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모습이 앞서가면 내용은 따라오지 못한다.
디자인을 배우는 학생 시절, 그리고 디자이너, 교수로 일하는 지금까지
내 안에는 늘 한 가지 생각이 있었다.
“무언가는 달라야 한다. 예술적인 감각이 있어 보여야 한다.”
그 생각은 나쁘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늘 감각적인 것에 집중했고,
조금이라도 달라 보이려고 꾸준히 노력했다.
외적인 스타일을 다듬고, 트렌드를 살피고, 새로운 시각을 찾는 일에 시간을 쏟았다.
문제는, 그 태도가 작업 과정까지 깊숙이 들어왔을 때였다.
프로젝트의 의도보다 외적인 트렌드가 먼저 보였다.
시각적인 부분을 완성해 놓고,
그 위에 논리를 ‘끼워 맞추는’ 방식으로 진행한 적도 있었다.
그 결과물은 내 눈에는 멋져 보였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제안한 쪽에서는 달랐다.
“예쁘긴 한데,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강하게 말하면, 쓸모없는 결과물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트렌드에 치중하고, 외적인 퀄리티에만 집착하는 것이
사실은 조급 함이었다는 걸.
트렌드는 속도가 빠르다.
무조건 따라가려고 하면 조급해질 수밖에 없다.
그 조급함은 내 작업을 프로젝트의 본질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그래서 요즘은 트렌드를 ‘빨리 담는 것’보다
트렌드를 ‘필요할 때만 꺼내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트렌드는 디자인을 빛나게도 하지만,
본질을 가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