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자는 무엇을 다시 배워야 하는가
2025년 1학기 AI 기반 디자인 스튜디오 수업을 진행하면서
가장 먼저 바뀐 사람은 학생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학생들이 AI를 다루는 방식,
이미지를 사고의 출발점으로 놓는 태도,
폭발적인 실험 속도—
그 모든 것을 따라가며
나는 교육자로서의 나의 ‘리듬’이
이미 시대와 어긋나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학생들은 발상을 언어나 글이 아니라
이미지로 시작했다.
아이디어를 설명하지 않고
그저 이미지 폴더를 열어 보여주었다.
그들의 사고는
개념 → 스케치 → 시각화
가 아니었다.
이미지 → 이미지 → 이미지.
이 순환이 발상을 이끌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속도를 따라가며 깨달았다.
학생들은 이미 새로운 사고 구조를 살아가고 있었다.
변하지 못한 것은 교육자인 나였다.
나는 오랫동안
“생각을 먼저 정리하고 시각화를 한다”는 구조를
수업에 적용해 왔다.
하지만 이번 수업에서
그 직관은 단 한 번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학생들에게
“좀 더 설명해 볼래?”라고 요구할수록
그들은 오히려 혼란스러워했다.
이미지는 넘쳐나지만
그 이미지를 말로 번역하는 일은
그들에게 더 이상 자연스러운 사고가 아니었다.
그때 깨달았다.
이미지 시대의 학생들에게
우리가 익숙한 사고 순서는 이미 역전되어 있다.
과거의 피드백은
완성도와 현업 기준을 바탕으로
‘좋다/아쉽다’를 가르는 방식에 가까웠다.
하지만 AI 수업에서 그 방식은 거의 의미가 없었다.
AI는 언제든 더 나은 이미지를 만들어주었고,
완성도는 이미 ‘기본 옵션’처럼 따라왔다.
그래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이미지의 질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왜 이 이미지를 선택했는지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렸는지
어떤 감정과 맥락을 중심축으로 삼는지
이 질문을 꺼내는 일이었다.
피드백은 평가가 아니라 “사유를 정렬해 주는 일”이 되었다.
학생들은 AI로 빠르게 이미지를 만들었지만
그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방향을 바꿀 때의 속도’였다.
기존 교육에서는
한 콘셉트를 오래 붙잡고 발전시키는 것이 미덕처럼 여겨졌지만,
AI 세대는 그렇지 않았다.
더 좋은 가능성이 보이면 즉시 이동하고
실패하면 미련 없이 버리고
의도와 어긋나면 바로 새 방향을 찾았다
그들의 유연함은
단순한 ‘빠름’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능력이었다.
나는 그 유연함을 보며
내 사고가 얼마나 단단히 굳어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AI 시대의 수업에서
교수자는 정답을 아는 사람이 아니다.
학생들의 이미지 폭발,
예상치 못한 시도,
AI가 제안하는 새로운 방향들 속에서
내가 해야 했던 일은
방향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정렬”해주는 일이었다.
무엇이 중심인지
무엇이 반복되는지
무엇이 이 작업을 정의하는 언어인지
학생들이 스스로 발견할 수 있도록
사유의 흐름을 조율하는 것이
교육자의 새로운 역할이었다.
AI는 학생들에게 새로운 도구를 준 것이 아니라
나에게 새로운 역할을 요구한 기술이었다.
익숙했던 교육 구조를 내려놓는 일
피드백 방식을 다시 설계하는 일
사고의 순서를 재정립하는 일
학생들의 리듬을 이해하는 일
그 모든 변화는
AI 때문이라기보다
AI 세대와 함께 사유하려 한 나의 시도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AI 시대의 교수자는 ‘지식을 전하는 사람’이 아니라
‘배움의 구조를 디자인하는 사람’이다.
한 학기를 보내며 느낀 변화,
교육자라는 역할의 재정의,
AI 세대의 사고 구조.
이 모든 것들은
단순한 수업의 종료로 끝나지 않았다.
나는 이 경험들을 바탕으로
AI Research → AI Studio → AI Video로 이어지는
3단계 AI 커리큘럼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는
그 커리큘럼이 어떤 철학에서 출발했고
왜 그런 구조가 필요했는지를 이야기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