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만을 기대하는 시선과, 과정을 지켜내는 용기
디자인을 의뢰하는 많은 사람들은 디자인을 ‘그림 그리는 일’로 생각한다.
아이디어가 번뜩 떠오르고, 영감이 스치면 곧바로 결과물이 나올 거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실제 과정은 전혀 다르다.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고, 그 내용을 토대로 계획을 세운 뒤 수많은 시각적 실험을 거쳐야 비로소 결과물에 도달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그림’은 그 모든 단계를 지나야 나오는 마지막 조각이다.
문제는 이 차이를 모르는 환경이 디자이너를 조급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아이디어를 바로 보여 달라”는 요구,
“이 정도는 금방 할 수 있지 않느냐”는 말.
그 기대에 부응하려다 보면, 디자이너는 스스로 시간을 줄이고 과정을 생략한다.
밤을 새우며 떠오르지 않는 아이디어를 억지로 끌어내거나, 핀터레스트 속 이미지에 기대어 방향을 정해버리기도 한다.
조급함은 점점 커지고, 결과물은 점점 얕아진다.
디자인은 과정을 건너뛰는 순간 힘을 잃는다.
왜 이 색을 써야 하는지, 왜 이 형태여야 하는지, 그 안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야 하는지를 점검하지 않으면, 겉은 멋져 보여도 속은 텅 빈 결과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디자이너는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프로젝트가 제대로 완성되기 위해선 속도가 아니라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 과정에는 반드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조급하게 만드는 환경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러나 그 안에서 과정을 지켜내는 용기를 낼 때, 비로소 디자인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의미 있는 ‘작업’으로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