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에서 성장해 가는 한국음식

by JIPPIL HAN

고독한 미식가 고로상과 성시경이 진행하는 넷플릭스 시리즈 '미친 맛집'에서 한국의 만두 칼국수를 먹으며 고로상이 했던 말이 인상적이다.


"한국 음식에는 참 묘한 매력이 있다. 주방에서 다 만들어져 나오는 듯 보이지만, 사실 식탁 위에서 계속 성장한다"


만두칼국수를 떠올리면 금세 이해가 간다.

아무것도 넣지 않은 맑은 국물의 첫맛을 조심스럽게 음미한다.
그리고나서 칼국수 면발을 건져 올리면 담백함이 입 안에 퍼진다.
그러다 고추 장아찌를 올리고, 다진 양념을 살짝 풀어 넣으면 맛이 눈에 띄게 깊어진다.
겉절이가 들어가는 순간 칼국수는 전혀 다른 성격의 음식이 되고, 마지막엔 만두 하나를 으깨 국물에 풀어 넣으면 국밥 한 그릇이 '완성'된다.

이 모든 과정이 식탁 위에서 벌어지는 성장 드라마다.


설렁탕도 마찬가지다.
첫 숟가락은 그 집 국물의 기본을 보여주지만 그다음 숟가락부터는 먹는 사람의 취향이 개입되기 시작한다.
소금, 후추, 파, 깍두기 국물.
조금씩 더해질 때마다 국물은 새 이름을 얻고, 한 그릇 안에서 여러 단계의 버전으로 변해간다.


감자탕 역시 성장의 단계를 지닌 음식이다.
국물 맛보기로 시작해 뼈에서 살을 발라먹고 남은 국물에 밥을 비비고 마지막엔 볶음밥까지.
하나의 메뉴 안에서 네 가지 다른 맛의 장면을 넘나들 수 있다.


비빔밥은 ‘비비기 전과 후’가 완전히 다른 세계다.
참기름을 몇 방울 떨어뜨리고 고추장을 적당히 넣어 젓가락을 천천히 움직이는 순간,
각자 고유의 색을 지녔던 재료들이 하나의 풍경으로 합쳐지며 전혀 새로운 맛으로 태어난다.

마치 작은 손짓에 반응하는 살아 있는 음식처럼.


이렇게 보면 한국 음식은

식탁 위에 놓이는 순간부터 ‘완성’이 아니라 ‘시작점’을 맞이하는 음식들이다.
재료와 조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먹는 이의 선택과 손끝으로 마지막 맛이 결정된다.


오늘도 누군가는 설렁탕에 파를 더 얹고 순댓국에 들깨를 뿌리고, 칼국수에 겉절이를 넣으며
한 그릇의 맛을 조금씩 성장시키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작은 성장의 과정이야말로 한국 음식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풍경인지도 모른다.


아.. 글을 쓰면서 침이 고인다. 만두 칼국수 격하게 먹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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