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은 왜 더 혼란스러워졌는가
AI가 실무에 본격적으로 들어온 이후,
디자인 현장은 분명 더 빨라졌다.
기획은 짧아졌고,
시안은 하루 만에 수십 개가 나오며,
이미지와 영상, 인터페이스와 카피의 경계는 거의 사라졌다.
겉으로 보면 효율은 극대화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같은 말이 반복된다.
“왜 이걸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결과는 많은데, 방향이 없다.”
“결정이 계속 미뤄진다.”
AI는 디자인의 많은 부분을 대신 만들어준다.
이미지, 영상, 레이아웃, 코드까지.
문제는 이제 만드는 일이 아니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무엇을 버릴 것인가,
어떤 방향을 ‘의미 있다’고 판단할 것인가의 문제다.
실무에서 가장 자주 막히는 지점은
툴의 사용법이 아니라
맥락의 부재다.
AI는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다.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채 만들어진 결과는
아무리 정교해도
결국 다시 고쳐지거나, 다시 만들어진다.
그래서 요즘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AI를 쓰는데도 일이 줄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실무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혼란은
AI를 잘못 사용해서가 아니다.
AI를 사용하기 이전에
공유되어야 할 맥락이
처음부터 설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프로젝트는 무엇을 해결하려는가
왜 지금 이 방향인가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할 것인가
어디까지가 실험이고, 어디부터가 결정인가
이 질문들이 팀 내부에서 충분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AI는 곧바로 결과를 쏟아낸다.
그 결과물들은 빠르지만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고,
선택은 어려워지며,
워크플로우는 다시 꼬인다.
AI는 혼란을 만들지 않는다.
혼란은 맥락 없이 속도만 앞당겼을 때 발생한다.
나는 자연스럽게 질문하게 되었다.
“이 혼란은 왜 계속 반복되는가?”
그리고 그 답은
실무보다 더 앞에 있었다.
디자인 교육에서는 오랫동안
툴과 결과를 중심으로 가르쳐 왔다.
하지만 맥락을 설계하는 방법,
질문을 구조화하는 방법,
선택의 기준을 언어로 만드는 방법은
체계적으로 다뤄지지 않았다.
AI는 이 공백을 그대로 드러냈다.
맥락을 다루는 훈련 없이
곧바로 결과를 만들어내는 환경에 놓인 학생들은
실무에 들어가서도
같은 혼란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AI는 누구에게나 동일한 도구다.
차이를 만드는 것은
그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의 사고 구조다.
질문을 먼저 만들 수 있는가
실험과 결정을 구분할 수 있는가
결과를 맥락 안에서 해석할 수 있는가
선택의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가
이 능력은
실무에서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교육에서부터
의도적으로 훈련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AI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AI를 사용하기 이전의 사고를 설계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역량 문제도,
AI의 한계도 아니다.
맥락을 다루는 훈련 없이
곧바로 속도만 가속한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