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트색, 초록색, 하얀색 그 빛깔도 제각각 참 귀엽고 예쁘다. 우리 집에 요 녀석들이 둥지를 틀게 된 데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
때는 바야흐로 2020년 봄.
2019년 초등 3학년이 된 울 집 꼬맹이가 유정란을 부화시켜 병아리를 키우겠다고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아빠와 함께 유정란 15알과 백열전구, 스티로폼 박스, 습도계와 온도계를 준비하고 돌뜸에 따듯한 담요까지 완벽하게 준비해서 사제 부화기를 만들었다. 온도 체크하고, 습도 체크하고, 때 되면 알까지 굴려가며 정성을 들였건만 부화에는 실패하고 알은 모두 골아서 아쉽게 됐었다.
한 해가 지나 또다시 봄! 울 꼬맹이가 유정란 부화에 재도전하겠다고 나설 때, 아빠가 아이디어를 냈다. 그러지 말고 아빠 친구가 전원주택에 사는데 그 집에 병아리가 많더라. 그냥 한마디 갖고 오는 게 어때? 하고. 그렇게 아빠 친구네 집에 가서 부화한 지 한 달이 채 안된 백봉 오골계 병아리 한 마리를 데려왔다. 하얀 깃털의 그 모습이 제법 그럴싸하게 기품 있고 예뻤다. 커다란 집을 만들어 지붕까지 얹고, 횟대를 달고, 풍성하게 모래까지 구해다 바닥에 깔고, 그 모습에 어울리는 백설이란 이름의 문패까지 달았다.
울 꼬맹이가 밤이면 명상음악까지 들려주며 지극정성으로 두 달 가까이 키웠다. 요 녀석 적응도 잘해 어찌나 잘 먹고 잘 크고, 잘 따르던지... 애완 강아지처럼 집 앞 잔디밭에 데리고 나가 산책도 시켜주고, 제 힘으로 콕콕 벌레 잡아먹는 경험도 시켜주며 울 꼬맹이가 신났었다. 그보다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릴 때, 동네 산책시켜줄 때마다 신기하게 바라보며 부러워하는 동네 꼬맹이들과 사람들의 반응에 우쭐해서 울 꼬맹이가 그 시선을 더 즐겼던 것 같다.
한데 제법 날개가 커지자 제집 지붕을 넘어 온 거실을 돌아다니며 똥을 싸고 다니는데, 그 역한 냄새와 똥 테러에 감당이 안되었다. 오랜 시간 외출하고 돌아오면 역한 그 향내와 거실 바닥 곳곳에 도장 찍기 해 놓은 그 흔적에 이제 작별할 때가 됐구나 싶었다. 마침 여름휴가도 다가와 혼자 두기도 그렇고 데려가기도 그렇고 해서 울 꼬맹이를 살살 구슬려 친구들이 있는 옛집으로 보내줬다. 간간이 우리 백설이가 보고 싶을 땐 아저씨네 닭장에 가서 다리에 분홍 고무줄을 차고 있는 고 녀석을 찾아보곤 했다. 얼마나 행복해 보이던지. 아무튼 그 성장세가 너무 빨라 어느새 중닭이 돼가는 모습을 보고 울 꼬맹이도 백설이를 조금씩 잊어갔다.
코로나로 학교 등교가 전면 중지되고 줌 수업으로 온몸이 빌빌 꼬일지경으로 심심했던 울 꼬맹이가 유튜브 세상을 만나더니, 이제는 참새를 잡겠다고 나섰다. 새를 잡아서 키워보겠단다. 유튜브 영상을 보고 또 보더니, 빈 상자로 참새 잡는 트랩을 만들어 집 앞 공원에 설치해 놓고 몇 날 며칠을 들락거렸다. 어찌나 열심이던지, 이 엄마도 그 정성에 제발 눈먼 참새 한 마리라도 좀 걸려달라고 기도를 드릴 참이었다. 그 지극 정성에 하도 안타까워 나가 봤더니, 새들이 어찌나 영악한지 먹이만 배불리 먹고, 유유히 빠져나가는 게 그 엉성한 참새 잡이 트랩으론 어림도 없어 보였다.
