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늘봄 Jul 05. 2023

이별은 항상 가슴 아프다.

그렇다! 남는 건 항상 그림자처럼 드리워진 슬픔이다.

장맛비가 내린다. 온 세상이 우중충하게 축축하게 젖어든다.


장마철 폭우예보에  난!

비만 오면 엄마 무덤 떠내려갈까 봐 그  걱정에 개굴개굴 울어댄다는, 말 안 듣던 청개구리 마냥 혹시나 하는 맘에 그런 걱정을 해본다. 며칠 전 아파트 뒷마당 제일 키 큰 소나무를 골라, 그 아래  우리 집 귀염둥이 잉꼬 앵무새 앵두의 영원한 안식처를 마련했다.


꽃삽을 들고, 축축하게 젖어든 땅을 파고드는데, 깊게 팔 수가 없었다. 땅을 파면 팔 수록 알 수 없는 넓적한 고무밴드가 얽히고 설켜서 이리 파도 저리 파도 꽃삽이 제대로 들어가질 않았다. 아마도 아파트 입주 시에 타지에서 뽑아온 소나무인지라 그 뿌리를  그 튼튼한 고무밴드로 칭칭 감아 매어 이동 시켰던 모양이다. 그래서 옆에서 소리 없이 울고 있는 우리 꼬마공주를 달래며, 대충대충 겨우 우리 앵두 들어갈 자리를 마련해 꼭꼭 묻어주었다.


양동이로 부어대듯 큰 폭우가 내린다면 혹시나 그 비에 얕은 흙덩이들이 씻겨나가고, 살포시 종이에 쌓인 우리 앵두의 작은 몸이 땅 위에 드러나지 않을까...... 그런 걱정을 해본다.


꼬박 3년 전, 그러니까 2020년 6월 30에 앵두는 거짓말처럼 기적처럼 우리 가족이 되었다.

너무나도 작고 어여쁜 아기새였다. 색깔도 너무 예뻤고, 하는 짓도 너무 예뻤다.

내미는 양 손가락을 사다리 오르듯 쉴 새 없이 타고 오르는 그 움직이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덕분에 초등학교 4학년이던 우리 꼬맹이는 새 친구를 맞아 코로나 시국을 덜 심심하게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앵무새 준전문가가 되어, 앵무새 집사다운 면모를 확실히 보여주었다.

외로울까 싶어 두 마리 더 분양받아 새 친구도 만들어 주었다.

공원산책도 종종 나갔던 우리집 잉꼬친구들


그렇게 3년, 우리 집 거실에서는 아침마다 재잘대는 새소리에 경쾌하게 아침을 시작했다. 눈감고 새소리 벗 삼으면, 이곳이 어느 고요한 숲 속 공원인가 싶었다. 보살피고, 챙겨야 하는 번거로움이야 있었지만.... 날리는 새털과 먹고 버리는 곡물 껍데기, 그리고 먹기 무섭게 싸대는 똥. 하지만 다른 애완동물들에 비해 냄새는 거의 나지 않아 그러면에서는 큰 부담 없이 함께 살면서 살가운 정을 나눌 수 있었다.

우리 꼬맹이 대학 갈 때까지는 건강하게 잘 지낼 줄 알았는데.... 모든 것이 순식간이었다.


"엄마! 앵두가 이상해"

지난 토요일이었다. 우리 딸아이가 기운하나 없이 온몸을 부풀리고 있던 앵두의 모습에서 이상한 기운을 느꼈던 모양이다. 생기 없이 축 쳐 저서 먹이도 먹지 않았다. 횟대에 앉아있는 것도 힘들었던지 나중엔 바닥에 내려와 두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 영 안쓰러웠다.



매일 아침, 출근 전에 먹이와 물을 갈아주고, 배변판을 바꾸고, 바닥에 떨어진 부스러기들을 청소기로 치우고... 습관처럼 해왔던 일이다. 그러는 와중에도 이상하단 생각을 못했을 만큼 별일이 없었다. 전날도 그랬다.

내가 너무 무심했었나? 기억을 돌려 자꾸 되짚어도 이런 일이 벌어질만한 변화는 없었다.


혹시?

문뜩 뇌리를 스치는 일이 있긴 했다. 그것도 2주 전이었느니, 지금 이 상황과 연관성을 찾기엔 무리가 좀 있어 보이긴 하지만.... 만 3년을 키운 우리 집 잉꼬가족 앵두네는 암놈 앵두와 수놈 연두와 목련이가 구성원이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안다는 그런 사랑스러운 사이는 아니었다. 유달리 수놈 두 마리가 꽁냥꽁냥 하면서, 암컷에게 옆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그런 연유로 3년을 키우면서 알 한번 낳는 것을 구경할 수 없었다. 알을 낳아 부화시켜 아기 잉꼬새 보는 것을 소원으로 삼았던 우리 꼬마 아가씨는 기다리다 지쳐 다른 방법을 구했다.


