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시안은 넘치는데, 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가

학생들은 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가

by Yooseob

2025년 1학기 수업을 통해

학생들은 분명 AI를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이미지 생성, 영상 생성, 다양한 실험까지

기술적인 사용에는 더 이상 큰 문제가 없었다.

결과물의 양도 눈에 띄게 늘었다.


그러나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이 개인 프로젝트로 이동하면서

다른 문제가 분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AI를 이용해

꽤 그럴듯해 보이는 수많은 시안을 만들어내며 작업을 시작했다.

폴더 안에는 수십, 때로는 수백 개의 이미지가 쌓여 있었다.


image35_2.jpg


하지만 작업은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선택은 계속 미뤄졌고,

방향은 좁혀지지 않았으며,

결과는 늘어나는데 결정은 줄어들었다.


이것은 의욕의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과잉된 시도에서 비롯된 정체였다.


관찰해 보면 공통점은 분명했다.

대부분의 작업이 맥락 없이 생성부터 시작하고 있었다.


질문보다 이미지가 먼저 나오고,

의도보다 스타일이 먼저 정해지며,

의미는 나중에 설명하려 했다.


AI는 즉각적인 결과를 제공한다.

그래서 이 방식은 처음에는 매우 효율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출발은 작업의 부담을 급격히 키운다.


맥락 없이 시작된 생성은

결국 설명해야 할 것을 과도하게 남긴다.


왜 이 이미지를 선택했는지,

왜 이 방향이 유지되어야 하는지,

이미 만들어진 결과물들 사이에서

기준을 뒤늦게 찾느라 학생들은 점점 더 힘들어했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은

작업을 발전시키기보다

이미 만들어진 결과를 정당화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었다.


어느새 작업은

창의적인 전진이 아니라

정리와 합리화의 과정이 되어 있었다.


시안을 많이 만드는 것이

사고의 확장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맥락이 없는 상태에서 늘어난 시안은

가능성을 확장하기보다

판단을 지연시키고 결정을 흐린다.


AI는 선택지를 무한히 만들어주지만,

그 선택지들 사이의 관계를 정리해주지는 않는다.

그 정리는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결과가 아니라 질문을 되돌려주기 시작했다.


왜 여기서 시작했는가.

이 시안은 무엇을 확인하기 위한 것인가.

지금 이 단계는 실험인가, 결정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아무리 많은 결과물도

다음 단계로 이어지지 않는다.


AI를 다룰 수 있게 되는 것과

창의적으로 전진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결국 이것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출발점의 설계 문제다.


그래서 이제 나는

학생들의 시안보다

시작 방식을 먼저 본다.


작업이 멈추는 이유는

대개 결과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처음에 무엇을 세우지 않았는지에 달려 있다.


AI는 학생들을 달리게 했다.

하지만 심폐 지구력이 받쳐주지 못한 호흡은

얼마 지나지 않아 거칠어졌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학생들을 더 빨리 뛰게 하는 것이 아니라,

멀리, 그리고 오래 뛸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AI를 앞세운 교육이 아니라,

AI와 함께 버틸 수 있는 사고의 체력을 기르는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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