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들떠서 챙긴 물건, 챙기고 또 챙기더니, 보기에도 민망하게 큰 쇼핑백을 하나 들고 등교했다. 그 큰 쇼핑 백안에는 케이크 아이싱(케이크를 꾸미는 단계 혹은 케이크를 꾸밀 때 쓰는 재료를 말한단다. 꼬맹이설)에 필요한 갖가지 것들을 차곡차곡 넣었다. 특히나 블루베리 콤포트(프랑스식 잼으로 과일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며, 설탕을 많이 넣지 않아 과일 본연의 맛을 느끼게 해준단다)까지 어제 미리 만들어 준비했다. 말린 무화과까지 넣고 조려서 맛도 색깔도 기가 막히게 잘 만들었다. 오늘 학교에서 생크림 케이크 만들기 체험을 한다는데, 얼마나 대단한 케이크를 만들어 오려고 저 법석을 떠는지.... 유난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무척 귀엽기도 하다.
하굣길에 제법 커다란 상자를 들고 왔다. 오늘 만든 케이크가 들어있다. 너무너무 궁금하다.
"오늘 케이크 만들기 재미있었어?"
"네! 그런데 생크림이 너무 단단해서 제대로 못 만들었어요! 케이크 시트가 3층짜리 여서 아쉬웠어요!"
우리 꼬맹이의 말을 빌리자면, 제노아즈라고 하는 케이크 시트가 4층 정도 됐으면 좋았을 거란다.
1인 체험용으로 이 키트 하나면 누구라도 손쉽게 케이크 만들기 체험이 가능한가 보다. 키트당 만원 정도 하는 것 같다고 우리 꼬맹이가 알려준다. 참 실용적이고 간편한 체험팩인 것 같다. 눈으로 보진 못했지만 말이다.
이런건가??
너무 궁금해서 기다릴 새도 없이 상자를 열었다. 우와! 정말 예쁘기도 하고 맛있어 보이기도 하다. 하얀 생크림에 블루베리 콤포트 국물을 섞어서 예쁘게 화장한, 보랏빛 도는 케이크 위에 무화과 조림과 생블루베리와 진주초코릿볼로 장식했다. 엄마 눈엔 너무 훌륭하다. 촛불도 켜고 파티를 해야 할 것 같다. 꼬맹이는 뭔가 아쉬운 모양인데, 내 눈에는 완벽하다. 어쩜 이렇게 잘 만들었냐고 대단하다고 엄청 칭찬을 해주었다.
블루베리 생크림 케이크
사실 나는 우리 꼬맹이가 작년, 일 년 동안 만들었던 그 많은 빵과 과자, 케이크 등등을 한데 묶어 예쁜 브런치 북 한 권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올해 초등 6학년이니, 졸업하는 날 초등 졸업 기념 선물로 의미 있게 말이다.
게으른 엄마는 바쁘단 핑계로 시작도 못하고, 머리만 굴리며 구상만 하고 있다. ㅎㅎ
초등 5학년 꼬맹이의 솜씨라고는 엄마도 믿기 힘든 작품 같은 디저트류가 너무 많아서 사진으로 보관해두고 있다. 그 모든 과정이 유튜브를 통해서 가능했다는 것이 더 놀라웠다. 꼬맹이의 솜씨가 진화해갈 때마다 나는 유튜브의 위력에 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유튜브 세상에선 안될 게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딸아이의 완성품을 보면서 했다.
한편 20년 가까운 세월을 우리 가족 밥상을 책임지며 살아왔는데, 일 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일궈낸, 꼬맹이 딸의 열정의 결과물을 보면서 음식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 꽤 많은 반성을 하기도 했다. 성과는 관심과 열정 그리고 노력의 크기에 비례할 뿐 나이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세상이 정말 많이 변했다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주변에서 우리 꼬맹이를 보고 제과제빵 학원 보내주라고 조언도 했지만 그 말을 전해 들은 우리 꼬맹이는 왜 돈을 주고 학원 가서 이런 걸 배워야 하냐고 의아해 했다. 사실 학원에서 배울 수 있는 초급 수준은 넘어선지라 그만하면 됐다 싶었다.
