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함은 버려야 할 적이 아니라, 나와 끝까지 함께 살아가야 할 동반자다
조급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무리 “버려야 한다”라고 다짐해도, 프로젝트 앞에 서면 다시 찾아온다.
마치 마감 직전의 공기처럼, 디자인이라는 작업과 늘 함께하는 감정이다.
예전의 나는 그 감정을 잘못 다뤘다.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했고, 결과물이 빨리 나오지 않으면 초조했다.
그래서 조사와 분석보다 시각적 완성도를 먼저 채우려 했고,
논리보다 외형을 앞세운 디자인을 만들어내곤 했다.
겉은 반짝였지만 속은 텅 빈 결과물.
그건 결국 내게도, 클라이언트에게도 오래 남지 못했다.
이제는 조금 다르다.
나는 조급함을 무조건 끊어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그것을 작업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인다.
빠르게 몰아치는 조급함은 여전히 추진력이 되기도 한다.
아이디어를 과감하게 꺼내고, 시각적으로 매력적인 결과물을 단숨에 만드는 힘은 거기서 나온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방향을 흐릴 수도 있음을 안다.
그래서 나는 그 속도를 곧바로 결과로 이어 붙이지 않고, 잠시 멈추어 점검하려 한다.
왜 이 색을 쓰는지, 왜 이 형태를 택하는지, 그 안에 어떤 이야기를 담아야 하는지.
디자인은 결국 ‘겉이 아니라 속’에서 힘을 얻기 때문이다.
조급함은 내가 안고 살아야 할 감정일지도 모른다.
그것을 억지로 없애려 한다면, 실패할 때마다 나 스스로를 죄책감에 빠뜨릴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조급함을 경계의 신호로 받아들인다.
너무 서두르고 있지는 않은지, 본질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하는 장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