딛고 일어나 아픈 자들을 공감하게 되는 날이 오기를
조울증인 것 같다는 진단을 받았다.
우울과 강박이 꽤 높은 상태라고 한다.
어쩐지, 하루 종일 죽고 싶더라
죽고 싶다. 살고 싶지 않다. 얼마 하지도 않는 기도의 내용은 줄곧 나를 죽여달라는 내용뿐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또 하루를 살고 아침해를 맞았다.
[왕상19:4-8]
4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5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6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7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8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꼭 엘리야의 얘기가 내 얘기 같았다.
승리를 맛보기도 했고, 하나님과의 교제가 있기도 했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온데간데없이 나오는 이야기는 죽고 싶다는 말뿐이다.
그럼에도 여전한 현실이라? 내가 기대한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하나님이 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으셔서?
엘리야도 나도 분명 마음속 깊은 곳에 뿌리 뽑혀야 할 죄가 있었겠지
하나님은 그런 엘리야를 억지로 일으키지 않으셨다.
하루, 어루만지시고 먹이고 눕히셨다.
또 하루, 어루만지시고 먹이셨다.
엘리야는 그때 “역시 하나님! 기운 회복했어! 다시 일어나 담대히 나아가자!”라고 외치지 않는다.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며 사십 주 사십 야를 걸었다고 한다.
물론 하나님이 함께 하셨겠지
하지만 그 하루하루 음식물을 주시면서 살아내게 하시고 결국에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도구로서, 선지자로서 서가게 하신다는 사실에
도저히 희망 없어 보이는 나의 상황과 마음이 조금은 조급함을 내려놓게 하고 위로를 얻게 한다.
더 솔직히, 왜 괜찮아져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럴 의지도 없다.
다 포기하고 도망가고 싶다.
그렇지만 내일의 해를 다시 마주해야만 한다면,
내일의 양식을 먹고 또 하루를 살아내게 하시겠지
내가 바라도 된다면
나도 사십 주 사십 야, 그 시간이 흘렀을 때
하나님을 찬송하고 싶다.
진심으로, 온 마음 다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