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먼저 바뀌었다
새로운 수업을 만들 때마다 늘 설레지만,
이번 생성형 AI 디자인 스튜디오 수업은
그 설렘과 동시에 알 수 없는 불안을 안고 시작했다.
‘학생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내가 상상한 흐름이 실제 교실에서도 유효할까?’
‘내가 믿는 교육 철학이, 정말 작동할까?’
2025년 1학기,
그 질문들을 모두 데리고 첫 수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내가 먼저 바뀌었다.
수업 초반, 프롬프트 구성에서 몇 가지 단어가 가지는 힘에 대해 이야기한 뒤
초기 발상과 레퍼런스를 가져오라고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학생들은
그 발상을 이미 수십 장의 AI 이미지로 만들어 왔다.
“아, 이미 학생들의 리듬은 AI를 기준으로 움직이고 있구나.”
작년까지만 해도 개념을 땀 흘려 설명하던 학생들이
이제는 이미지를 펼쳐 보이며 개념을 설명하고 있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아이디어를 생각하는 방식 자체가 완전히 달라진 장면이었다.
학생들은 수백 장의 이미지를 만들어 왔지만
그중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에서 갑자기 멈췄다.
무엇이 더 좋은지
무엇이 방향과 맞는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이미지의 ‘질’이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기준이 문제였다.
AI 시대의 교육에서 가장 먼저 필요한 건 ‘선택의 기준’을 세우는 일이다.
도구 사용 능력이 아니라
가능성 속에서 방향을 잡는 능력.
학생들은 AI 때문에 흔들린 것이 아니라,
AI가 지금까지는 드러나지 않았던
학생 각자의 빈 영역을 드러낸 것이다.
매주 실험을 가져오라 했을 때
학생들은 완성된 결과보다
자신이 한 시도들을 더 자랑하듯 보여줬다.
실패한 이미지
엉뚱하게 나온 영상 프레임
이상한 왜곡
우연히 생성된 영감의 흔적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교수님, 이건 안 되는데… 이상하게 매력 있어요.”
“이건 실패인데, 여기서 다음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AI는 ‘실패의 질’을 변화시키는 도구다.
예전에는 실패가 좌절이었지만,
지금은 실패 자체가 영감의 재료가 되고 실험의 흔적이 된다.
이건 실제 수업을 해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변화였다.
이 수업에서 내가 가장 잘했다고 느끼는 지점은
바로 “모든 실험을 공개적으로 나누는 구조”였다.
학생들은 다른 팀의 실험을 보며 놀라고,
자기 팀의 작업이 흔들리기도 하고,
더 좋은 방향을 스스로 찾아내기도 했다.
AI 기반 수업에서는 ‘개별 작업’보다 ‘집단 관찰’이 훨씬 큰 힘을 가진다.
AI 실험이란 결국
누가 더 많은 실패를 빠르게 쌓아가며
그 속에서 영감을 건져 올릴 수 있는가의 싸움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함께 볼 때 훨씬 강해진다.
마지막 주, 학생들은
자신의 프로젝트를 하나의 영상으로 발표했다.
그 영상은
AI가 만든 기술적 완성이 아니라,
수많은 선택·유보·수정·판단의 흔적이 모여 탄생한 결과였다.
발표를 보면서
나는 화면보다 학생들의 표정을 더 많이 봤다.
자신의 세계가 확장되는 짜릿함,
잘못된 길을 돌아온 흔적,
AI와 함께 만든 세계에 대한 약간의 놀라움.
그 표정은
“AI가 만든 결과”가 아니라
“내가 만든 과정”의 표정이었다.
AI 시대의 수업은 기술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표정으로 증명된다.
한 학기 동안 나는 학생들을 바꾼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나를 바꿨다.
학생들을 바라보는 방식,
수업을 설계하는 방식,
피드백을 주는 방식,
결과물을 판단하는 기준—
그 모든 것이 바뀌었다.
AI 수업을 설계한 시간이 아니라,
교수자인 나의 프레임을 다시 짜게 된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변화는
다음 단계로 이어질 준비를 하게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