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1974년생이다.
우린 어린 시절 대부분 부모님들의 체벌이 있었고 형제자매 간에도 말다툼 끝에 치고받고 싸우는 일이 많았다.
특히 엄마는 시어머니 두 분을 모시고 사는 며느리로서 매사에 예민했고 지금 생각해 보면 시집살이 스트레스를 막내인 나한테 많이 푸셨던 것 같다.
에피소드 1
국민학교 5학년 때의 일이다. 학교에서 쪽지시험을 봤다. 사회과목 50문제 가운데 8개를 틀렸던 나는 그게 그렇게 많이 틀린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고, 친구들 2명을 데리고 집에 와서 신나게 놀고 있었다.
엄마가 도시락통을 꺼내 닦으시려고 가방을 열었다가 쪽지시험지를 발견하셨다.
"야! 니들 둘 집에 가! " 하며 친구들 2명을 집으로 보내셨다.
친구들은 놀라 쭈뼛쭈뼛 집으로 돌아갔다.
"너 시험을 이따위로 봐 놓고 친구를 데려와서 놀 생각을 해? 라며 분노하셨고
" 50문제나 되는데 8개 틀린 거면 잘한 거지 뭘"이라고 말대꾸를 해 버렸다. 그냥 잘못했다고 할걸..
엄마는 갑자기 가방 속에 들어있던 리코더를 들어 나를 때리기 시작하셨다.
리코더는 꽤나 아픈 무기에 가까운 매였다.
두대쯤 맞고 비명을 지르자 할머니가 오셔서 말리기 시작하셨다.
"야야.. 애를 왜 때리냐.. 말로 해라 말로..!! "
엄마는 할머니가 말리자 더 세게 더 많이 때리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난로에 기름을 부은 것이었다.
결국 할머니가 리코더를 빼앗아 가셨다.
그러자 엄마는 분에 못이겨 옆에 떨어져 있던 도끼빗을 들고 닥치는 대로 나를 때렸다.
엄마는 그렇게 나를 한참 때리다가 분에 못 이겨 문을 쾅 닫고 나가셨다.
다음날 아침 몸을 살펴보니 리코더 바람구멍이 선명하게 남을 정도의 자국으로 멍이 들어있었다.
에피소드 2
우리 집은 삼 남매였고 내 바로 위가 우리 집 3대 독자 오빠였다.
우리 오빠는 아예 부엌에도 얼씬도 못하게 했으며 모든 집안일과 심부름은 내 독차지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준비 할 때가 다 되었는데 내가 집에 돌아오지 않자 엄마는 어쩔 수 없이 오빠에게 두부를 사 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다고 한다.
평소에 심부를 하지 않던 오빠는 툴툴거리며 집을 나섰겠지.. 그러던 중 길가에서 나를 딱 만났다.
기회는 이때다 싶은 오빠는 나보고 엄마가 두부 사 오라고 했다면서 심부름을 나에게 떠넘겼다.
" 엄마가 오빠 시킨 건데 내가 왜 해!! "라고 버텼고 난 결국 오빠한테 주먹으로 팔을 2대를 맞았고 난 엉엉 울면서 엄마한테 이 사실을 말하고 오빠를 혼내 주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엄마는 "오빠가 심부름 안 해봐서 너 시킨 건데 뭘 그래 네가 그냥 빨리 다녀와~" 하며 오빠 편을 들었고 억울하고 분한 마음으로 씩씩대며 결국 심부름을 마쳤다.
난 그 일로 엄마에 대한 반항심이 점점 커졌었던 것 같다.
.
언젠가 미국에 사는 오빠 집에 놀러 갔을 때 함께 맥주를 마시며 위의 에피소드 2가지를 얘기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엄마 아빠도 그리고 오빠도 매우 놀라면서 전혀 자신들이 그랬던 기억이 없다며 다른 사람이랑 착각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
'그래 원래 맞은 놈만 기억하고 때린 쪽은 기억이 없는 거지'
물론 아직까지 내가 부모님과 오빠를 원망하거나 마음속으로 미워하는 것은 아니다.
엄마의 시집살이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했는지는 지금 되돌아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절대 내 아이에게 신체적인 어떤 체벌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그 다짐을 잘 지키며 살았다.
하지만 가능하다면 언젠가 그들에게 꼭 사과를 받고 싶다.
어린 나에게 40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만한 고통스러운 기억을 준 사실에 대해 꼭 사과받았으면 좋겠다.
언젠가 사과를 받게 되면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그동안 그 기억으로 내가 힘들었노라고.. 그건 절대 체벌이 아니라 폭력이라고.. 그럼 안 되는 거였다"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