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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종영 Feb 21. 2021

영화관이 다 사라지면 어쩌죠?

직업을 여러 번 바꿨다. 언론사에 몸 담았던 적도 있고, 최근에는 강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경험했던 직업에 공통점은 두 가지다. 새로운 사람을 원없이 만날 수 있다는 것과 혼자서 시간 보내는 게 익숙해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혼자서 해볼 수 있는 건 거의 다 해본 것 같다. 홀로 끼니를 때우는 게 익숙해지면서 나름 여러 시도를 해봤다. 마시는 걸 즐기지는 않지만 술집에 혼자 들어가 맥주 한 잔을 하고 나오기도 해봤고, 노래방에 가서 2시간 동안 목이 쉬도록 노래를 불러보기도 했다. 홀로 지내는 것에 익숙해져야만 했기에 누군가와 함께 했던 일들을 거리낌없이 혼자서 할 수 있게 됐다. 


그러다 난관에 부딪혔다. 스트레스는 어떻게 풀어야하지? 본격적으로 사회에 발을 딛기 전까지는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해소됐다. 별 걱정 없이 껄껄거리며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저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 사람들과 아웅다웅하는 건 충분한 유희였다.


그런데 당연했던 게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 평범하게 남들처럼 출퇴근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친구들과 달리 내 생활 패턴 자체가 너무 달랐다. 물론 언제든 마음 먹으면 만날 수 있었지만, 컨디션 관리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면서 더욱 어려워졌다. 스스로가 일반적인 패턴에 시간을 할애하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일하는 시간에 오히려 여유가 났고, 그들이 퇴근한 이후엔 내가 해야할 일이 생기기 일쑤였다. 약간 어긋난 시간이 유희를 방해했다.


그러면서 내적 피로도가 쌓이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쏟아내지 않으면 터져버릴 것 같았던 와중에 돌파구를 찾았다. 영화관을 찾아가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 


홀로 영화관을 찾아가 영화를 보는 건 나름의 매력이 있다.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가면 일정 부분 상대를 신경써야만 한다. 심지어 함께 본 영화를 내가 선택한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혼자서 영화를 본다면 그 무엇도 생각할 필요가 없다. 안고 있던 고민조차도 뒤로 미루고 오로지 영화 그 자체에 몰입할 수 있다. 우연히 시도해봤는데 나에게 딱 맞는 취미였다.


그래서 힘들고 지칠 때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영화관으로 향했다. 하루에 연달아 3편을 본 적도 더러 있다. 정말 견디기 어려운 일이 닥칠 때에는 강변역에 있는 영화관으로 간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다. 영화관 한 층 아래에 하늘공원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 가면 한강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영화 시작 전이나 보고 나온 후에는 꼭 들러 경치를 보곤 했다. 가슴 뻥 뚫리도록 시원스레 펼쳐진 경치를 보면서 갖은 고민까지 덜어낸 뒤 돌아서면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다. 심지어 이곳은 서울시에서 선정한 우수경관 조망 명소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가 일상으로 침투하면서 이게 여의치 않았다. 영화관에 너무 가고 싶을 때에는 가능한 사람이 찾지 않는 시간에 조심스럽게 갔다. 평상시라면 커피 한 잔을 사 들고 가서 편안히 보는 게 나만의 정석이지만, 시원한 음료 한 잔 사는 것조차 고민되는 시기다 보니 막상 영화관에 가서도 이전만큼의 만족을 얻지 못했다.


애플리케이션으로 개봉한 영화나 개봉 예정인 영화를 살피면서 그리워한 시간이 훨씬 많았다. '이 영화는 꼭 영화관에서 봐야하는데', '아쉽지만 이 영화는 후일 다시 만나기로 하자' 이런 아쉬운 생각을 열심히 곱씹었다. 놓친 영화 중에 인생 영화가 될 작품이 있었으면 얼마나 속상할까하는 일종의 두려움(?)까지 문뜩 들기도 했다. 


나뿐 아니라 영화관 찾는 걸 좋아했던 대다수 사람들도 쉽사리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당연히 영화 산업이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한 안타까운 기사를 며칠 전에 접했다. 관람객 통계 등 영화 산업 관련한 집계를 하는 영화진흥위원회 결산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한 기사였다.


2019년 대비 지난해 관객수가 무려 73.7% 감소했다고 한다. 수반되는 수익 감소 역시 어마어마했다. 이보다 안타까웠던 소식이 극장 수가 줄어든 것이었다. 영화는 영화관에서 봐야 제맛이라고 여기는 나에겐 청천병력 같은 뉴스가 아닐 수 없었다. 내 유일한 안식처 같은 영화관이 사라지고 있다니. 그럼 이제 내 소중한 취미는 어떻게 대체하고, 영화는 어디에서 봐야 하는 건가!


OTT(Over The Top, 인터넷을 통해 동영상 콘텐츠를 공급하는 서비스)의 강세는 내 우려를 더 심화시켰다. 시장에 진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OTT 서비스는 코로나19 수혜를 앞으로 더 볼 시장이 아닌가 싶다. 이미 장기화돼버린 코로나 사태로 전세계는 거리두기가 한창이고, 사람들은 집에서 일상 대부분을 해소하기 시작했다. 쇼핑, 식사와 같은 행위는 배달로 대체되고 있다. 영화 역시 OTT 서비스가 이전보다 훨씬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OTT 서비스 업체들은 '오리지널'이라는 타이틀을 앞세워 해당 서비스 이용자만이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배치하고 있다. 영화 하나만 두고 보더라도 직접 영화관을 찾는 것보다 OTT 서비스 가성비가 훨씬 뛰어나다. 그 누가 이 시대적 흐름을 거스를 수 있을까. 한 번도 접해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경험해보고 마는 사람은 상당히 드물지 않을까?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영화는 유래없는 전성기를 맞고 있다. K-POP 열풍이 워낙 뜨겁다보니 상대적으로 빛을 보지 못했지만, 우리나라 영화는 꾸준히 그 가능성을 입증해왔다. 세계 영화의 중심지인 할리우드에 진출하는 국내 영화인들이 늘고 있기까지 하다. 국내 팬들 사이에서 마블리라 불리는 배우 마동석이 마블 영화 시리즈에 주연급으로 합류한다는 소식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이게 전부인가. 세계 3대 영화제인 칸 영화제, 베를린 영화제, 베니스 영화제에도 우리나라 영화는 단골손님이었다. 수년간 노크한 덕에 괄목한 결실을 거두기도 했다. 영화 '기생충'은 한국 영화사에 수많은 발자취를 남기며 당당하게 2020년 세계 최고의 화제작이 됐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올해는 '미나리'가 바통을 이어받아 또 다른 역사를 쓰고 있다. 


국내 영화 산업이 코로나 여파로 완전히 붕괴돼 지금 형성된 큰 파도가 사그라지면 어쩌나. 연쇄작용으로 영화관 수도 확 줄어들어버리면 어쩌나. 요즘은 종종 이런 걱정이 든다. 물론 우리 영화 산업이 그리 쉽게 무너질리 만무하겠지만,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가 펼쳐진 이 상황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너무 야속하다. 이거야말로 진정한 잡념이자 푸념이다.


그래도 머지 않아 원래의 일상이 돌아오기를 희망한다. 언제 그랬었냐는 듯이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관을 찾아갈 수 있는 날도 함께 올 거다. 누가 뭐래도 영화는 영화관에서 봐야 제맛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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