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그녀를 보며 오래전 옛일을 떠올린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란 드라마가 인기다. 울집 꼬맹이가 유튜브로 접하고 흥미를 느끼더니 요며칠 기회만 되면 재방 삼방을 보며 대사까지 줄줄 외울기세다. 그중 특별히 울 꼬맹이의 관심을 더 끄는건 주인공 우영우와 고교단짝 동그라미의 인사법이다. "우 to the 영 to the 우 ! 동 to the 그 to the 라미 하~~" 울 꼬맹이 답다.
잔잔하게 울림을 주는 드라마다. 자폐스펙트럼을 앓고 있는 우영우 변호사와 그 직장동료들이 사건을 변호하면서 펼치는 소소한 에피소드들로 매회 우리들에게 극적 재미와 코긑 시끈한 감동과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자폐스펙트럼! 자폐라는 장애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을 때처럼, 자폐스펙트럼이라는 용어는 또 생소하다. 자폐와 유사한 성향의 발달장애를 아우르는 총칭이라고 이해하면 될까?
정말 오래전 일이다. 자폐라는 발달장애가 세상에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두 소년과의 만남.
신혼시절, 집 뒤 산책로를 종종 걷곤 했다. 그날도 남편과 둘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고 있는데, 저만치서 남편의 같은과 동기형이 두 아이를 앞세워 산책을 나왔드랬다. 난 처음 뵙는지라 남편이 소개해 인사를 드리자 그분이 아들들에게 인사드려야지 하는데, 난데없이 한 녀석이 웃으며 나에게 다가오더니, 어깨에 머리를 얹고 "안녕하떼요!" 했다. 순간 나는 장난기 많은 녀석이 장난치는 줄 알았다. 아이 아빠가 아이 손을 잡아당기며 "그러면 안돼!" 할때까지 웃음을 멈출수가 없었다. 순식간이었고 정말 장난인줄 알았다. 헌데 그게 아니라 초등 고학년쯤 되어 보이는 두 아이의 행동과 말투 그리고 표정과 눈빛이 남달랐다. 이상했다.
인사를 하고 되돌아올때 우리 남편이 꺼낸 말이 자폐아였다. 저 형님의 두 아이가 다 자폐를 앓고 있다고. 일종의 발달장애인데, 뇌기능의 이상으로 몸은 정상인데, 일반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발달장애라고. 저 형님의 아이들 정도면 상당히 중증에 해당된다고 했던 것 같다. 남편의 설명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저렇게 멀정하게 잘 생겼는데, 뭐가 문제지? 하나도 아니고 둘다 같은 장애를 앓는다는 사실에 너무 속이 상하고 가슴이 아팠던 기억이 오래도록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버지의 수려한 학력과 빛나는 이력에도 불구하고, 늦은 나이에 새로운 공부를 시작한 건 평생 정년없이 그 두아이를 돌봐야 하는 아버지의 무한 책임감에서 비롯된 선택이 아니었을까하고 미루어 짐작해 본다. 그 두 아들들도 이제 30대의 성년이 되었을텐데....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후에도 친한 언니의 둘째 아들에게서 그 모습을 보고, 또 한번 많이 안타까워 했던 기억이 있다. 정말 훤하게 잘 생겼는데, 어디하나 빠지는데 없이 잘 생긴 녀석이었는데... 그래서 더 맘이 아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항상 밝고 환해서 "아! 감당할만한 큰 그릇이 되는 분들에게 신이 내려주시는 선물인가보다. "고 마음을 돌려 생각했었다. 어쩌다가 자기를 자기틀안에 가두고, 세상과 동떨어져 홀로 사는 세상을 살아야 하는 뇌를 갖게 됐는지 답답하기만 했다. 차라리 몸 어딘가가 아파서, 눈에 띄어서, 치료라도 가능하다면야 그것이 백배 천배는 낫지 싶었다.
우리 아들이 서너살이 되어 조잘 조잘 말문이 열려 궁금증이 폭팔하던 시기에 우리 아들에게 언니가 건냈던 그 한마디가 지금도 생생하게 뇌리에 박혀있다. "어머! 이제 민이가 영이형아보다 훨씬 똑똑해졌네!" 그 영이는 우리 아들보다 네댓살이나 위였는데, 웃으며 그런 농담을 할 정도로 언니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신지 꽤 오래되신 참이었다. 첨엔 다른 아이들보다, 손위형 그만할때보다 많이 늦는다고 생각하며 설마설마하며, 기다렸다고 했다. 확증받는 것이 겁이나 외면하고도 싶었다고 했다. 의심은 현실이 되고, 혹여나 하는 기대에 할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해가며 집중했지만, 아이는 좀체로 나아지지 않았고 그렇게 자기세계에 뻐져 들었다.
20대 성년이 된 지금도 영이는 큰어린이가 되어 부모님의 보살핌안에서 최소한의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그나마 언니네 경제 사정이 보통 사람들보다 쪼금 여유가 있어서 천만 다행이다고 위로할 뿐이다.
그래서 자폐스펙트럼을 갖고 있는 우영우 변호사의 활약상을 담은 이 드라마를 보는 내맘이 편치가 않다. 내가 자폐를 가진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아니지만, 옆에서 조금 본 사람으로써 이 드라마속 이영우가 보여주는 감동과 재미만 쫓기엔 맘이 좀 그렇다. 어쩌면 드라마속 우영우가 사는 세상은 참 따뜻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런 장애와 함께 천재적인 재능도 같이 주었으니 그마나 특별한 선택을 받은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도 그럴까? 세상 사람들이 그럴까? 그녀가 보여주는 세상은 그야말로 우리가 머리속으로 상상하며 그려낼수 있는 최상의 판타지일 뿐이다. 그녀가 사건 해결의 극적인 실마리를 제공해 법정에서 승승장구할때마다 보는 나는 행복하지만, 내 기억속 그 사람들이 자꾸 떠울라 울컥 울컥 가슴속이 아려온다.
드라마는 드라마일뿐인데.....
보통의 아이들을 키우면서, 또 아이들이 성장해가면서 공유하게 되는 모든 과정이, 특별한 장애를 가진 친구들을 양육하면서는 많이 생략되지 않나? 표현이 조심스럽긴 하지만 그런것 같다. 그래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노력과 헌신과 희생 그리고 시간이 그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 같다. 그 몫을 부모이기에 오로시 감당하며 묵묵히 해 나가는 분들에게 대단하다고, 감사하다고 박수라도 보내드리고 싶은 맘이다.
가끔은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극적 환상이 현실에서도 펼쳐져서, 평생에 한번 꼭! 그 언니가 아들의 손을 마주잡고, 두 눈을 맟추고 마주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 한번 피우는 그런 날이, 그런 기적이 일어났음 좋겠다.
"엄마! 이런 날이 꼭 오게 해달라고 저 평생을 기도했어요!"
새가 알을 깨고 나오듯, 기적처럼 스스로를 가둔 제 세상을 깨고 또다른 세상밖으로, 우리들 세상으로 나오는 그런 날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
영화처럼...
드라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