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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 Nov 18. 2022

아들아! 이번이 마지막이다.

앞으로 수능도시락은 없다! 알겠느냐?

"엄마! 도시락은 쌌어요?"

"아니! 지금 일끝나고 장봐서 들어가는 중이야. 좀 늦었네. 이제 가서 도시락 쌀려고."

"잘됐네요. 제가 점심은 학원근처에서 먹고 6시까지 공부좀 하고 갈테니까 도시락은 저녁에 준비해주세요."


2023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보기 하루전 우리 아들과 점심즈음의 통화다.

평상시처럼 오전 8시 20분경에 학원에 도착해서 오전공부좀 하다가 학교에 들러 수험표 받고, 막바지 마무리를 하고 싶었던지..... 집에 와서 점심을 먹겠다더니, 계획을 바꾼 모양이다.


작년에 이어 우리집 큰아들은 두번째 수능을 앞두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큰아들은 작년처럼 수능 도시락을 미리 싸서 먹어 보겠다고 엄마에게 부탁을 한 것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나의 큰아들이 두번째 수능을 치른 오늘까지 해서 합 4번의 수능 도시락을 샀다.

두번은 시식용이다.


주변에 수능을 치른 아이들을 많이 보긴 했어도 우리 아들같이 수능 도시락을 시식하겠다고 준비해달란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작년엔 일주일전에 수능도시락을 샀다. 그것도 우리 아들의 요청으로. 학교도 안가고 집에서 늘어지게 있다보니, 심심했던 모양이다.  코로나 환자 확산으로 행여 문제가 생길까 싶어 그랬는지 작년엔 한달전부터 등교 대신 가정수업을 했었다.


중3인지 고3인지 구분안가게 빈둥대는 듯 하던 녀석이 수능 도시락을 미리 싸서 먹어보겠다 했을 때, 어이가 없어서  "도시락 신경쓸 정신이 있으면 책이라도 한자 더 봐라"고 핀잔을 주었던 기억이 난다.


시식용 도시락을 싸서 마주 앉아 도란도란 맛나게 먹고는 이렇게 하면 좋겠다, 저렇게 해달라고 부탁할 땐 철부지 우리 아들이 귀엽기까지 했다. " 밥 먹으러 가냐?"는 농담으로 한바탕 웃었었다.

간장불고기, 소세지야채볶음, 볶은김치, 멸치볶음, 소고기무국. 귤2개

작년 수능 시식용 도시락



그런 도시락을 첫 국어시간에 혼이 나가 거의 먹지도 못하고 남겨온 걸 보고 무척이나 가슴이 아팠다. 하나도 안떨린다고 시험 잘 보고 오겠단 인사에 아는 것만 실수 없이 잘 풀어라. 행운이 함께해서 찍어도 다 맞을거라 고 엉덩이 토닥여서 보냈는데.....  


국어시간 술술 풀려야 할 앞부분에서부터  하나가 딱 막히기 시작하더니, 시간이 꼬여서 시간을 너무 허비해 문제를 다 구경도 못하고 다 풀지도 못하고 찍기에도 시간이 부족했단다.


수학이라도...마음을 다잡았지만, 첫시간의 충격과 아쉬움에 욕심만 앞서니, 머리는 안돌아가고 온 걱정에 진정이 되질 않았단다.


그래서 중간에 감독선생님 대동하고 화장실 가서 세수 하고 정신차리고 와서 겨우겨우 마무리 했다고. 풀만한 쉬운 문제들도 낙엽이 되어 울 아들을 속상하게 했다. 무엇하나 만만치 않았던 첫 시험의 기억이다.


부족한 실력! 누굴 탓하랴!

허나 그 첫시험에 맘같지 않은 상황에 울 아들이 얼마나  당황하고 힘들었을까 싶어  듣는 내내 짠 했다.


또다시 일년을 보내고 또 미리 도시락을 먹어보겠다는 울 아들. 작년에 간장불고기가 식으니까 별로 였다고, 올해는 식어도 괜찮은 것으로 바꿔 달라기에

계란말이, 소세지야채볶음, 무생채, 김 그리고 소고기무국으로 준비했다. 좋단다. 케찹을 꼭 넣어 달란다. 고기가 없으니, 국물에 고기를 넉넉히 넣어 달라고. 작년엔 무국 대신 라면 국물을 좀 싸가면 어떻겠냐고 했던 녀석이다. ㅎㅎ

올 수능 시식용 도시락


보기에도 여유로운 1년간의 재수 생활을 했다.

오늘은 집중해서 공부좀 열심히 했냐고 물으면 그 상냥한 얼굴로 미소 가득 머금고, 요새 공부가 너무 잘 된다고, 오늘도 열심히 했다고....


6월 중순부터 독학재수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으니 아침 8시에 나가서 10시 학원 마치고 귀가하는 학원생활도 5개월여 했다. 학교 다닐때처럼 매일 아침저녁으로 20여분 거리의 그 길을 꾸준히 걸어다녔다.


제 말로는 열심히 안한 날이 없다. 그래서 집에 와서는 쉬어야 한다고 취미생활을 즐겼다. 남들은 공부하는 자식의 모습이 안쓰럽다는데, 저렇게 즐겁고 환한 얼굴의 재수생은 또 들어보질 못한 것 같다.


그 덕에 이 엄마도 답답하긴 해도 큰 부담없이 아들을 지켜볼 수 있었다. 제 나름 열심히 하겠지. 저도 생각이 있겠지하고 말이다.

그런 시간들이 거짓말처럼 훅 지나갔다.


오늘 아침, 이른 아침밥을 먹으면서도 이런 저런 이야기에 여유로웠다.

아들과 달리 내 맘은 걱정이 앞섰다. 혹 너무 어려워 제 실력이 못 미친다한들 세번째 도전을 할 수는 없지 않는가? 다시 지난해와 같은 일이 없기만을 기도했는데....


시험을 치르고 온 우리 아들은 작년과 비슷한 얘기를 한다.

이번엔 과탐에서... 집중이 안돼더란다. 점심에 밥도 잘~ 다 먹었는데 배가 고파서.... 생각보다 어려워서....

아이고! 내년에 또 도시락 싸주리? 년중 행사냐?


'네 실력이 아직 멀었구나! 열심히 공부 했다더니, 넌 무슨 공부를 했던 것이냐?'ㅎㅎ


아들아!

우리집 일등아들 민돌아!

아무튼 수고 했다.

힘든 티를 안낸건지, 진짜 안힘들었던지간에 묵묵하게 일년 잘 보내줘서 고맙다. ㅎㅎ


네 능력의 부족을 하지 마라.

네가 들인 노력과 열정이 부족했음이리라.

올해 수능도시락



오늘 우리 큰아들을 위한 저녁

결코 끝이 아니다.

너의 진정한 세상은 이제 시작도 하지 않았다.

진지하게 네가 걸어갈 세상을 고민해보길 바란다.


2022년 11월 17일 목요일

두번째 수능을 본 아들을 생각하며 잠들었다 일어난

.........늘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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