집념의 울 꼬맹이는 참새잡이를 멈출 줄 모르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다 그친 그날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엄마가 제안을 했다. "그렇게 잡기는 글렀고, 오늘은 엄마랑 잠자리채 갖고 나가서 비에 젖은 참새를 직접 잡아보자. 그게 빠르겠다" 잠자리채 들고, 1층 나무숲을 돌며 날개 젖어 꼼짝 못 하는 참새나 있음 잡아보자고 돌아다녔는데, 참새떼는 많은데 요 녀석들이 빨라도 너무 빨라서 잠자리 잡기와는 다르게 난이도 최상의 노동이었다. "니가 그쪽에서 몰아봐! 엄마가 여기서 잡아볼께" 참새 잡기 쉽지 않아.
그때 자전거를 타고 몇바퀴를 돌며 우리를 지켜보던 남자 아이가 우리에게 물었다.
"아줌마 뭐하세요?" "새잡아" 그 꼬마가 새잡는다는 소리를 새 찾는다는 소리로 들었는지 "나 저기서 그 새봤는데...." "무슨새? 어디? 가보자" 작은 잉꼬새 한마리가 제대로 날지도 못하고 1층 필로티 자전거주차장에서 배회하고 있었다. "저거요!" 몸이 먼저 반응했다. 가볍게 맨손으로 낚아챘다. 만세를 부르고 싶었다. 궁하면 통하고, 지성이면 감천이고 구하면 찾는다더니... 울 꼬맹이의 진심이 통했구나 싶어 너무도 감격스런 순간이었다. 참새 잡으러 갔다가 앵무새 한마리를 잡는 행운을 누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기쁜맘에 정신이 팔려 집으로 데려오긴 했는데, 고민은 이 녀석을 어떻게 해야 하나 였다. 주인이 잃어버린 애완조가 분명하기에 주인을 찾아보기로 했다. 우리 아파트 카페에 올려 주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요 녀석을 찾는 이는 나타나질 않았고, 우리는 누군가 이사가면서 버리고 갔다고 결론내고 우리집에서 키우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해서 길에서 주워온 울집 첫째가 바로 민트색의 앵두다.
거실에 두고 오며 가며 집안 식구들의 관심을 끌었다. 새소리도 싱그럽고, 손위에 올려 놓으면 사다리를 오르듯 핸들링에 익숙한게 배운 티가 팍팍 났다. 필시 몸값 위해 누군가의 교육을 받고, 애완조로써 눈길을 끌어 누구네 집 반려조로 분양됐던 게 분명한데, 어쩌다 길 잃고 헤메다 우리와 인연이 닿았을꼬!!
"앵두야?" "네!" 해봐. 오며 가며 대답하는 거나 가르치자고 손위에 올려놓고, 때론 새장안을 들여다 보며 교육시키는 엄마를 보고 울 꼬맹이가 건넨 한마디. "엄마! 잉꼬 앵무는 말 못해. 회색앵무 같이 말하는 앵무는 따로 있어" 폭풍 검색으로 앵무새를 알아가던 울 꼬맹이는 얼마안가 그새 앵무새 반전문가가 됐다. 필요한 물품을 하나씩 사서 새집을 꾸미고 손수 건강식도 만들어 제공하며, 앵무새 집사로서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 관심과 열정에, 또 앵두가 너무 외로워보여서 새로 식구를 하나 들였는데 그 녀석이 둘째 초록색의 연두다.
