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이번에 발견된 괴생명체가 외계 생명체임을 공식 인증했습니다.”
줄리안이 거실 소파에 몸을 파묻은 채 뉴스를 보고 있었다. 시야 한구석, 허공에 떠오르는 메시지 창을 읽어 내려가던 그의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어쩌면 이 변화 속에서 자신이 맡을 역할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줄리안, 이번 시위에 너도 참가할거지?
-당연하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띤 채 친구와 메시지를 주고받던 그때였다. 서재에 박혀 있던 아서가 슬그머니 나와 줄리안의 뒤편에서 뉴스를 보고 있었다.
“정부에서 인증한다고 뭐가 달라지나. 죽은 외계인이 다시 살아나는 것도 아닐 텐데.”
줄리안은 아서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채팅 화면을 닫고 뒤를 돌아봤다. 아서에게 줄리안의 증강현실 창이 보일 리 없었지만, 도둑질이라도 들킨 기분이었다.
“줄리안, 너 뉴스를 보는게 아니라 이상한 사이트를 보고 있었던 거니?”
“아, 아니에요.”
“그래, 그렇게라도 세상 돌아가는 거를 보면 도움이 될거다.”
아서는 애써 추긍하고 싶은 마음을 짓누른 채 다시 서재로 발길을 돌렸다. 줄리안은 다시 텔레비전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질문의 핵심은 정부가 외계 생명체에 우호적인가 하는 점인데요. 현재 공식 입장은 ‘판단 보류’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결정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지난달 태평양 어선에서 발견될 당시 이미 외계 생명체는 사체 상태였다는 점입니다. 즉, 대응책보다는 분석이 우선이겠죠. 하지만 둘째가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될 것입니다. 생명체는 발견됐지만, 이른바 ‘외계 기술’의 흔적인 전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기술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입니까?”
아나운서가 되물었다.
“간단히 말해서, 그들이 타고 온 UFO가 전혀 없다는 뜻입니다.”
줄리안의 의문은 가시지 않았다. 그는 나직이 말했다.
“아벨, 외계 생명체 발견과 관련된 모든 콘텐츨를 요약해 줘.”
[네, 줄리안. 관련 정보를 정리합니다. 발견된 개체는 우주복이나 장비 없이 신체 조직만 발견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두 가지 가설을 제기합니다. 첫째, 지구에 도착한 지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 신체만 화석처럼 남았을 가능성. 둘째, 정부가 기존 지구 새문을 외계인으로 둔갑시켰을 가능성입니다. 한편, UFO 전문가 톰 해밀턴은 발견 몇 주 전 근해에서 미확인 비행물체를 목겨했다고 주장합니다.]
“외계생명체가 아닐 가능성이 있어?”
[실제 전문가인 엘레나와 마일즈 박사의 최신 연구에 따르면, 해당 생명체는 우주 공간에서 아무런 장비 없이 맨몸으로 지구에 추락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마일즈, 진전이 있어?”
엘레나가 연구실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왔다. 마일즈가 피곤에 찌든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있긴 한데,네가 기대하는 종류는 아닐 거야.”
“도대체 샘플이 몇십개인데 어떤 생물인지 모른다는게 말이 돼? 인공지능은 놀고 있어?”
엘레나의 짜증 섞인 외침에도 마일즈는 묵묵부답이었다. 마일즈도 엘레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연구 분야의 연구 속도는 매우 빨라졌다. 과거라면 몇 년이 걸릴 분석도 단 하루면 끝나는 시대였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엘레나, 이건 ‘지구 바깥’의 것이다. 학습 데이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제이미, 대체 어떤 부분에서 병목이 생기는 거지?”
