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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 Aug 29. 2023

내가 국을 잘 먹지 않는 이유

나는 아침밥을 먹는 사람이었다.

비록 한 숟가락일지라도 말이다.

국이 없으면 그 한 숟가락조차 잘 뜨질 못했다.

그래서 엄마는 갓 지은 쌀밥과 국을 끓여 내주셨다.

거의 매일을.

지금 보니 나는 아주 고약한 딸이었던 것이다.


난 국 종류를 참 좋아했다.

콩나물국, 미역국, 소고기뭇국, 감잣국... 가릴 것 없이 좋아하는 편이었다.

밥보다 국을 더 많이 먹을 정도로 좋아했다.

아빠나 동생도 비슷한 식성이라 다른 집도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결혼하고 보니 남편은 나만큼 국을 많이 먹지 않는 것을 보고 누구나 국을 좋아하는 것은 아님을 알게 되었다.

남편은 음식을 골고루 잘 먹지만 국은 내가 먹는 양의 반만 떠주어도 더 달라는 법이 거의 없었다.

밥은 나보다 많이 먹는데도 말이다.


그러던 내가 이제는 국을 잘 먹지 않는다.

심지어 남편보다도 조금 먹는다.

게다가 국이 없어도 밥을 잘 먹는다.

이렇게 하루아침에 식습관이 변할 수 있던가? 그것도 40년을 넘게 산 사람이!



국을 잘 먹지 않는 이유


이유는 단순하다. 창피할 정도로 단순하다.

자초지종 설명을 한다면 누군가는 야유를 보낼 듯싶다.


왜냐하면, 이제는 내가 국을 끓이는 사람이 됐기 때문이다.

아침은 밥 한 숟가락이라도 떠야 됐던 나는 결혼 후 아침도 자주 거르게 되었다.

특히 신촌 초에는 출근준비 하느라 정신없어서 밥까지 챙겨 먹을 깜냥이 되질 않았다.


그래도 지금은 아이 밥을 챙겨주느라 옆에서 조금이라도 같이 먹고는 하지만, 그마저도 갓 지은 밥이나 국은 없다.

아이는 밥을 먹기도 하지만 빵이나 시리얼을 더 잘 먹는다.

사실 빵이나 시리얼을 더 잘 먹는 건지는 모르겠다.

아침부터 4첩 반상 같은 것을 차려 준 적이 없으니 말이다.


남편은 국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인지라 자연스럽게 음식을 하게 되면 한 그릇 요리 같은 것을 주로 하게 되었다.

처음엔 국을 끓여서 냉동실에 얼려 놓기도 했지만 그걸 다시 해동해서 먹는 일도 생각보다 귀찮았다.

그렇게 점점 국을 끓일 일이 없다 보니 먹을 일도 줄어들게 되었다.


그러다 아이가 이유식을 거쳐 유아식을 할 때가 되니 매번 무슨 국을 끓일지 고민이 되었다.

안 그래도 요리랑은 담을 쌓은 나는 반찬에 국에 정말 괴롭기 그지없었다.

물론 상당 부분 친정 엄마의 도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내가 해야 하는 순간이 필히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다행인 건지 아이가 국을 잘 먹질 않았다.


그리고 나는 자기 합리화를 시작했다.

'국이란 것이 건강에 꼭 좋은 것은 아니지 않나?'

'외국 사람들은 국 없이 식사 잘만하는데, 한국인의 높은 나트륨 섭취량의 근원은 국종류라는데!'

쓰고 보니 좀 못났다. 못난 엄마다.

매 끼니 갓 지은 밥에 국을 차려주신 친정 엄마를 생각하면 부끄럽다.




우수갯소리로 음식 할 사람이 없으니 집안 제사가 없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언젠가 사회면 기사에 픽션처럼 실렸던 기사였던 것 같기도 하고, 인터넷 커뮤니티에 썰처럼 올라온 이야기였던 것 같기도 하다.

당시에는 남자들 참 못났다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내가 딱 그 모양새다.


국 끓일 사람이 없으니 국을 안 먹는 사람이 되었다.

국을 잘 끓여준다고 꼭 좋은 엄마가 되라는 법은 없지만, 그 시절 새벽부터 일어나 밥을 해 주셨던 친정 엄마를 생각하면 난 아직 한참 멀었구나 싶다.

육아란 각자의 방식이 있지만 힘든 시절 나와 동생을 살뜰히 키워내신 부모님을 생각하면 나의 그릇은 아직도 참 작음을 느낀다.

엄마찬스만 쓸 수는 없으니 집에 쟁여두는 녀석들

1년, 2년, 3년...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나도 좀 더 의젓한 엄마가 될 수 있을까?

국은 잘 끓여주진 않을지언정 다른 모습의 사랑을 한 껏 줄 수 있는 그런 엄마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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