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 무렵 머리카락은 원형탈모 한 두 군데를 제외하고는 거의 完毛가 되었다.
머리카락이 굵고 건강해 보여서 '아 이제 됐구나!!' 안심을 했고, 모처럼 나도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아이의 완모기념으로 제주도 여행도 다녀왔다.
제주도에서 말을 타며 환하게 웃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그동안의 고생과 노력들을 보상받는 것 같았다.
그러나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환하게 웃던 아이의 모습은 제주도에서가 마지막이었다.
감기를 몇 번 앓고 나더니 갑자기 머리가 무섭게 빠지기 시작했다.
베개에 몇 개 빠졌나 세어보고 그럴 정도가 아니었다. 한 뭉텅이씩 빠진다고 표현을 해야 하나..
바로 병원에 가봤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다. 일단 빠지는 게 멈춰야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아이는 '자가면역 질환'이라고 한다. 감기 바이러스라도 몸에 들어오게 되면 체내의 면역세포가 머리카락도 공격 대상자라 생각하고 마구 공격을 해대는 것이라고 한다.
빠지는 속도는 그 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빨랐다. 우리 가족은 완전히 멘붕에 빠졌다.
뭘 어떻게 손 쓸 방법도 없어 보인다.
부위가 넓어져서 이제는 그냥 나다닐 수가 없었다.
한참 멋 부릴 나이에 아이는 모자를 쓰고 등교할 수밖에 없었고, 나는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선생님께 아이의 상황을 미리 말씀드리고 모자 쓰고 등교하는 것을 허락받아야 했다.
친구들은 "여자애가 왜 맨날 야구모자를 쓰고 다녀? "라고 물어보기 시작했고,
짓궂은 남자아이들이 모자를 벗기고 대놓고 놀리는 일이 비일비재해 지속적으로 상처받고 있었다.
어느 날 회사 근무 중에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어머님~ 오늘 체육시간에 아이들과 다 같이 큰 줄넘기를 하다가 줄넘기에 모자에 걸려서 벗겨지는 사고가 있었어요." 아이가 씩씩하게 다시 모자를 쓰긴 했는데 많이 놀랐을 거예요~ 제가 많이 위로해 주긴 했는데 어머님도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서요. "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언젠간 이런 사고가 일어날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나는 퇴근하고 가만히 아이를 안아주었다.
"괜찮니? 놀랐지?."라고 했는데 처음에는 "괜찮아요.. 아무렇지 않아." 하더니 이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냥 울어도 돼. 실컷 울자 우리!!" 하고 우리 모녀는 서로를 얼싸안고 한참을 울었다.
차라리 내 머리를 다 뽑아서 아이에게 심어줄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그렇게 해주고 싶었다.
하나님이 왜 우리 착한 아이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건지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나는 매일 간절히 하던 기도를 중단했고 완전히 자포자기 상태가 되었다.
결국 아이는 6학년 1학기쯤, 남아있던 모든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눈썹, 속눈썹, 귀털, 코털까지 몸에 있는 모든 털 이 다 빠지는 이른바 '전신탈모'가 되었다.
그 상태로 졸업을 맞이했고 졸업식날 가짜 머리카락이 달린 모자를 쓰고 졸업식에 참석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 우리 가족은 웃으며 사진을 찍었지만 아무도 그 사진을 다시 보지 않았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