[네, 교수님. 기존 시스템은 지구상의 생물학적 구조를 바탕으로 종을 분류합니다. 하지만 이번 샘플은 기존 데이터와의 유사성이 극도로 낮습니다. 비교군이 부족하여 예측 모델이 신뢰도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엘레나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기존 데이터가 없다면 결국 인공지능도 예측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결과가 나오지 않아 엘레나는 외계인과의 접촉을 바로 앞에두고 아무것도 못하는 것이 답답했다. 적어도 지구에 유사한 종이 있다면 그 종의 언어를 미리 연구해서 외계인과의 소통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아주 원시적인 방법으로 접근해 봤어.”
마일즈가 대형 스크린에 스캔 파일을 띄웠다.
“너도 알다시피 훼손된 외골격만 남았고 그건 다른 샘플도 마찬가지였어. 그래서 각 샘플마다 원형이 조금씩 남아있는 부분을 추출해서 외형을 추측해봤어. 결과는 이래.”
화면에는 화려한 깃털을 가진 새, 날렵한 바퀴벌레, 그리고 거대한 집게발을 가진 이족보행 가재의 형상이 나타났다. 엘레나가 기가 차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
“마일즈, 이건 정말...40년 전 공룡 복원도 같잖아. 그냥 상상화 아니야?”
마일즈가 큰소리로 웃었다. 눈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며 스크린 앞에 섰다.
“하하하, 공룡 복원도! 정확한 비유네!”
“새와 바퀴벌레, 가재라니 그냥 모든 종을 다 넣은거야?”
“엘레나, 지구의 모든 생명이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 나왔듯, 이들도 어떤 환견 변수를 적용하느냐에 따라 이렇게 달라질 수 있어.”
“그래서, 네 직감은 어느 쪽인데?”
“모든 샘플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 건 얇고 긴 다리, 외골격에 뚤린 미세한 구멍. 그리고 광섬유 같은 더듬이야. 나는…곤충, 즉 절지류에 가깝다고 봐. 외골격의 구멍은 모공이 아니라 내부 장기가 연소되면서 가스가 배출돼서 생긴 기문이었을 거야.”
엘레나가 잠시 화면을 응시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이랑 동일하네 절지류, 곤충.”
“그래, 처음 봤을 때 부터 내가 답을 정하고 분석해서 그랬을지도 몰라.”
“됐어. 어차피 기다리는 것도 지쳤으니 그 방향으로 갈게.”
엘레나는 원하는 것을 얻어낸 표정을 짓고 연구실 밖으로 사라졌다.
“아서, 외계인은 어떻게 사고할 것 같아?”
침대에 누운 엘레나가 천장을 보며 물었다. 아서는 안경을 벗으며 냉소적으로 대꾸했다.
“엘레나, 맨몸으로 대기권에 처박혀 죽을 정도면 지능이 높다고 보긴 힘들지 않겠어? 고등 생물이라면 마찰열 정도는 계산했을 거 아냐.”
“우리가 모르는 사정이 있을 수도 있잖아.”
“그래 그 사정을 우리가 알아 내도 그 놈들이 살아서 지구에 도달할 가능성은 없을 것 같아.”
“아서, 그냥 가정해보자는 거야. 누가 지구에 도달할거래? 그냥 어떤 식으로 생각할지 물어본거잖아.”
아서는 언제부터인가 미지의 것을 두려워했다. 그 두려움은 아서 내부로부터 기인했다. 젊은 시절, 두 사람은 가설 하나만으로 밤을 지새우며 토론하던 동료이자 연인이었지만, 이제 아서는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도태되는 것을 가장 무서워하는 어른이 되었다.
엘레나도 아서의 의견이 궁금해서 물어본 것은 아니었다. 엘레나 스스로가 말을 하면서 논리는 만들어가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서의 냉소적인 의견을 듣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엘레나는 차라리 인공지능, 아벨이 더 편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잠을 청했다.
-에이미, 어디야?
-나 이제 역 입구야. 사람 진짜 미쳤어!
줄리안은 빈 피켓에 정성껏 글자를 채워 넣었다.
[너네 별로 돌아가! 지구 생활은 더 별로니까]
“줄리안!”
