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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 Oct 26. 2022

닭갈비와 순살족발이 모였다.

닭갈비는 춘천 출신  순살족발은 제주 출신

퇴근길에 문앞에서 나를 맞이 한건 하얀 아이스박스다. 어제는 닭갈비가 왔고, 오늘은 제주산순살족발이다. 우리 큰아들은 학원 자체 모의고사를 치르고, 총알같이 학원을 나서서는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모의고사 치르느라 상당한 에너지를 쏟았을 터, 입맛다시게 맛나는 특별식으로 기분을 전환하고 싶었나보다.  매일 밤10시나 되야 하원하는데 오늘은 특별히 일찍 학원문을 나서니 웬지 기분이 좋았겠지.  결과에 상관없이 말이다.

"엄마! 오늘 뭐 맛있는 것 먹을까요?"

"글쎄! 시험은? 술술 잘 풀리더냐? 아빠가 족발이랑 닭갈비 주문한 것 왔는데, 그거면 되지 않을까?"

"네! 좋아요. 빨리 갈께요!"


평소엔 걸어 다니던 그 길을 뭔 맘이 그리 급했는지 버스를 타고 쏜살 같이 왔다. 뭐가 그리 기분이 좋은지 싱글벙글이다. 혹시 시험문제가 풀만 했나?


뭐 기분 좋은 일 있었냐고 물으니, 요즘은 기분이 좋은 것도 없는데, 자꾸 웃음이 난단다.

"다행이다. 엄마는 가만히 있어도 화가 불끈불끈 솟아나는데.... 화나는 것보다야 낫지! 안 그래?"ㅎㅎ


그렇게 오랜만에 평일 저녁에 큰아들이랑 아빠랑 식탁을 마주하고 앉았다.

야채와 떡을 추가로 넣은 닭갈비는 아들을 위해, 순살돼지족발은 아빠를 위해 준비했다.

아들은 사이다를 반주 삼고, 아빠는 막걸리를 반주 삼는다.

 

오늘 모의고사가 어땠는지부터 시작해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길어지는 가운데, 아빠 친구들까지 소환한다. 아빠와 아들이 같은 고교 동문 사이니, 학교 얘기도 하고, 아빠 친구가 또 그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시니, 애들이 선생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선생님이 평소에 어떠셨는지 얘기가 끝도 없다. 학창 시절에 그 선생님들은 어떠하셨는지, 그 선생님들의 자녀들은 어디 대학에 갔는지. 친구 아빠가 또 제 아빠와 친구사이니 그 아빠는 어떤 분이셨는지, 그 친구는 또 대학을 어디 갔는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야기가 길어진다.

아버지와 아들이 식탁위에 마주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운다.  말하는 것을 참 좋아하는, 또 대화가 잘 통하는? 부자다.


 지금까지도 꿋꿋하게 고교 비평준화를 고수하고 있는 소도시인지라 과거에는 공부깨나 한다는 근방의 소년들이 모여들었던가보다. 그래 그런지 아빠 친구들 혹은 그 선후배들 사이에는 학창시절 공부꽤나했던, 잘나가는 사람들이 종종  다. 지금도 비평준화를 고수하긴 하지만 영광은 과거에 그칠 뿐이다. 수시가 주류인 현 입시제도에서 이 학교는 좋은 내신 따기 힘들다고 전략적으로 기피하는 학생들이 많이 있다. 그런 이유로 타 학교에 비해 수시보다는 정시 진학률이 상대적으로 좋은 편이긴 하다.  말이 비평준화지 현실적으론 거의 고교평준화 지역과 별반 다를바 없이 평준화된 양상을 보이긴 한다. 고교평준화 한다 한다 수년째 말만 나온다.


3대가 같은 고교 동문이면 장학금을 주는 학교다.  한 지역에서 3대가 대를 이어살면서 또 같은 고교 동문일 가능성은 정말 쉽지 않을텐데.....

 큰아들 때는 4명이나 있었는데, 작은 아들 말로는 올해 딱 1명 있었다고 한다. 우리 큰아들은 자기가 결혼해서 아들을 낳아 이 학교 보내면 우리 집도 장학금을 탈 수 있겠다고 농담을 한다. 그런 영광? 이 있을까?ㅋㅋ


아빠가 말씀하신다.

학창시절 공부를 잘했다고 해서 다 잘 사는 건 아니다. 또 열심히 한다고 누구나 다 공부를 아주 잘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하는 둥 마는 둥 그렇게 게으름을 피우는 건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고 아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항상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고. 지금은 새로운 문제 풀 생각 말고, 지금까지 풀어왔던 문제 다시 보면서 찬찬히 정리를 해보라고 충고를 한다.


아들 왈;

아빠! 그건 아빠가 옛날 사람이라 잘 몰라서 그래요. 기본에 충실해가지고는 요즘에 좋은 점수 못 받아요.

제가 당사자잖아요. 제가 아빠보다 더 잘 알아요. 제가 알아서 잘할게요.


아빠 왈;

그래? 음~~

저래서 안 되는 거야! 좋은 말 해주면 건방져서 들을 줄을 몰라~


음식은 바닥이 났고, 자리를 정리할 때가 됐음을 알리는 신호이다.


오랜만에 저녁 먹고, 아들이랑 집 앞 공원을 도란도란 돌면서 동네 산책하고 들어왔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참 듬직한데, 행동하는 걸  보면 철이 없다. 참 희한하다!

2022년 10월 26일 수요일  가을밤 큰아들과 도란도란 동네산책이 참 좋았던 늘봄.....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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