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여백
여행은 감각을 왜곡한다. 귀뿐만 아니라 눈과 입과 모든 감각을 왜곡한다. 그리고 우리는 기꺼이 그 왜곡에 열광한다. <모든 요일의 기억> p.130
올 한해 제주에서의 일상을 여행하듯 지내겠노라 다짐했건만 감각의 왜곡은 커녕 갈수록 또렷해지는 정신머리를 부여잡고 살고 있다. 물론 부스스 아침에 일어나 창밖의 먼 바다를 마주할때면 한참을 바라보고 서있거나 노란 유채꽃이며, 연분홍 벚꽃을 눈에 담으며 마음 설레곤 한다. 그런데 무언가 부족한 기분이다. 욕심이 많은걸까?
그러다가 문득 갑작스레 주어진 시간에 오히려 쫓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이제껏 부족했던 시간, 내 마음가는대로 할 수 없었던 시간이 막상 주어지니 알차게, 충실히, 한 순간도 허투루 써서는 안되겠다는 다짐, 거기에 대문자 J의 계획 세우기가 더해진 듯도 하다.
어쩌면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조금 어깨에서 힘을 빼고 시간을 누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 앞의 시간을 가득 채우기보다 조금은 여유롭게 흘러가게 두는 것, 시간의 여백 같은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