저 멀리서 에미미가 달려왔다. 그녀의 피켓에는 더 강렬한 문구가 적혀있었다.
[엿먹어라 외계인]
광장의 분위기는 긴장감보다 축제의 열기가 가득했다. 한쪽에서는 ‘외계인을 몰아내자’고 외치면 다른 쪽에서는 ‘외계인을 환영하라’고 외친다. 각종 부스에서는 외계인 굿즈와 음식을 판매했고 무대 위에서는 공연과 자유발언이 이어졌다.
줄리안이 팔찌의 성인 옵션을 켜자 공중에 실시간 도박 배당률이 떠올랐다. ‘외계인이 살아있다고 발표될 확률’, ‘외계인이 아닐 확률’ 등에 배당률이 실시간으로 바뀌고 있었다.
“줄리안, 이거 진짜 대박이다! 어른들만 이런 재미를 보고 있었다니!”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서로 의견은 달랐지만 어울려서 분위기를 즐겼다. 어느새 줄리안은 인파에 떠밀려 자유발언 대기줄에 서게 되었다. 먼저 올라간 에이미가 시원하게 소리를 지르고 내려오자, 다음 차례인 줄리안의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무대 위로 올라간 줄리안. 수천 개의 눈동자와 렌즈가 그를 향했다. 숨이 턱 막혔다. 마이크를 잡은 손이 덜덜 떨렸고, 입은 떨어지지 않았다.
“우~ 너도 별로다! 할 말 없으면 내려가라!”
야유가 쏟아졌다. 줄리안은 도움을 요청하듯 에이미를 보았다. 에이미는 엄지를 치켜세우며 활짝 웃어주었다. 그 순간, 줄리안의 머릿속에 자신을 무시하던 아버지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줄리안은 마이크를 꽉 쥐고 소리쳤다.
“엿 먹어라 마르코!!!!”
순간, 광장에 찬물을 끼얹은 듯 정적이 흘렀다. 마르코는 현 세계 연합의 대통련이었다. 줄리안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멍하니 서 있었다. 1초가 1분처럼 느껴지던 그때, 군중 속에서 실소가 터져 나오더니 이내 거대한 함성으로 변했다.
“그래 마르코 엿먹어라!”
외계인 찬성파도, 반대파도 없었다. 모두가 한목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엿먹어라 마르코”
줄리안은 처음으로 이 사회에 소속감을 느꼈다.
아서는 소란스러운 세상을 등지고 연구에 몰두했다. 그때, 책상 위의 단말기가 울렸다.
“마르코? 바쁘신 분이 먼저 연락을 다주고 무슨 일이야?”
“아서, 자네 아들을 아주 크게 키웠더군?”
“줄리안? 줄리안을 만났어?”
“텔레비전 좀 보고 살게. 지금 아주 난리야. 덕분에 오랜만에 크게 웃었네. 우리 젊을 적이 생각나더군. 혹시 줄리안이 집에 오면 물어봐 주게. 내가 대체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 말이야.”
전화를 끊고 아서는 어안이 벙벙한 채 거실로 나갔다.
“아벨, 줄리안이 나온다는 영상을 틀어줘.”
[네, 줄리안이 외계인 시위에서 자유발언한 영상을 재생합니다.]
아서는 줄리안이 ‘너네 별로 돌아가! 지구 생활은 별로야’라는 피켓을 들고 자유발언대 위로 올라오는 모습을 보았다. 아서는 줄리안의 유치한 문구에 창피함을 느끼며 마른 세수를 했다. 게다가 무대에서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는 모습은 아서를 답답하게 했다.
‘말도 제대로 못 할 거면서 저긴 왜 올라가서 망신이야.’
하지만 이어지는 줄리안의 발언.
“엿 먹어라, 마르코!”
아서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러더니 이내, 거실이 떠나가라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아들을 무시하며 쌓아왔던 고집과 벽이, 그 엉뚱하고도 강렬한 한마디에 시원하게 무너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