 더 나았다. 콩나물무침은 대가리 씹는 아삭함과 고소한 맛이라도 있으니까. 그러다가 이 숙주나물을 콩나물처럼 볶아먹으면 어떨까 궁금해서 우리 엄마를 흉내 내 볶아먹기 시작한 것이 내 숙주 볶음요리의 시작이었다.

다른 지역에서도 콩나물을 그렇게 해 먹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고향에선 콩나물을 삶아서 무쳐먹는 것보다 기름에 볶아먹는 게 흔한 요리법이었다. 그리고 우리 엄마는 그것을 콩나물 짠지라고 했다.  두 눈 동그랗게 뜨며 그렇게도 해 먹냐고 의아해하던 주변 친구들의 반응이 재미있었다.

방법은 간단하다. 잘 씻어 물기를 뺀 콩나물을 팬 가득 넣고, 들기름 휘이 두르고, 고춧가루와 간장을 넣어 볶는다. 콩나물이 숨이 다 죽어 익었다 싶으면 파릇한 파와 마늘을 넣고 한번 휘리릭 휘저으면 끝. 심심하면 가는소금 좀 뿌려주고. 깨소금 솔솔 뿌려 고소하게 마무리하면 된다.

우리 엄마는 요즘 나처럼 볶은 통깨를 그대로 쓰는 법이 없으셨다. 꼭 나물에는 볶은 깨를 빻아 만든 깨소금을 아끼지 않으셨다.

지금은 식당에서 흔하게 사 먹는 묵은지고등어조림도 우리 어렸을 땐 우리 엄마 대표 메뉴였다.

보통 무를 넣고 고등어조림을 해 먹던 사람들은 신김치를?? 하며 안 비리냐고 했지만, 고등어조림에 들어간 신김치는 사실 고등어보다 더 맛있었다.

갈치조림에는 무대 신 감자를 넣고 해도 맛있다 했더니, 감자를?? 그랬다.

건강식으로 인기 있는 묵밥을 식당 메뉴로 보고, 저런 것도 돈 주고 사 먹나? 했다. 우리 엄마가 긴긴 겨울밤 아버지 야참으로 준비하셨던 음식인데, 저런 걸 돈 주고 사 먹는 식당 메뉴라는 게 내겐 더 신기했다.

우리 집에서 먹던 묵밥은 메밀묵이 주재료였다. 도토리 묵밥을 먹고 나선 이제 메밀묵은 안 먹는다. 묵의 격이 다르다. 도토리묵은 엄청 찰지고 쫀득쫀득하다. 그에 반해 메밀묵은 그냥 뚝뚝 끊어지는, 촌득함 1도 없는 투박한 맛이다.

아무튼 나의 숙주볶음요리의 시작은 그런 순수한 호기심에서 출발했다. 거기에 더해 돼지고기도 넣어보고, 소고기도 넣어보고, 오징어도 넣어보고, 낙지도 넣어보고, 닭가슴살도 넣어보고 다양하게 넣어 볶아댔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역시 숙주나물볶음에는 소고기가 제일로 잘 어울린다는 결론이다. 준비랄 것도 없이 불고기감 소고기와 숙주, 대파, 양파 정도만 있으면 10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뚝딱 만들어 낼 수 있는 일품요리다.

오늘 우리 집에 차돌박이와 돼지고기 목살이 좀 있다. 차돌박이로는 양이 부족해 목살을 섞었다. 울 큰아들이 예고도 없이 저녁 식탁에 함께 했기 때문이다. 고기 좋아하는 녀석이니까 고기를 많이 넣어줘야 한다.

두툼한 목살을 먼저 구워 검지 손가락 길이만큼 굵고 길게 썰었다. 거기에 차돌박이 넣어 구운 다음, 토치를 사용해 고기에 불맛 더하고, 잡내를 잡았다. 그 위에 물기 뺀 숙주나물 듬뿍 올리고, 양념장 넉넉히 둘러 달달 볶았다. 대파가 떨어져서 아삭이 고추 어슷하게 썰어 넣어 파릇한 식감 살렸다.

요런 볶음 요리는 빠른 시간 안에 살짝 볶아내야 숙주와 고추의 아삭한 식감을 살릴 수 있다. 내가 만든 사제 양념장 대신 굴소스로 맛을 내면 중국요리 냄새가 난다. 우리는 준비됐는데, 아빠의 귀가 시간이 늦어진다. 숙주의 숨이 자꾸 죽어간다. 국물이 흥건해진다. 이 음식의 생명은 빨리 해서 빨리 먹는 것이다. 핵심은 스피드.ㅎㅎ

오늘 태풍 온다고 울 큰아들은 일찍 하교했다. 울 둘째 아들 학교에선 아무 말이 없는데 말이다. 큰아들네 학원생 전원이 강제 하교인 줄 알았더니만.....아빠 왈!!

"남아서 공부하는 애들도 있지? 너만 온 거 아냐?" ㅎㅎ  울 아들 겸연쩍게 웃으며 답한다. 자기만 이리 일찍 온건 아니란다.

역시 우리 울 아들이다. 기회를 노치지 않는다. 내일은 오후 한 시 등교란다. 우리 아들 머릿속이 궁금해진다. 역시나 먹는 건 아주 잘 먹는다. 종알종알 여전히 신이 나서 떠들어댄다. 그게 울 아들의 매력이다. 고3 때도 야간자율학습 끝나고 집에 오자마자 가방 내려놓기가 무섭게 식탁 차지하고 앉아 조잘대던 녀석이다.

태풍 힌남로의 경로만큼이나 걱정되는 우리 아들의 진로다. 요 녀석이 어떤 길을 가게 될지 궁금하다.

"아들아! 어딘지는 몰라도... 네 길을 가고는 있는 거냐?"

덩치만 컸지 아직 철부지.

언제나 철들런지.

그때 기다리다 이 엄마가 속이 다 타겄다.

너는 이 엄마 가슴 속에 큰 불을 질렀고나. 요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