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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 Sep 06. 2022

보글보글 순두부 한뚝배기라 전해라

오랜만에 토끼가 되어 볼까?.... 먹고나도 허할 풀 밥상! 토끼 밥상!

이웃에 사는 친한 언니가 봄부터 열심히 가꿔왔던 텃밭 작물을 정리했단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수확한 텃밭 농산물을 맛보라고 이것저것 보내주셨다. 정리 후 김장에 쓸 작물들을 심을 계획이신가 보다.


흑토마토, 방울토마토, 아삭한 고추, 청양고추, 잘록한 가지 몇 개, 껍질까지 벗겨 손질 끝낸 연한 호박잎까지 골고루 담아 아기자기한 야채 주머니를 건네주셨다. 그래서 오늘은 호박잎과 길게 쭉쭉 잘라놓은 가지를 찜기에 올려 푹 쪘다. 찐 가지는 간장에 고춧가루, 참기름, 파, 마늘, 양파를 썰어 넣고 조물조물 무쳤다. 다른 때 같으면 쭉쭉 길게 자른 가지를 에에프라이어에 7-8분 정도 돌려 꼬들꼬들하게 색다른 맛이 나는 가지무침을 만들었을 텐데, 오늘은 찜기에 호박잎과 가지를 같이 올려서 에너지 좀 아꼈다. ㅎㅎ


야채 값이 너무 비싼 요즘에 친한 언니의 손길이 가득한 이런 선물은 참 감사하다. 깨끗이 씻어서 금방 꺼내먹기만 하면 되는 손질에, 받을 때마다 그 섬세한 배려에 가슴이 훈훈해진다. 청양고추와 일반고추는 구분 짓는 이름표까지 매번 지퍼백에 붙여 놓으신다.


가늘게 채 썬 양파 한주먹 뚝배기에 넣고, 고춧가루와 참기름을 넣어 달달 볶는다. 순두부찌개에 쓸 고추기름을 만드는 것이다. 고춧가루에 기름만 넣어 고추기름을 만들다보면 순식간에 탄내가 나기 십상이다. 그래서 고추기름이 필요한 음식을 할 땐 항상 양파나, 대파 그리고 다진 마늘 같은 것을 함께 볶아 그 수분으로 타는 것을 좀 방지한다.


순두부 덤벙덤벙 썰어 넣고, 멸치와 다시마로 찐하게 만들어 놓은 육수 적당히 넣어 보글보글 끓인다. 마지막에 계란 두 알 까서 넣고, 다진 파와 다진 청고추 고명처럼 올려 마무리한다. 걸림 없이 부드러운 순두부만 호로록 호로록 목을 타고 내려가는 부드러운 감촉의 순두부찌개다.


김장김치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너무 익어서 손이 안 가는 알타리김치를 꺼내보았다. 김치가 넉넉할 때 같으면 버리고 말았을 것을..... 엄마처럼 깨끗이 씻어 멸치 한주먹 넣고 들기름 두르고, 올리고당 넣어 물기 자작하게 해서 지지듯 볶는다. 비주얼은 허멀건 한데, 먹어보니 감칠맛이 도는 게 밥도둑이 될 법하다.


차리고 보니, 오랫만에 고기가 쏘옥 빠진 밥상이다. 맛깔나게 입맛 당기는 음식은 없어도 무심하게 먹어본다.


아들들이 있었으면 제 먹을 것 없다고 투정했을 밥상이다. 하지만 담백하게 먹는 것을 좋아하는 우리 꼬맹이는 불평 없이 잘 먹는다. 편식 없이 그리 잘 먹어도 꼬챙이처럼 말라서 엄마가 걱정을 하게 만들고, 때로는 몹시 부럽게도 만드는 녀석이다.


벌써 커서 중학교 갈 때가 되었다.

세월 참 빠르다.

아들들을 키우면서는 잘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우리 꼬맹이를 보면서는 종종 이상하리만치 든다. 요즘 울 꼬맹이를 보자면 나의 국민학교 시절이 오버랩된다.


나 아닌 나를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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