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E가 위기에 대처하는 법

by JIPPIL HAN

파워 E라는 말을 들으면 내 이야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오늘의 주인공은 나의 큰딸이다.


딸은 내년 4월 일본 대학으로 복학하기 전까지, 한국에서 단기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아침이면 남편이 출근길에 딸을 당산역에 내려주고, 딸은 삼성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출근한다.


어제도 평소처럼 딸을 보내고 방을 정리하다가 딸 옷 주머니에서 카드지갑이 통째로 발견됐다.
현금을 거의 들고 다니지 않으니 분명 카드가 필요할 텐데, 이상한 마음이 들어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는다.
가족 톡방에 메시지를 남겼다.
“딸! 니 옷에서 카드지갑이 나왔는데, 이거 안 가져가도 되는 거야?”

답이 없다.

이미 출근할 시간이 지난 터라, 그냥 ‘무소식이 희소식이겠지’ 하며 일하러 나갔다.
아마 아빠 차에서 중간에 알았겠지.
돈은 아빠한테 받아서 잘 갔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9시 반쯤, 가족 톡방에 딸에게서 메시지가 떴다.
“엄마, 나 지하철에서 쌩쇼함ㅋㅋㅋ 바쁘니까 집 가서 얘기할게ㅋㅋㅋ”


저녁 8시쯤 퇴근한 딸이 들어오자마자 나는 물었다.
“무슨 일이었어?”

딸은 이렇게 말했다.
“아빠 차에서 내려서 교통카드 꺼내려는데… 카드지갑이 없는 거야. 현금도 없고.
아빠 불러야 하나 싶었는데, 차도 막힐 텐데 기다리면 지각일 것 같고… 그냥 해보자 싶었어.”


그래서 딸은 지나가는 사람들 중 ‘최대한 친절하게 생긴 젊은 여자’를 찾았다고 했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말했다.
“저기요, 정말 죄송한데요… 제가 교통카드를 두고 와서요.
회사 출근을 해야 하는데, 계좌이체 바로 해드릴게요. 5천원만 빌려주실 수 있을까요?”

“어머, 저도 현금이 없어요…”
생각해보면 요즘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현금을 들고 다니지 않는다.
몇 번을 부탁해도 다들 고개를 저었다.


그때 딸은 나이 지긋한 어르신 한 분께 다가갔다.
“아이고, 젊은 처자가 출근 못하면 안되지. 자, 만 원. 이체 안 해줘도 되니까 어서 가.”
계좌번호를 아무리 물어도, “됐어 됐어. 요즘 젊은이들 참 힘들다 그지? ”며 손사래를 치셨단다.

그리고는 딸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일 힘들어도 잘 챙겨 묵고 다녀, 응?”

그 말을 남기고 어르신은 인파 속으로 홀연히 사라지셨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마음이 참 따뜻했다.
요즘처럼 각박한 세상에, 낯선 사람의 부탁을 들어주는 일은 쉽지 않다.
출근길에 몹시 당황했을 딸에게 돈까지 선뜻 내어주시고 따뜻한 말까지 건네신 그분께 진심으로 감사했다.

딸은 하루 종일 그 아침의 온기를 품고 일했다고 했다.
“엄마, 아직 세상은 따뜻한 것 같아.” 그 말을 들으며 나도 함께 웃었다.


그나저나, 우리 딸…
어떻게 모르는 사람에게 돈을 빌릴 생각을 했을까?
소위 ‘E’라 불리는 나도 그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나라면 남편에게 전화해서 돌아와 달라 했겠지.


그러고 보면 우리 딸은 내가 나은 '진정한 파워E' 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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