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작당」 ①
이 여행의 규칙은 단 두 가지다. 첫째, 가능한 한 같은 장소에서 일박이일을 넘기지 않을 것. 둘째, 명함을 가지고 다닐 것.
우리는 여행 준비 기간을 위해 연고 없는 소도시 외곽으로 들어갔다. N은 다 헐어가는 모텔을 거처로 잡았고 모든 비용을 자신이 부담했다. 근처의 다른 숙소보다 비용이 약간 덜 들었다. 여행 이외의 지출은 되도록 삼가야 하니 이해해 달라고 했다. 나는 알겠다고 했다. 모텔 내부는 외관보다 더 엉망이었다. 사 층짜리 건물에 엘리베이터는 수리 중이라 사용할 수 없었다. 로비에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팝콘기계가 있다는 게 그나마 장점이었다. N은 방을 잡자마자 서울로 떠났다. 아버지 회사에 처리해야 할 용무가 있어 보름 정도 다녀오겠다고 했다.
우리 방은 사 층 가장 안쪽에 있었다. 카드 키를 현관 키홀더에 꽂자 정육점 조명 같은 싸구려 홍등과 형광등이 함께 켜졌다. 홍등을 껐다. 거대한 꽃들이 징그럽게 그려진 벽지에서 눅눅한 냄새가 났다. 나는 침대에 누워 이제는 쓸모없는 휴대폰을 아무렇게나 던져뒀다. 인쇄소에서의 밤, N은 여행계획을 설명하면서 필요치 않은 연락처는 모두 삭제하자고 했다.
“난 몇 개는 가지고 있어야 돼.” N이 연락처를 훑으며 말했다. “돈 굴리는 데 필요하거든. 어?”
“왜?”
“다 지워도 괜찮아?”
나는 연락처 전체 삭제 및 차단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그럼. 얼마나 꿈꿔왔던 일인데.”
“화끈하네.” N이 유쾌하게 말했다.
나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속이 후련할 때까지 긴 숨을 내뱉었다. N은 연락처를 하나하나 확인하며 지우거나 남겼다. 나는 망설이다가 포니테일의 근황을 아느냐고 물었다.
“안 그래도 궁금했다야.” 연락처를 확인하던 N이 나를 힐끗 보더니 다시 휴대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둘이 무슨 일 있었어? 애 얼굴이 맛이 갔던데.”
“그냥, 뭐…… 많이 안 좋아?”
“응.”
나는 휴대폰을 다시 꺼내 만지작댔다.
“걔 번호도 외웠냐?” N이 능청스레 묻고는 곰곰이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연락해 봐. 말끔히 정리하고 시작하는 것도 좋지.”
나는 현실로 돌아오고자 베개에 머리를 힘껏 파묻었다. 머리카락이 베갯잇에 사락거렸다. 양손을 깍지 껴 뒤통수 아래에 깔았다가 잠시 뒤 모로 돌아누웠다. 마음의 불편이 몸의 불편으로도 이어졌다. 협탁에 놓인 리모컨을 집어 TV를 켰다. 에로영화의 정사 씬이 높은 볼륨으로 터져 나왔다. 황급히 TV를 껐다. 옆방 투숙객들이 벽을 두드리며 낄낄거렸다.