요 녀석. 배운티가 하나도 안난다. 성질도 고약해서 잡으려고 하면 날개를 퍼덕이며 난리법석을 치고, 잡혔다 하면 사정 안가리고 물어대는데, 어찌나 세고 매서운지 때론 눈물이 쏙 빠질 정도다. 장갑을 끼지 않고선 도저히 손댈수가 없다. 역시 못배운 녀석. ㅎㅎ 팻샵 아저씨가 훈련시키다 포기한 녀석이라더니, 완전 개망나니다. 그런 성격 탓인지 앵두와 연두가 알콩달콩한 모습을 보기가 힘들었다. 한동안은 꺅꺅 거리며 새장안에서 숨넘어가는 소리가 끓이질 않았다. 요녀석 엄살도 엄청나다. 그렇게 한집붕 아래서 대면대면 사이 안좋은 부부사이를 연상케 하더니, 시간이 꽤 지난 현재도 그렇다. 그렇게 두 녀석이 울집에 와서 울 꼬맹이 앵집사의 사랑과 정성으로 3년째, 한가족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
2022년 올 봄, 아빠랑 시골장터에 놀러갔던 울 꼬맹이가 흔하게 볼 수없던 흰색 잉꼬 앵무를 보고 반해서 한마리를 더 들였다. 그 이름이 목련이다. 목련꽃을 닮은 그 순백의 모습을 따서 아빠가 붙여준 이름이다. 21세기에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라고 우리가 농을 했지만, 그간 아빠의 변화에 박수를 보내며 흔쾌히 받아주었다. 울집 아빠는 애완동물이라 하면 질색팔색을 하는지라 소라게 한마리도 못키우게 난리를 폈던 이력의 사나이다. 개 한마리 키우고 싶다는 막내딸에게 "나중에 커서 너 혼자살게 되면 그때 키워봐~!" 라며 쐐기를 박던 아빠다. 앵무새 잡아왔을때도 빨리 갖다버리라고 야단이었는데, 요즘 새들을 살들하게 챙기는 모습을 보면 이제 사람됐구나? 싶다.ㅎ
둘이였을땐 그리 좋아보이지 않던 앵두와 연두의 관계가 목련이를 들이고나서 제법 좋아졌다. 첫 얼마간은 셋이서 탐색전을 펼치는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지켜보더니, 어느새 연두와 목련이가 궁짝이 맞아 알콩달콩한 사이가 되었다. 훈련되지 않은 야생성이... 혹은 못배운 녀석들?의 방종함의 코드가 맞았던지 털을 골라주고, 부리를 서로 맞대며 살가운 모습에 앵두가 샘이 났던 모양이다. 전에 없던 다정함으로 연두의 털을 골라주며 구애의 손길을 보내는 앵두의 모습이 참 재밌어 보였다. 앵두의 변화에 새장안에 전에 없던 훈훈한 온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남의 떡이 커뵌다 더니, 둘이 였을 땐 무관심이더니, 새 식구가 들어와 연두에게 관심을 보이니, 전에 없이 제 짝이 남달라 보였나보다. 사람 사이처럼 애완조들 사이에서도 그런 인간관계의 모습이 엿보이는 게 신기하긴 하다.
천방지축 연두가 새장안의 인기조가 되었다. 둘이였을 때보다 두배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냉기 가득하던 새장안에 사랑의 온기가 흐른다. 항상 그런 건 아니다. 간간히 순 넘어갈듯 꺅꺅 거리는 엄청난 외침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허나 고 앙큼한 연두녀석이 양쪽 줄타기를 하듯 하루는 앵두와 한번은 목련이와 살가운 모습을 보여준다. 전에 없던 평화와 고요가 새장안에 종종 흐른다.
셋이여서 좋다.
보는 나도 좋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요 녀석들은 더 좋겠지? 그렇겠지?
하루는 이렇게 놀아보고, 또 하루는 저렇게도 놀아보고 말이다. 이런 저런 조합속에 아마도 우리 앵무새들도 작은 공간에 갇힌 삶이지만 셋이기에 좀 더 덜 단조롭지 않을까? 둘이라는 조합이 주는 딱 떨어지는 맛의 답답함에 셋이여서 숨쉴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요녀석들을 들여다보면 목련이를 데려오기 참 잘했단 생각이 든다.
어쩔땐 요 녀석들을 바라보고 있음 짠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넓고 넓은 세상을 두고도 태어나서 한번도 새장밖 세상의 자유로움을 제대로 느껴보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 평생을 새장안에서 태어나 세장안 세상이 다 인줄 안다. 안타까운 맘에 가끔은 세장문을 활짝 열어두고 자유롭게 놀아보라 권해도, 손수 꺼내서 거실 한가운데 풀어놔 줘도 소용없다. 바로 자기 자리를 찾아든다. 물든다는 것, 익숙해지고, 편안해진다는 게 이런 것인가? 싶다. 자유를 줘도 못 누리고, 또 그것이 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