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빠듯한 교사 월급으로 일곱 식구가 살아가던 어린 시절, 주말 외출은 우리 가족에게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다.
편찮으신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고 있는 데다가 삼남매를 모두 데리고 외출하는 것은 아마 부모님께 큰 부담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엄마 아빠는 가끔 주말이면 우리를 데리고 가까운 서울로 나들이를 가셨다.
평소 집에서는 늘어진 티셔츠와 츄리닝 차림으로 일만 하던 엄마가 그날만큼은 꽃무늬 원피스를 꺼내 입고,
곱게 색조 화장까지 했다. 어린 나는 엄마의 예쁜 모습을 보기만 해도 마음이 설렜다.
그 시절 내가 가장 좋아했던 외출은 버스를 타고 명동에 가는 것이었다.
명동에는 백화점들이 모여 있었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언제나 '미도파 백화점'만 고집했다고 한다.
어쩌면 그곳이 우리 가족만의 작은 약속 같은 공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려운 형편에 무슨 백화점 쇼핑? 이라고 하겠지만, 우리가 미도파백화점에 가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내가 백화점에 가는 목적은 단 하나, '에스컬레이터'를 타기 위해서였다.
에스컬레이터가 흔치 않던 시절, 스스로 움직이는 계단은 내게 신기한 세상으로 가는 문 처럼 느껴졌다.
그 시절 '이상한 나라의 폴'이라는 만화영화가 있었는데, 에스컬레이터 저 끝에는 마치 니나가 잡혀있는 마왕의 세계가 있을 것만 같았다.
"우리는 달려간다 이상한 나라로. 니나가 잡혀있는 마왕의 세계로..
어른들은 모르는 사차원세계, 날쌔고 용감한 폴이 여깄다.. "
나는 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에스컬레이터에 오르곤 했다.
엄마 손을 꼭 잡고 한 층씩 올라탈 때마다 발끝이 살짝 붕 뜨는 그 짧은 순간이 어찌나 설레고 짜릿했는지 모른다.
백화점 1층에 들어서면 풍기는 특유의 향기도 좋았다. 화장품과 향수냄새가 뒤섞인 공간 속에서
나도 모르게 부자가 된 것 같았다.
점원들은 지나가는 우리에게 환하게 인사했고 엄마 아빠는 조금 쑥스러워하시며 미소로 답하셨다.
엄마는 마네킹에 걸린 숙녀복을 잠시 바라보다가 가격표를 확인한 후 조용히 발길을 돌리셨고
아빠는 그런 엄마의 모습을 모른 척 외면하곤 하셨다.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1층으로 내려오면 우리를 기다리는 작은 하이라이트가 있었다.
지하 1층에서 파는 '소프트 아이스크림'이다.
레버를 돌리면 소용돌이치며 나오는 아이스크림을 우리 삼남매는 눈을 반짝이며 바라보았다.
초코를 먹을까, 바닐라를 먹을까 하는 잠깐의 망설임조차 큰 행복으로 느껴졌다.
아마 그 달콤한 순간 때문에 내가 그렇게 미도파백화점만 고집했는지도 모르겠다.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내리며 한참 놀다 보면 배가 고파진다.
삼남매를 데리고 백화점 식당가는 꿈도 꾸지 못하고, 우리는 늘 백화점 뒷골목의 작은 칼국수 집으로 향했다.
엄마는 "막내는 어짜피 다 못 먹으니까 엄마랑 나눠먹자" 고 했지만, 나는 혼자 먹겠다며 울고 떼를 쓰곤 했다. 결국 내 몫의 일인분이 따로 나왔지만 다 먹지 못해 엄마의 눈총을 받았다.
백화점 식당가의 고급식사는 아니었지만 따끈한 멸치국물이 온몸에 퍼질 때 느껴지는 그 안도감과 구수한 감칠맛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우리 가족에게 ‘미도파백화점 외출’은 남들 처럼 부유함의 상징이 아니라 '작은 모험' 같은 이벤트였으며,
나에게 백화점은 쇼핑센터가 아니라 이상한 세상을 구경하는 창, 그리고 에스컬레이터는 그 세상을 오르내리는 길이었다.
지금은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에스컬레이터.
가끔 그 위에 발을 올릴 때면 어린 시절 미도파 백화점에서 느꼈던 에스컬레이터에 한발을 딛기 전의 설렘과 두근거림이 다시 살아나고 그 시절 엄마, 아빠와 함께한 하루의 외출이 따뜻하게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