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피 Jul 31. 2023

바나나 소탕 작전

아이가 이유식을 시작하기 전에는 바나나란 과일은 가끔 장바구니에 담는 품목이었는데 이제는 바나나를 사기 위해 마트를 직접 가기도 한다.

직접 마트를 가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는 실로 엄청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바나나는 좋은 과일이다.

먹으면 포만감도 있고 달콤하기도 하고 노란 껍질이 꽤 매력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은 대체적으로 바나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 우리 애도 그렇다.

어떤 날은 달라는 말을 안 하지만, 어떤 날은 바나나가 없으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서럽게 울기도 한다.  

아이가 언제 바나나를 찾을지 모르니 바나나를 사놓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해진다.


문제는 우리 애는 흠집 없는 노란 껍질의 예쁜 바나나만 먹는다는 점이다.

눈에 띄지 않는 작은 반점들이 생긴 녀석들은 은근슬쩍 반쯤 껍질을 꺼버리면 알아채지 못하니 유야무야 넘어갈 수 있다. 그렇지만 이미 과하게 익었거나 냉장고에 들어가 갈변된 녀석들은 어김없이 불합격 통지를 받는다.


이렇다 보니, 우리 집에는 싱싱하고 노란 바나나도, 과하게 익어 껍질이 벌어진 바나나도,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 냉장고에 들어가 갈색으로 변해버린 바나나가 동시에 존재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한다.

최근 아이가 열감기로 식욕이 부진하다 보니 바나나가 쌓일 대로 쌓였다.

이미 냉장고에서 갈색이 되다 못해 이제는 버려야 하나 고민하게 되는 녀석들이 있는데 아이가 먹지 못해 실온에서 반쯤 갈색 반점이 덮인 아이들도 냉장고에 모두 집어넣었다.

먹고 또 먹어도 줄지 않는 녀석들

그리고 근처 사는 친정엄마가 또 바나나를 들고 오셨다.

내가 필요 없다고 했지만 엄마 집에도 한송이 샀다고 특수 비닐팩에 싸서 냉장고에 넣어두면 갈변되지 않는다고 하시길래 긴가민가 지만 엄마가 다시 가져갈 것 같지 않으니 일단 냉장고에 넣었다.

그 녀석들은 금새 갈색으로 변해서 오도 가도 못한 채 냉장고에 방치되어 있다.


이대로는 안된다.

바나나 소탕작전이 필요하다.

어떻게든 바나나를 해치워야 한다.

그냥 먹는 것도 한계가 있어 인터넷에서 '바나나 요리'를 검색해 본다.

솔직히 요리라고 할만한 게 별로 없다.


그래도 그중에 하나 골라서 내심 아이가 잘 먹을 수도 있다는 헛된 기대감을 가지고 만들어 본다.

이름하여, "바나나 브릴레"

요리라고 하기엔 너무 간단한데, 달군 팬에 버터를 두르고 바나나를 익혀 먹는 것이다.

역시 아이는 잘 먹지 않는다.

나랑 남편이 먹는다.


우리는 아마도 내일 또 '바나나 브릴레'를 만들어 먹겠지.

아, 물론 노란 바나나만 먹는 우리집 작은녀석은 빼고.








작가의 이전글 나는 적당히 깨끗하게 살기로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