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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 Jul 26. 2023

나는 적당히 깨끗하게 살기로 했다

소파 위의 과자 부스러기, 바닥에 굴러다니는 머리카락, 장식장 위에 쌓인 먼지, 허물처럼 벗어놓은 옷가지, 욕실의 물때.

이 모든 것들을 참기 힘든 당신이라면 육아 예민도는 상당히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당장 청소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면 더욱 그렇다.

게다가 깨끗함에 대한 민감도가 다소 낮은 사람이라도 아이가 태어나면 민감도가 급 상승한다.


깨끗함에 대한 민감도를 1에서 5 사이라고 한다면 나는 민감도 4 정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과자 같은 건 가능한 부스러기를 떨어뜨리지 않고 먹고 과자 봉지도 바로바로 치워야 하는 편이지만 욕실을 아침저녁으로 락스 부어가며 닦는 정성을 들이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난 직후에는 이러한 민감도가 5까지 상승했다.

최고 절정에 달했을 때는 아이가 막 기어 다니기 시작할 무렵이었던 것 같다.

아이가 온몸으로 바닥을 쓸고 다니는 그때, 무엇이든 입에 넣고 보는 그 시절은 새벽부터 일어나 거실에 깔아놓은 매트와 장난감을 닦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렇게 살다 보니 부족한 잠은 더 부족하고 짜증은 늘어나고 결국 쌓여버린 그 짜증이 도화선이 되어 남편과 싸우는 일이 빈번했다.


남편과는 연애시절부터 신혼 때까지 싸워 본 일이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그 한해에만 몇 번을 싸웠는지 모르겠다.

남편도 육아와 집안일을 함께 하였지만 내 맘에 차지 않는다는 이유로 속에서 천불이 났다.

남편은 남편대로 열심히 하고 있는데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 하니 그것대로 기분이 상한다고 했다.


다행인 점은, 나는 깨끗함에 대한 민감도가 4인 사람이었고 관성의 법칙에 따라 5로 상승했던 민감도가 차츰 4로 다시 회귀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상당한 의지를 가지고 그 민감도를 3으로 내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바닥에 머리카락 좀 굴러다닌다고 별일 아니야, 괜찮아'를 되뇌며 마인드 컨트롤을 한다.

그렇다, 나는 적당히 깨끗하게 살기로 했다.


아이가 장난감을 입으로 물고 빨던 시절이 호시절이었을까.

이제 아이는 온 집안을 놀이방 삼아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장난감을 흘리고 다닌다.

책장 앞에서는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온갖 책을 다 꺼내놓고는 수영장이라고 우기며 헤엄치는 시늉을 한다.

극악의 난이도는 레고를 바닥에 쏟아부어 버릴 때이다. 어린이용 레고인 듀플로가 아닌, 진짜 레고 말이다!

남편과 나는 이제 당분간 레고는 사주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레고는 좀 더 크면 사주기로 하자


무선청소기를 하루에 4~5번은 돌리는데도 바닥엔 또 머리카락이 굴러 다닌다.

예전엔 나와 남편 머리카락만 굴러다녔지만, 이젠 아이 머리카락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아이가 과자를 먹을 때면 사방 팡 발 과자 부스러기가 날리지만 벙어리 냉가슴일 뿐이다.

그래도 이유식을 처음 시작하던 그때보다는 조금 나아진 듯도 싶다.

그땐 정말 꿈에서 어느 서랍장 사이에 낀 밥풀을 빼내는 나를 볼까 두려웠었다.


아이가 말이 서툴 땐 아이를 따라다니며 장난감도 치우고 책도 바로바로 꽂아놓곤 했는데, 이젠 아이가 의사표현이 자유로우니 그마저도 힘들다.

"엄마 같이 놀자. 그거 치우면 안 돼~"

아이 옆에 앉고 보면 왜 이리 바닥의 머리카락과 정체 모를 부스러기들이 눈에 들어오는지, 곧 장 일어나 청소라도 하려고 치면, 아이는 앉으라고 성화다.

"청소기 한 번만 돌리고 놀자."

이 말 한마디에 날 바로 놔줄 리 없다.

"안돼"

아이는 단호하다.

화장실도 못 가게 하는 너인데 청소가 대수겠는가.


오늘은 발바닥에 부스러기 좀 밟혀도 그냥 넘어가야겠다.

매일 치우고 사는데 부스러기 좀 있다가 큰일 날까.


아이가 크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이런 일도 다 지나간 옛일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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