모텔에는 나 말고도 장기 숙박을 하는 이웃들이 있었다. 나이대가 들쭉날쭉한 열 명 남짓의 남자들로, 같은 유니폼에 같은 승합차를 오르내리는 인부들이었다. 오다가다 들은 바로는 근처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모양이었다. 입들이 거칠어서 별로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방음이 좋지 못한 탓에 방에 있어도 여기저기서 섹스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복도에서는 소리들이 더 쟁쟁하게 울렸다. 거리도 형편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전봇대와 가로등 밑에는 쓰레기가 무더기로 쌓여 있었고, 종일 코를 찌르는 하수구 냄새 속에서 인간들은 거의 헐벗은 채로 다녔다. 이렇게 더럽고 음탕한 골목이 실제로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고 역겨웠고 편안했다. 입에 담은 적도 귀로 들은 적도 없는 상스러운 말들이, 생활이, 환경이 내면에 무시 못 할 파장을 일으켰다. 샌님새끼, 너는 뭐 다르냐고, 너도 저것들을 원하지 않느냐고 끊임없이 부추겼다. 지금까지 혐오해왔고 여전히 혐오하는 이 거리가 썩 마음에 든다는 아이러니. 나는 조명을 홍등으로 바꿨다. 주구장창 술을 마시고, 끼니를 아무렇게나 때우고, 매일 팝콘을 퍼먹으며 밤낮없이 성인채널을 틀어 놨다. 먹고 마시고 자위하고 생각을 버리고, 그래도 생각할 힘이 남았다면 살아오며 망친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끊어버린 관계들. 내가 떠나왔거나 나 혼자 맹렬하게 칼춤을 춰 떠나버릴 수밖에 없도록 만든 사람들. 부모님, 왓슨, 비광, 망원, 적시타, 후배들, 그리고 포니테일. 포니테일을 생각하면 비겁하게도 눈물이 흘렀고 미친 듯이 웃어버렸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사람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은 내가 병균이기 때문이다. 그래. 오히려 이상하고 상스럽고 음탕한 이 거리가 부서진 내면에는 훨씬 잘 어울렸다. 다분히 극적인 여지를 두고 나는 나의 망가짐을 연출하고 연기하고 믿었다.
홍등으로 벌건 천장을 응시하면서 드물게 현재에 기반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정말 이 여행에 동참해도 될까. 아직 확신이 없었다.
어느 날 오후, 일 층에서 팝콘을 푸는데 창구 쪽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일꾼들과 같은 유니폼을 입었지만 처음 보는 남자가 품이 큰 양복을 입은 사내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다른 일꾼들은 성가시다는 표정이었다.
“소장에게 말하쇼. 이딴 데 숙소 잡으면 다시는 일하러 안 온다고. 알았소?”
“알겠습니다. 이번 분기만 여기서 지내주세요. 다음에는 더 좋은 데로 찾아보겠습니다.”
사내가 쩔쩔맸다. 남자는 분이 덜 풀린 표정으로 돌아서더니 엘리베이터를 노려보고는 계단으로 올라갔다. 나는 그에게서 여전히 수리 중이라 써 붙여 놓은 엘리베이터로, 그리고 일꾼들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염병할, 유세 부리기는.” 일꾼 중 하나가 말했다.
“난 기술자다, 이런 치들하고는 급이 다르다, 이거지.” 다른 일꾼이 그렇게 말하고는 양복 입은 사내의 등을 툭 쳤다. “형씨, 신경 쓰지 마쇼.”
나는 반쯤 퍼 담은 팝콘을 다시 기계 안에 쏟아 붓고 종이봉지를 구겼다. 그리고 모텔을 나서서 더러운 골목을 지나 다른 동네로 향했다. 두어 번 들렀던 술집이 있었는데 손님이 많지 않고 조용해서 좋았다. 가게로 들어서니 사장이 의자에 올라서서 조명을 손보고 있었다.
“일찍 오셨네요.” 사장이 웃으며 말했다.
“좀 이따 다시 올까요?”
“아뇨, 이 테이블 빼고 편하신 데 앉으세요.”
그는 조명을 마저 손보고 내려와 의자를 닦았다. 나는 피시 앤 칩스와 생맥주를 시켰다. 음식 맛이 훌륭했다. 생선튀김은 간이 잘 되어 있어 따로 소스를 찍지 않아도 맛이 좋았다. 튀김들은 바삭하고 담백했으며 맥주도 기분이 상쾌해질 만큼 시원했다. 나는 생선튀김을 칠리소스에 푹 찍어 입에 넣었다. 혀를 통한 자극에만 충분히 신경을 쏟았다. 오로지 자극에 집중할 때만이 망가진 과거나 불안정한 미래에서 시선을 돌려 현재를 살 수 있었다. 이것이 옳은 짓인지는 생각지 않고. 사장이 소시지 한 덩이를 담은 접시를 내왔다.
“서비스예요.” 그가 소시지를 가위로 툭툭 잘라주었다.
“감사합니다. 음식들이 정말 맛있어요.”
“타지에서 오셨나 봐요?”
“네?”
“말투가 다르셔서.” 사장이 씩 웃었다.
“아, 네. 얼마 전에 이사 왔습니다.”
“그러시구나. 어디 사세요?”
나는 별 뜻 없이 걸어오면서 봤던 아파트의 이름을 댔다. 사장의 얼굴이 불길하게 밝아졌다.