올 3월 중학교 입학 선물로 새로운 앵무새 식구를 들이고 싶다고, 그것이 소원이라고 말이다. 모두를 두 손 들어 반대했으나 가족들의 반대에 큰 목소리 한번 제대로 못 내고, 며칠 내내 풀 죽어 울고 있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이런저런 조건을 내걸고 어렵사리 소원을 들어줬다.


그렇게 3월에 코뉴어 파인애플종 두 마리를 집으로 들였다. 식구들의 강력한 반대에 어쩔 수 없이 우리 집 꼬마아가씨 방안에 새둥지를 마련하고, 혼자서 가족들에게 피해가 안 가게 돌보겠다고 다짐을 받았다.

그런데 요 녀석 두 마리는 얼마 안 가 온 가족의 공공의 적이 되었다. 뭔가 제 불만이 생기면 울어대기 시작하는데, 이곳이 아마존 어디쯤의 정글인가 싶었다.

 강아지 짖는 소리 저리 가라 싶게 시끄러웠다. 시도 때도 울어대는 통에... 게다가 조제 영양식을 먹다 보니 그 냄새가 상당히 코에 거슬렸다. 제 방에서 불평도 못하고, 그것을 몇 달째 감내하고 있는 우리 막내딸이 안쓰럽기도 했다.


게다가 머리가 좋아 그런지 수시로 새장문을 열고 나와 집안을 돌아다니며 똥테러를 하곤 했다. 하루는 거실까지 나와 잉꼬새들을 쫓아내고, 그 새집 안에 떡하니 들어가 있는 것을 보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단단한 부리에 한번 물리면, 살점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그 고통이 엄청났다. 그러니 작은 잉꼬들이 공격을 받는다면야.... 다행 작은 새들은 주방에 옹기종기 모여 피신해 있었다.


그 이후론 새장 문단속에 특히 신경 쓰며, 출근할 때마다 딸아이 방문을 꼭 단단히 닫고, 점검을  다시금 했었다. 그런데, 여름이 다가오고, 날이 더워지니 딸아이 방에서 나는 코뉴어들이 풍기는 그 역한 향기들을 환기만으론 감당하기 힘들어졌다. 딸아이 건강도 염려되었다. 그래서 앵무새들의 공간 정비에 나섰다.


사고?가 나기 2주 전 커다란 테이블을 마련해 그 위에 잉꼬들의 새장과, 코뉴어들의 새장을 나란히 배치시켰다. 그리고 코뉴어들의 새장은 꼭꼭 걸어 잠가 두고, 잉꼬 앵무들은 편안하게 들락거릴 수 있도록 새장문을 활짝 열어 두었다. 거실에서는 쉴 새 없이 잉꼬 앵무들과 파인애플 코뉴어들의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합창이 쉴 새 없이 울려 퍼졌다.  '그래 바로 이거야' 내 맘만 뿌듯했다.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찾은 듯, 꼬마아가씨 방문을 열고 들어가는 일이 그토록 맘 편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침마다, 수시로 울어대는 그 엄청 난 소음에 나머지 가족들의 원성은 날로 심해졌다. 특히나 소음에 예민한 아빠는 쟤들은 집에서 키울만한 종이 아니라고, 다른 집에 입양 보내자고 수시로 막내딸을 볶았다.


그런 와중에 갑작스레  우리 집 최애 잉꼬였던 앵두가 그런 허망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아마도 우리가 없는 사이 그 큰 코뉴어의 공격을 받아 그런 일이 생긴 거라는 추측이 기정사실화 돼 가고 있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렇게 건강하고, 활발하게 잘 놀던 녀석이 이유 없이 하루이틀 사이에 그리 황망하게 비명에 갈 수는 없다는 것이 똑똑한 우리 제비아빠의 추리 결론이다.  모두 앵두를 잃은 안타까움에 못된 코뉴어 두 마리는 더 따가운 눈총을 받게 되었다.


한편 나의 결정이 이토록 후회스러운 결말을 가져올 줄이야. 그대로 뒀더라면... 이런 맘 아픈 일은 없었을 텐데.. 싶어 내내, 그리고 지금도 많은 후회를 하고 있다.


 우리 꼬마 아가씨는 앵두 병간호에 진심을 다했다.

앵무새 카페에 조언을 구하고, 그곳에서 알려주는 대로 지극정성을 다했다.

이유식을 구해 두 시간 간격으로 따듯한 물에 개어 온도까지 체크해 가며 먹였다. 그간 기운 없어 못 먹어서 그랬던지 너무도 잘 받아먹었다. 알람을 맞추고, 수분보충을 위해 게토레이가 좋다며 그걸 또 한 시간 간격으로 몇 방울씩 먹였다. 따듯하게 해주는 게 좋다는 조언에 족욕기에 이불을 깔고, 이동장에 배딩을 해서 그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옥시 마이신을 먹이면 좋다는 말에 약통을 뒤져 먹다 남은 항생제를 찾아 먹였다.


