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내 친구
잘 지내고 있나요?
혹시 우유 상자에 편지를 넣어두면, 시공간을 넘나들어 소식을 전하고 싶은 사람에게 닿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나요? 오랜만의 편지에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당신에게 닿을 수 있는 방법을 드디어 찾아낸 것 같아요. 이런 나의 이야기에 당신은 눈을 둥그렇게 뜨며 재미있다 웃음 지을 테지만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주름진 입가에 미소 가득한 당신의 얼굴이 떠올라 순간 울컥, 목이 막혀왔습니다.
정말 그런 우편함과 우유 상자가 있다면, 그렇게 내 편지가 닿을 수만 있다면, 매일매일 당신에게 향하는 글을 쓸 텐데, 당신이 귀찮다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루의 순간순간을 조잘거리며 떠들어댈 텐데, 그러면 마음 넓은 당신은 그저 빙긋이 웃으며 꼬박꼬박 답을 해주지 않을까요?
당신이 내가 사는 이 지구라는 별을 떠난 지도 벌써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당신은 내 일상 곳곳에 스며 있습니다. 내 책상 위에 놓인, ‘네게 행복을 가져다 줄거야’라는 메모와 함께 당신이 날려 보낸, 유리로 만들어진 파란 새며 책꽂이 옆에 붙여둔 당신과 함께 찍은 사진이 눈에 들어올 때마다, 또 길을 걷다 푸근한 인상의 할아버지를 마주할 때마다 내 안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당신을 만나곤 합니다.
당신을 만난 그 해가 떠오릅니다. 언젠가 말했듯이 당신을 만나기 전 내 생활은 나의 의도나 생각과는 상관없이 그야말로 ‘어쩔 수 없이 떠밀려가는’ 중이었습니다. 한국의 어느 작가가 ‘사람은 자신이 가진 능력의 70% 정도를 요구하는 자리’에 앉아야 자신과 주변 모두에게 좋다고 했는데, 그때의 나는 70%를 훌쩍 넘어 100%, 120% 그렇게 내 안의 에너지를 끌어모아 쓰고 있었고 하루하루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과 반성 그리고 어떻게든 해내야 한다는 중압감에 허덕이고 있었거든요. 마치 멈출 수 없는 자전거에 올라 넘어지지 않기 위해 낑낑거리며 한발, 한 발 내딛고 있는, 하지만 힘차게 쭉쭉 나가지는 못하고 누가 봐도 비틀비틀 갈지자의 모양새를 그리며 위태롭게 꾸역꾸역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내게 남편이 제안한 1년간의 미국 생활이라니, 도망칠 곳이 있다는 것, 그것도 내가 이유가 아닌 가족의 핑계를 대며 당당하게(!) 떠날 수 있으니, 그보다 더 좋은 핑계가 있었을까요? 조금만 더 참으면 승진이니 3개월만 버티라는 주변의 만류도 귀에 들리지 않았고 그저 지금 여기를 떠나야 한다는 생각만이 내 머릿속을, 마음속을 가득 채운 날들이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낯선 땅도 천국은 아니었어요. 안 그래도 적응해야 할 것들이 많은 이방인에게 말이 자유롭게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각오했던 것보다 더 녹록지 않다는 것을 실감했거든요. 휴대전화 벨 소리가 세상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소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시기이기도 했구요. 그 시절 원과 나는 벨소리가 울리면 전화기를 노려보며 서로 받으라 투닥이곤 했었습니다. 그런 순간들이 이어지던 어느 날,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문맹자와 이민자를 대상으로 읽고 쓰기, 그리고 사회 적응을 도와주는 커뮤니티 시설에 방문했고, 그곳에서 당신을 만났습니다.
처음 보는 내게 인사를 건네고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자마자 다른 클래스에서 수업을 듣고 있던 C를 데려와 소개해 주던 백인 할아버지. 큰 키, 살짝 숱이 적은 하얀색 머리카락, 갈색 눈, 누구든 눈이 마주치면 오른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인사를 건네던, 어느 미국영화 속 주인공 뒤로 펼쳐진 풍경에서 한두 번은 봤음 직한, 그리고 이름마저도 Paul이라니, 마치 국어 교과서 속의 철수 씨 같은 느낌을 주던 미국 사람 Paul, 당신과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선생님이라 불러야 할 텐데, 그렇다고 teacher라 할 수는 없고, Sir라고 부르는 몇몇 학생들에게 ‘나는 친구니 그저 이름으로 부르라’ 말하던 당신이었지만, 3대가 같이 살며 아침, 저녁으로 할아버지, 할머니께 문안 인사를 드리며 자란 유교 우먼에게 아빠보다 나이 많은 남자 어른을 감히 이름으로 불러도 되려나, 고민도 했었답니다. 하지만 당신이 나를 친구라 불러줬고 또 사실 딱히 달리 부를 호칭도 없었어요. 내가 당신의 호칭으로 고민할 때, 당신은 종종 내 발음을 지적하며, 나의 이름 Joy를 내 귀에는 똑같은 발음으로 들리던 Joey(캥거루 새끼)라 부르며 놀리곤 했죠. Paul과 Joy, 아니 따뜻한 엄마의 주머니 속에서 위로받고 싶은 Joey는 낯선 땅에서 그렇게 친구가 되었습니다.