취미에 재미가 붙어 급기야는 꿈조차도 바뀌었다. 어렸을 때부터 일관되게 의사가 되겠다고 의지가 확고했던 꼬맹이다. 오빠들이 저금통 털어 사준 병원놀이 세트 손에 들고, 목에는 청진기 걸고 어린이집도, 놀러 갈 때도 항상 휴대하고 다녔던 지라 그 꿈을 바꾸리라고는 한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다.
어머머! 이렇게 사랑스럽고 귀엽기만했던 울 꼬맹이 삼남매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립고나! 우리 꼬맹이들아~~ㅎㅎ
한참 낭만닥터 김사부가 유행하던 때, 할아버지 성묘길에 오빠들과 사촌오빠가 우리 차에 나란히 탔던 적이 있었다. 드라마를 열심히 보던 우리 큰아들이 사촌 형에게 그 드라마 보냐고 물었고, 자기는 드라마 잘 안 봐서 모르겠다고 하던 그때 " O식아! 우리 민하가 김사부처럼 의사 선생님 된데!!" 내가 한마디 끼어들었더니 고 장난기 많은 사촌오빠는 "얘 가요? 절대 못돼요! 아 제가 얘가 의사 되면 다섯 손가락에 장을 지지고 전 재산 다 줄게요! 얘는 절대 못돼요" 하며 콧웃음을 쳤다. 이에 질세라 " 너 정말이지? 딴 소리 없기다. 야. 민돌아 빨리 녹음해"
"그래요! 좋아요. 녹음해요." 그때 녹음한 녹음 파일이 지금도 우리 집 외장하드 어딘가에 남아있을 것이다.
그 사건이 이후로 장난기 많은 이 엄마는 우리 꼬맹의 꿈을 확고히 해줄 동기 하나를 더 얻었기에
"꼬맹아! 너는 공부 열심히 해서 의사만 되면 니 인생 피는 거야! ㅇ식이 오빠는 혼자잖아, 오빠네 집도 차도 다 니꺼 되는 거야. 오빠네 엄~청 부자야! ㅋ 그뿐이야? 오빠가 직장 다니면서 다달이 벌어오는 돈도 다 니꺼 되는 거야. 넌 진짜 좋겠다. 공부만 하면 되잖아. 부자되기가 얼마나 힘든 줄 알아? 의사 되기보다 더 힘들어!"
그렇게 공고해지는 울 꼬맹이의 꿈을 다잡아 주면서 마치 우리 꼬맹이가 의사 다 된 것 마냥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참 좋았다.ㅎㅎ
그 이후로 조카 녀석을 만날 때마다 그 약속을 상기시키며, 공부 열심히 하라고 뒤통수를 다듬어 주었다. 우리를 위해 너는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이다. 니 덕에 우리 막내딸이 의사 되면 니 재산이 울 딸 것 되는 거니까 이 작은 엄마는 덩달아 부자 되는 거라며 고 녀석 심장 쫄리게 장난을 쳐 주었다. ㅎㅎ
그러던 우리 꼬맹이가 4학년 겨울방학에 머랭 쿠키를 만들기 시작했다. 거품기 하나로 40분을 저어 흰 달걀 머랭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고 또 우리는 기가 질려 버렸다. 큰오빠 생일맞아 갈비먹으러 가자는 유혹도 뿌리치고 추적추적 비오는 날 혼자서 말이다.
유튜브를 보고 또 보고, 레시피를 받아 적고 만들기에 만들기를 거듭하더니, 자신감이 붙은 울 꼬맹이는 마카롱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색색이 너무 예쁜 마카롱을 보고, 당시 마카롱을 파는 디저트 가계가 하나 둘 생기더니, 정말 마카롱 좋아한다는 사람들이 주변에 쏟아졌다.
