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를 보는 것과 맥락을 읽는 것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는 핀터레스트가 없었다.
대신 디자인 서적들이 그 역할을 했다.
아이디어를 얻으려면 여러 권의 책을 뒤적여야 했고, 당연히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하지만 그 안에는 지금 돌이켜보면 분명한 장점이 있었다.
책 속의 이미지는 늘 맥락과 함께 있었다.
누가, 어떤 문제의식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었는지가 글로 기록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지를 단순히 ‘예쁘다’로 소비할 수 없었다.
설명과 함께 읽다 보면, 결과물보다 그 뒤의 배경을 먼저 마주하게 됐다.
그 차이는 크다.
지금 학생들이나 디자이너들은 핀터레스트부터 켠다.
검색창에 몇 단어만 넣으면 이미지가 쏟아지고, 정리된 레퍼런스가 순식간에 눈앞에 펼쳐진다.
하지만 조급할수록, 이 편리함은 함정이 된다.
키워드를 입력하고 한참 스크롤을 내리다 보면
“아, 이거다!” 싶은 이미지가 반드시 나온다.
그 순간의 안도감은 강렬하다.
마치 고민의 답을 찾은 것 같은 착각을 준다.
문제는 바로 그다음이다.
이미지를 모아놓고 색·서체·형태를 그 자리에서 정해버린다.
“느낌이 왔다”는 확신과 함께 작업은 빠르게 굴러가지만,
그 순간부터 이유는 사라진다.
핀터레스트는 분명 좋은 도구다.
하지만 해답의 창고가 아니라 참고의 창이어야 한다.
중요한 건 이미지를 얼마나 빨리 찾느냐가 아니라,
그 이미지가 왜 거기에 있는지를 묻는 과정이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이나 초년생 디자이너들이 핀터레스트를 조금 다르게 쓰기를 바란다.
‘시작점’이 아니라 ‘점검용’으로.
이미지를 모으는 속도보다, 왜 그 이미지를 선택했는지 설명할 수 있는 시간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조급할수록, 더 멀리 돌아보라고 말한다.
나는 책을 보며 자연스럽게 배웠던 이 습관을
지금도 학생들에게 강조한다.
조급함은 이미지를 빠르게 찾게 만들지만,
디자인의 힘은 결국 ‘이미지 뒤의 맥락’을 이해할 때 생겨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