은퇴 후 커뮤니티 시설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던 당신은 문학을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하고 또 사진찍기를 좋아했기에 수업 중에도 종종 우리에게 관련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또 함께 사진을 찍으러 다니기도 했었습니다. 아, 그래도 언젠가 시도했던 ‘시’를 주제로 한 수업은 정말 어려웠었습니다. 모국어로도 쉽지 않은 시를 익숙지 않은 영어로 해석하기는 정말 녹록지 않았거든요. 그 이후 더 이상 수업 시간에 ‘시’를 꺼내지 않은 까닭은 당신도 우리의 얼굴에 서린 난처함을 보았던 거겠지요.
처음에는 그저 영어를 가르쳐주고, 낯선 곳에서의 일상에 익숙해지는 데 도움을 주는 선생님이었던 당신이 언제부터 친구가 되었는지 솔직히 잘은 모르겠습니다. 어느 날을 기점으로 친구가 되었다기보다 물에 떨어진 잉크가 퍼져나가듯 당신은 흑백으로 가라앉아있던 내 마음에 서서히 색이 번져나게 해주었거든요. 내게는 없다고 여겼던 단어, 그래서 내 이름이 된 ‘Joy’, 주변의 시선에 휘둘리다 못해 휘청거리던 내 안에 꽁꽁 숨어있던 Joy를 찾아가는데 그곳에서의 시간과 당신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러고 보면 당신이 내게 가르쳐준 것은 ‘영어’라는 어느 한 나라의 언어가 아니라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1년간의 미국 생활을 마치고 귀국을 준비하며 한동안 잊고 지내던 한국의 생활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두근두근 심장박동수가 늘어가던 때 ‘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잊지 말라’ 조언하던 당신, Joy가 한국으로 돌아가니 한동안 내 삶은 joy full 하지 않을 거라 말하며 나를 웃음 짓게 만들던 당신이 떠오릅니다.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일주일에 서너 번씩 메신저로 이야기를 나누며 소소한 하루의 일상을 전하고 또 조언을 구하던 나는 이 시간이 오래오래 이어질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언제고 한번 다시 놀러 오라는 당신의 말에 ‘다음에’, ‘조금 여유가 생기면’, ‘꼭 시간을 내겠다’ 답하곤 했었지요.
하지만 ‘다음’은 없다는 것을, 당신이 더 이상 내가 발 딛고 사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해 듣던 날, 그 새벽, 잠에서 깨어 왜 평소라면 들여다보지 않았을 메신저를 졸린 눈을 비비며 확인했는지는 지금도 모를 일입니다. 다만 B가 보내온 메시지를 읽으며, 어제까지만 해도 메시지를 주고받았던 당신의 소식이 적힌 대화창을 멍하니 바라보다 ‘passed away’라는 문구에 내가 알지 못하는 뜻이 있었던가, 아니 다른 뜻이 있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간절히 단어사전을 뒤적이다가 B에게 전화를 걸었고 결국 둘 다 휴대전화를 사이에 두고 울음을 터뜨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신이 떠나던 날, 어쩌면 눈썰미가 좋은 어느 나라의 기상 관측가는 지구의 해수면이 갑작스레 상승한 것을 눈치챘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부재를 슬퍼하는 많은 사람들이 미국에서, 한국에서, 인도에서, 멕시코에서....그렇게 세계 곳곳에서 눈물을 흘렸을 테니 말입니다. 당신이 낯선 이방인이었던 우리에게 전해준 환대와 격려 그리고 사랑은 모두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을 테고 얼마 남지 않은 당신의 기일, 어쩌면 지구의 해수면은 한 번 더 상승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당신의 부재에 참 많이도 울었네요.
당신이 떠난 지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내 생일을 축하하며 보낸 카드에 적힌, 우리는 네가 그리우니 휴가를 내서 한번 들러달라는 당신의 글씨를 눈 앞에 두고 엉엉 소리 내 울기도 했고, 언젠가 꿈에서 당신을 만난 날, 신기하게도 그게 꿈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나는 그저 우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습니다. 평소에는 ‘꿈’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했었는데 막상 그날은 꿈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 그리도 속상할 수 없었습니다.
여전히 당신의 부재는 내 눈물샘을 자극하고 코끝을 시큰거리게 만들곤 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끝에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낍니다. 가끔은 소리 내어 당신을 부르고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얘기하기도 합니다. 아,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주로 혼자 있는 차 안에서 그러곤 하니까요.
내 일상에서 Joy를 찾는 방법을 알려준 당신에게 다시 한번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며 이제 이 편지를 곱게 접어 우유 상자에 넣으려 합니다. 그리고 이 편지가 당신에게 가닿기를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2024년 5월 당신의 친구 Joy
추신.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시간을 내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필요하다면 번호표를 뽑아서라도 기다릴 테니 다시 한번만 내 꿈에 찾아와 줬으면 합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마냥 울고만 있지 않고 내 세상에 ‘기쁨’을 가져다줘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