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왜 우리는 질문을 망설이게 되었을까

질문을 반문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에 대하여

by Yooseob

나는

질문을 잘하지 않는 문화 속에서 자랐다.


정확히 말하면


질문을 하지 않는다기보다

질문을 조심하는 문화였다.


요즘 AI와 함께 일을 하고

디자인을 하면서

계속 생각하게 되는 것이 있다.


질문이 중요하다는 것.


그 이유는 단순하다.


질문은

원래 생각을 확장하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질문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 왔다.


어른들에게 순수하게 던진 질문이

어느 순간 반문으로 읽히고


그들에게 내 질문은

도전으로 해석되었다.


몇 번의 질책을 지나며

나는 질문하지 않는 편을 선택했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맞춰 살았다.


image49 복사.jpg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지금,

수업 안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자주 보게 된다.

내가 유도해서

어떤 학생이 결국 질문을 한다.


하지만 그 질문은


생각을 확장하기 위한 질문이라기보다


이미 한 번 다듬어진 질문이다.


혹은

정답을 확인하기 위한 질문이다.

그 질문들로는 생각이 잘 움직이지 않는다.

왜 이런 질문이 나오는지


어릴 적 나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우리는

질문이 자유롭게 오가는 구조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질문이

조심스럽게 관리되는 구조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구조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질문을

질문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


특히 경험이 많은 사람일수록

자신의 생각을 하나의 기준으로 두게 된다.


그 기준이 단단해질수록

다른 질문은 새로운 가능성이 아니라


기존의 기준을 흔드는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질문은

대화의 시작이 아니라

설명을 요구하는 일이 되고


때로는

설득해야 하는 일이 된다.


하지만 질문은

원래 그런 것이 아니다.


질문은

틀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정답을 찾기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질문은 생각을 움직이기 위해 존재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지점이 조금 걱정된다.


AI는 점점 더 많은 답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리고 그 답은 이전보다 훨씬 빠르고 훨씬 정교해지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는


누가 더 잘 아는가 보다

누가 더 잘 묻는가가 더 중요해질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질문을 조심하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다.


질문을 하기 전에 눈치를 보고

이 질문이 괜찮은지 고민하고


질문을 한 뒤에는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를 생각한다.


이 상태에서

과연 우리는


AI와 제대로 대화할 수 있을까?


AI의 시작은 질문이다.

질문이 없다면

AI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AI 시대는

기술의 시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질문의 시대이기도 하다.


가능성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질문을 불편하게 느끼는 태도는


단순한 문화의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세대의 가능성을 좁히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항상 학생들을 마주하기 전에 먼저 나에게 묻게 된다.


나는

학생들의 질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질문을

평가하지 않고,

해석하지 않고,

그대로 들으려고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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