화려하고, 눈 돌아가게 예쁜 마카롱을 보고, "야! 저런 걸 니가 어떻게 만들어?" 집념의 우리 아가씨는 그것도 해내더란 말이다. 와! 보는 내가 질릴 정도로 만들고 또 만드는 그 무한 반복 속에서 제법 모양을 찾아가는 마카롱을 보고, 순간 "세상에 이런 일이"에 제보하고 싶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마카롱 도사가 됐어요.
엄청~ 이렇게 잘 만들어요! 하고 말이다.
마카롱 도사가 되더니, 식빵을 만들고, 모닝빵을 만들고, 팥빵을 만들고, 자신감이 붙은 꼬맹이는 83살이 되신 할머니를 위한 생딸기 가득한 프레지에 케이크를 제노아즈까지 직접 구워 만들어 온 식구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빵에서 쿠키로 또 듣도 보도 못한 다양한 디저트를 만들었다. 타피오카 펄이 들어간 음료가 유행처럼 번질 땐 타피오카 전분을 사서 손수 반죽해서 빚고, 긇이고 익여서 흑설탕에 조려 수재 타피오카 펄을 만들어 음료를 완성해 대령했다. 그 작은 타피오카 펄을 손으로 경단처럼 굴려 만드느라 꼬박 두 시간의 공을 들였다. 그 집념과 끈기는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타피오카 펄 동글동글 만들기 쉽지 않아요. 장장 두 시간을 낮잠 자는 엄마를 깨우지도 않고 만들었지요. 심심하단 이유로!
삶고, 흑설탕에 조려 2시간여 공들여 완성한 타피오카 펄! 맛은 또 얼마나 기막히게요. ㅎㅎ
제빵 천재 아냐? 내 딸이지만 도대체 얘 뭐지? 싶었다. 다~ 엄마라서 보이는 과도한 반응이지만.ㅎㅎ
한편으론 그 모든 것들이 레시피에 빈틈없이 그대로만 따라 한다면 결과물도 꼭 그렇게 나오더라는 거다.
옆에서 지켜보니, 정확한 계량이 정확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는 사실, 과정 과정에 빈틈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우리 꼬맹이는 기가 막히게 단 거의 1g의 오차?도 없이 계량하곤 했다. 비법이라면 그게 비법이다.
본인 성격이 잘 맞았던 것 같기도 하다.
이 엄마는 아마도 돈 주고 하라 해도 그런 답답한 작업은 절대 못했을 것이다. 한식이 내 성향과 성격에 아주 잘 맞는다는 걸 울 꼬맹이 딸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한편으론 내 배속에서 열 달을 키워 세상에 내보냈는데 도대체 넌 누구냐? 싶었다.ㅋㅋ
생딸기 프레지에 케이크....프레지에는 프랑스말로 딸기라네요.
그렇게 재미가 있었던지, 우리 꼬맹이는 엄마에게 폭탄 선언?을 했다.
"엄마! 나 의사 안 할래! 디저트 카페 사장될 거야!" 잉?? 이건 또 무슨 소리??
다 된 밥에 재 뿌리는 소리?? 오랫동안 굳건했던 꿈을 바꿀 만큼 재미있고 좋았던가 보다.
그나저나 나는 너무도 진지하게 자기의 바뀐 꿈을 말하는 우리 꼬맹이의 말에 힘이 빠져버렸다. 마치 의사면허증을 집어던지고 빵가게 사장되겠다는 의사 선생님을 마주 대하고 있는 듯했다. 내가 너무 큰 꿈을 야무지게 꿨던 거지. 4학년 때까지 항상 의사 가운을 입고 청진기를 목에 두른 멋쟁이 선생님을 그려놓고, 나의 장래 희망이라고 눈부시게 매년 그려오던 녀석이라 그 꿈을 이렇게 쉽게 내던질 줄 몰랐다.ㅠㅠ
그 덕에 부자 딸 엄마 될 나의 꿈도 허망하게 물 건너갔다. 아들 덕에 서울 가고, 딸 덕에 부자 되기를 소원했던 허풍선이 엄마의 꿈은 모두 사라졌다. 이제 진짜로 나의 꿈을 꿔야 할 때가 온 것이다. ㅋㅋ
올해는 취미가 또 바뀌어 네일아트에 열심이다. 또 피부에 여드름이 나기 시작하자 여드름 관리에 들어가 피부 전문가가 됐다. 뷰티 유튜버를 스승 삼아 각종 정보를 다양하게 섭렵하고 있다. 요새는 아이돌 댄스에 빠져 뻣뻣한 몸에도 열심히 영상을 참고 삼아 매진하고 있다. 심심하지 않은 일상을 유튜브와 함께 하고 있다.
