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끝낸 만큼, 금세 사라져 버린 기억들.
대학교 시절, 수많은 프로젝트를 했다.
팀 과제, 개인 작업, 전시 준비… 한 학기만 돌아봐도 손에 꼽기 힘들 만큼 많은 결과물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건 몇 개 되지 않는다.
아주 짧게 반짝였다가 사라진 이름처럼, 작업의 흔적도, 그 과정도 흐릿하다.
조급함은 나를 늘 빠르게 움직이게 했다.
마감보다 일찍 완성하고, 주변보다 빨리 제출하는 건 익숙했다.
하지만 빠르게 완성하려다 보니, 아이디어를 충분히 붙잡지 못했다.
조사와 탐구는 최소한으로 줄었고, 디자인의 표면만 매끄럽게 다듬었다.
겉보기엔 완성도가 있어 보였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빈약했다.
그리고 그런 작업일수록, 제출과 동시에 내 머릿속에서도 지워졌다.
시간이 지나 깨달았다.
디자인에서 중요한 건 그 순간의 반짝임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남는 무언가라는 것을.
그 ‘무언가’는 화려한 결과물에서 나오는 게 아니었다.
충분한 과정, 시행착오, 그 속에서 쌓인 생각이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조급함은 그 과정을 잘라버린다.
결과만 남기고, 그 결과를 지탱할 이야기를 없애 버린다.
그래서 기억 속에는, 채워지지 않은 빈 페이지만 남는다.
빠름은 능력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프로젝트가 빠를 필요는 없다.
오래 남길 만한 디자인은 느림 속에서 만들어진다.
그걸 깨닫기까지, 나는 수많은 기억할 수 없는 결과물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