엄마가 아픈 아이를 돌보듯 그 애절한 보호에 자꾸만 내 맘속엔 죄책감이 일었다.

내가 좀 더 신경 썼어야 했는데....

내가 자리이동만 안 했어도...

아! 내가 아침마다 좀 더 신경 써서 봤더라면....

좀 더 일찍 이상징후를 알아체렸더라면.......


열심히 받아먹고, 기운을 차린 듯 몸놀림이 차츰 좋아지는 듯해 이젠 됐구나 했다.

우리 꼬맹이의 정성에 앵두가 답하는구나, 이제 살겠다 싶었다.

그런데 일요일 밤이 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입을 다물고, 먹기를 멈췄고, 발가락이 말려들었다. 그리고 눈만 힘없이 깜빡였다.


아~ 우리 앵두가 이대로 가는구나.

우리 꼬마 아가씨는 간호하는 내내 소리 없이 울음을 울다 그치다를 반복했다.

오늘을 넘기기 힘들겠다는 아빠말에 눈물이 멈출 줄 몰랐다.

그 작은 아기새를 대하는 간병의 손길이 어찌나 지극하고, 조심스럽고, 애정이 넘치든지 보는 내내 감동이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열네 살! 매일 아기 같다고, 어리기만 하다고 생각했던 우리 딸아이에게서 아기를 간호하는 엄마의 손길 같은 정성을 아기새에게 다하는 것을 보고 나도 눈물이 흘렀다. 거기에 더해진 진한 죄책감에서 쉬이 빠져나올 수 없었다. 우리 꼬마는 사랑과 정성을 다해 3년을 돌봤고, 그 긴 시간을 함께 한 앵두를 이리 보내기 너무 싫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 속에서 3년 전 내 모습이 떠올라 또다시 눈시울이 젖어들었다.

앵두를 돌보는 우리 꼬마 아가씨와 앵두의 사그라들어가는 생명의 마지막 순간의 모습에서, 자꾸 3년 전 아버지와 내 모습이 그려졌다. 앵두가 우리 아버지 같았고, 그 앵두를 젖은 눈으로 바라보는 우리 꼬맹이가 나만 같았다. 그 묘한 감정에 내 맘속에 먹먹하면서도 묘한 죄책감, 이런저런 감정의 회오리에 순간순간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월요일 이른 새벽!

잠자듯 고요히 제 명을 다하고, 우리 집에 아름다운 기억과 흔적을 남기고 앵두는 떠났다. 그런 앵두를 우리 꼬맹이는 두 손으로 감싸 들었다. 그리고 소리 없이 두 눈이 빨개지도록 울었다.

"꼬맹아! 네 덕분에 앵두는 우리 집에서 행복하게 살다 갔잖아. 너무 슬퍼하지 마"

"엄마는 네가 대학 갈 때까지 앵두가 우리랑 함께 할 줄 알았는데..... 너무 빨리 갔네?"


"미나리? 3년 전에 앵두가 너를 못 만났으면 아마 그때 죽었을 거야. 그런데 너를 만나서 앵두가 3년이나 더 살다 갔잖아. 그러니까 앵두는 니 덕분에 행복하게 오~래   살다 간 거야. 알았지? 다 그런 거야"

아빠도 위로의 한마디를 건넸다. (아빠는 우리 집 막내를 미나리란 애칭으로 부른다).

오빠들도 제일 아끼는 앵두가 가서 슬프다고 입을 모았다.


이별은 항상 가슴 아프다.

다시 만날 기약 없는, 이 생에서의 마지막을 나누는 이별은 더욱 그렇다.


아버지께서 우리와 함께 했던 마지막 순간의 모습과, 앵두가 우리 곁을 떠나던 마지막 순간의 모습이 너무나 닮아 있었다. 아버지는 "딸아! 나 이제 가련다"란 한마디 말씀도 못하시고, 긴 잠을 주무시다 잠자듯 꿈꾸듯 그렇게 떠나셨다. 하지만 우리 앵두는 "친구야! 나 이제 갈게! 니 덕분에 3년 너무 즐거웠어!"라는 말을 꼭 했을 것만 같다.

창가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우리집 잉꼬앵무 친구들.... 앵두 연두 목련이


그렇게 서로에게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으로 오랫동안 함께 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런 이별은 항상 가슴 아프다. 지워지지가 않는다.


2023년 6월이 다가는 어느 날,

허망하게 떠난 우리 집 귀염둥이 '잉꼬앵무새 앵두'를 보내는 슬픔을 잊지 않기 위해..... 늘봄 쓰다.



매거진의 이전글 특별한 생일파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