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

12주 프로젝트의 절반, 상반기를 돌아보며

by 차미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다

아파트 상가에 김밥가게 하나가 있었다. 장사가 잘 됐다. 하지만 길 건너편에 비슷한 가격에 여러 메뉴를 파는 김밥가게가 새로 생겼다. 고객들은 하나둘 새로운 김밥가게로 발길을 옮겼다. 결국 오래된 김밥가게는 문을 닫았다.


혹자는 이 해고와 점포 정리의 과정을 '부정의'라고 볼지 모른다.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장사 안 되는 김밥가게 간판이 내려가고, 새로운 김밥가게와 피자가게 간판이 올라가는 것은 우리 삶의 일상이다. 잘 굴러가던 가게를 정리해야 하는 당사자만 고통스러울 뿐, 세상은 그렇게 흘러간다.


<오픈 엑시트>라는 책을 읽던 중 기억에 남는 일화였다. 김밥가게가 없어지던 그 과정 중, 누구도 불의를 저지르진 않았다. 다만 상황이 그렇게 된 것이다. 회사에서의 나도 그 김밥가게와 다르지 않았다. 변화의 흐름에 따라 한때 잘 돌아가던 나의 자리, 그 익숙한 공간이 사라졌을 뿐이다.



일단 움직여보니 길이 보였다

12주 프로젝트의 시작도 '뭐라도 해봐야지'라는 생각에서 비롯됐다. 회사를 나온 뒤 '이력서 제출 - 면접 - 탈락' 사이클을 몇 번 겪고 나니 금세 반년이 지나있었다. 나는 그대로인데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만 갔다. 그렇게 무기력한 일상을 보내다 문득, 요즘은 커리어에 있어서도 한번 이상의 피보팅이 있다고 하는 시대인데 어쩌면 이 시기에 조직 밖에서의 나를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12주 프로젝트 상반기 동안 궁금했던 여러 강의들을 수강해봤다. AI 툴 사용법을 배워보는 강의를 들어보며 챗GPT가 최고인줄만 알았던 우물 안에서 벗어나보기도 하고, 디지털 노마드 선배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도 했다. 이외에도 블로그를 키우고, 글쓰기 모임을 운영하며 소소한 수익도 내보고, 최근엔 투자 공부도 틈틈이 해보려고 하고 있다. 처음엔 그저 '뭐라도 해보자'라는 마음이 컸다. 어떤게 될지, 어떤게 쓸모 있을지 몰랐다. 그냥 일단 했다.


그런데 6주차를 지내며, 신기한 일이 생겼다. 이전에 배웠던 잡기술이 새로운 아이디어의 씨앗이 됐고, 무심코 시작한 일이 또 다른 기회의 문으로 이어지게 된 것. 별개의 경험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우연치 않게 딱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뭐라도 해보는 그 경험의 조각들이 어떤 결과를 위한 '과정'으로 이어진 것이었다. 움직이지 않았다면 느끼지 못했을, 흩어져있던 퍼즐 조각이 하나로 맞춰졌을 때의 어떤 쾌감이 밀려왔다.


이미 여러 경험의 중요성을 몸소 체험한 사람이 있다. 바로 스티브 잡스다. (물론 내가 스티브 잡스만큼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는 건 아니다) 스티브 잡스는 국내 최고 수준의 서예 교육을 제공하는 리드칼리지 학교를 다니며 명조와 고딕, 서체, 자간 변화 등에 대해 배웠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스티브 잡스는 어느 것도 자신의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10년 뒤 세상을 바꾼 최초의 매킨토시 컴퓨터를 설계할 때 이 경험들이 도움이 됐다고 한다.


순전히 호기심과 직감만을 믿고 저지른 일들이 훗날 정말 값진 경험이 되었습니다. 제가 대학에 있을 때는 미래를 내다보고 점들을 연결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10년 후에 돌아보니, 그것은 매우 분명했습니다. 달리 말하면 지금 여러분은 미래의 점들을 연결할 수 없습니다. 단지 과거를 되돌아보며 점을 연결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미래에 점들이 어떻게든 연결된다는 걸 믿어야 합니다.

- 스티브잡스 스탠포드 연설 중



할까 말까 할땐 해라, 절반의 반환점에서

회사 다닐 땐 조직에서 월급 받으며 일하는 것만이 정석인 줄 알았다. 그런데 세상엔 내가 모르는 것들이 많았다. 여러 가지를 시도해보고, 그 중 되는 걸 열심히 파면 된다. 단순한 이야기지만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실감하기 어려운 깨달음이었다. 머릿속 계획은 완벽하지만, 세상은 늘 예상 밖이었다.


그래서 요즘은 고민의 시간을 줄이려고 한다. 할까 말까 망설일 때는 일단 해보고 생각하는 쪽을 택한다. 실행은 언제나 불완전하지만, 멈춰있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그리고 이제는 그 실행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까, 기대하게 된다. 고민하는 시간을 줄여 실행 격차를 줄이기. 결국 움직이는 사람에게 길이 열린다는 것, 지난 한주는 미친 실행력의 중요성을 느낀 한 주였다.


벌써 12주의 절반, 상반기를 지나 하반기를 맞이할 때다. 돌이켜보면 완벽하게 계획을 세우려 했던 것보다, 우연히 시도했던 일들이 오히려 더 큰 깨달음을 주지 않았나 싶다. 예상치 못하게 김밥가게처럼 잘되던 가게의 문을 한순간에 닫게 될 수도 있지만, 그 경험은 다음 가게를 여는 밑천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경험들이 예상치 못한 곳으로 나를 이끌기도 한다.


쓸모 없는 경험은 없다. 다만 아직 쓰이지 않았을 뿐이다.

다음 한 주는 빠르게 실행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빠르게 수정해나가며 더 나아가는 한 주로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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