이 요상한 손톱의 주인공은 울 꼬맹이다. 무섭지요? ㅎㅎ
코로나로 인해 줌 수업이 일반화되면서 영상에 노출되는 시간이 너무 많아 우려가 컸었다. 코로나로 일상이 멈춘 가운데, 학교도 맘대로 갈 수 없었던 그 시간들이 우리 꼬맹이 딸에게는 꿈같은 시간이었다. 그 시간이 아니었던들 이런 재미난 세상에 폭 빠져볼 기회나 있었겠나 싶다. 어쩌면 우리 꼬맹이에게 잊지 못할 소중하고 값진 시간을 보내게 해 준 시간이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 덕분이었던 게다. 세상에 좋은 것이 항상 좋을 수 마는 없고, 또 나쁜 것이 항상 나쁠 수만도 없는 게 세상살이인가 보구나 싶다.
의사가 되든, 디저트 카페 사장이 되든, 네일 아티스트가 되던, 피부관리사가 되던 뭐가 되는 항상 행복한 일상이 몽글몽글 피어나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삶의 주인공이 되길 바란다.
꼬맹아! 엄마는 항상 너의 꿈을 응원하다.
울 꼬맹이의 비법 레시피북 속 한페이지! 기념으로 찰칵~~
여담이지만, 울 꼬맹이는 저 많은 것들을 만들 재료와 도구를 얻고파 엄마가 내건 미션을 완수하기 위해 제법 애를 썼다. 영어책 읽기 미션을 내걸어 몇줄 안되는 영어책을 수도없이 읽어댔다.
50권 읽을 때마다 5만원! 열정과 관심은 그것도 가능케 했다.
기껏해야 10쪽이 채 안되는 아주 초급용 책이긴 했지만.... 몇줄 안되는 책 골라골라 다 읽고나서는 그런 책이 다 떨어져 어쩔수 없이 제법 글줄 되는 책도 읽곤 했다. 슬슬 힘들어지자 읽은 책 또 읽어도 돼냐며 꼼수를 쓰더니 그 몇줄 안되는 책들을 줄줄 외울 정도로 읽고 또 읽었다. 거기까지 였다.ㅎㅎ
그래서 질렸나?
이제 영어학원 갈때 됐다 싶어 권하고 기다리고 있는지가 몇개월짼지... 지금까지 버티고 있다.
욕심이 과하면 꼭 부작용이 난다.
"야! 꼬맹아~ 제과제빵하던 열정과 관심을 영어에 쏟았더라면, 너 진짜 영어 잘 했겠다! 그랬으면 얼머나 좋았겠냐? 지금이라도 영어에 관심을 좀 갖자. 응?" 엄마는 아직도 그 과한 미련을 못 버린다.
중학가기전 올해 꼭 읽어보자고 약속은 했건만..... 이 허망한 계획이여! ㅎㅎ
딸아! 브런치북은 커서 니가 만들어라! 이건 엄마의 초등 졸업선물이다. ㅎㅎㅎ
사진때문에 힘들고나!! 아이고~
미안하지만 브런치북은 엄마의 능력 밖이다. ㅋㅋ
2022년 10월 29일 금요일 꼬맹이딸이 학교서 만들어온 케이크 자랑할려다 일이 커진.....늘봄 쓰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