“그래요? 저도 거기 사는데.”
좆됐다. 나는 아파트 벽면에 동 호수가 적혀있던 것을 떠올렸다. “정말요? 몇 동 사세요?”
“104동이요.”
“옆 동이네요.”
“차 있으세요?”
“아니요.”
“출근하시기 힘들겠어요. 교통편이 워낙 안 좋아서.”
출근? “그러게요. 얼른 차를 사야 하는데.”
“무슨 일 하세요?”
“학원에서 애들 가르쳐요. 오늘은 휴무라.”
기왕 시작한 거짓말이니 제법 빠르게 머리를 굴려 보려 했다. 무모해 보이는 그 여행이 정말 가능한 것인가 하는 마음으로. 하지만 사장이 싱겁게 나왔다.
“그러시구나. 그럼 느긋하게 있다 가세요.”
그는 씩 웃으며 가위를 거두고 주방으로 갔다. 김샜다. 그러나 맥주를 마시고 소시지를 먹는 동안 천천히 입가에 담백한 미소가 그려졌다. 기분이 나았다. 훨씬 좋았다. 오로지 재미만을 위해 적극적으로 거짓말한 적이 언제인지 까마득했다. 열여덟 살, 카니발에서 혼자 부잣집 자제인 척 굴었던 것을 떠올렸다. 일상에서 해왔던 거짓말들은 죄다 소극적이었다. 상황에 떠밀려 얼버무렸던 거짓말. 상대방의 추측이 틀렸음에도 그냥 웃으며 넘어가버려 결론적으로 거짓이 된 말. 별거 아니네, 나는 중얼거리며 맥주잔을 비웠다. 그리고 또 한잔 시켰다.
모텔로 돌아가는 길에 아까 고함을 치던 남자와 마주쳤다. 담배를 물고 나오던 그는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다. 휴대폰을 어깨와 귀 사이에 끼우고 담뱃불을 붙이며, 다음 세미나는 강사진이 좋으니 시간을 꼭 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정확히 보름이 지나자 N이 돌아온다고 연락했다. 처음 며칠 빼고는 환기도 잘 안 시킨 터라 얼른 반만 열리는 여닫이창을 열었다. TV 채널도 지상파로 돌려놓은 뒤 침대에 다리를 뻗고 앉아 담배를 피우며 맥주를 마셨다. N이 유리잔 두 개가 딸린 위스키를 사왔다. 우리는 온더록스 잔에 얼음 없이 위스키만 가득 부어서 마셨다. 금방 취기가 올랐다. 나는 내심 모두와의 연락은 물론 SNS마저 끊고는 조금 걱정했노라고 말했다.
“누가 실종신고라도 하지 않을까 했거든.”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근데 그런 일은 없네.”
“얼마 안 됐잖아. 왜? 찾는 사람이 없어서 섭섭해?”
“전혀. 너무 좋아.”
우리는 웃었다. N이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내밀었다.
“한도는 달에 이천이야. 여행 전까지 이걸 써.”
“어마어마한데.” 나는 카드를 집어 앞뒤로 살폈다. “이제 뭘 하면 돼?”
“오늘은 쉴 거야. 하고 싶은 거 있어?” N이 내가 쥔 카드를 눈짓하며 말했다.
“컵라면 먹어도 돼? 삼각김밥도.”
“지랄.”
N이 카드를 홱 집어 가더니 다시 내게 건네주고는 일단 나가자고 했다. 그는 나를 시내 양복점에 데리고 갔다. 벽면에 기성 양복들이 줄지어 걸려 있었다.
“양복? 취업하려고?”
“그냥 하나 골라봐. 기분 내는 거지.”
나는 매장을 죽 훑다가 가장 무난한 회색 양복을 골랐다. N이 마뜩찮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좀 더 과감한 게 필요해.”
다음 날 우리는 각각 쨍한 빨강과 노랑의 쓰리피스 정장을 입고 시내를 활보했다. 상가 유리창 앞에서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N에게는 꼭 맞았고 내게는 살짝 품이 컸지만 어색할 정도는 아니었다. 멋 부린 텔레토비들 같았다. 햇빛이 강렬한 날이라 차림이 더욱 눈에 띄었다. 나는 새 옷에 맞춰 저절로 자세가 꼿꼿해지는 것을 느꼈다. 명치 부근에서 고양감이 차올랐다. N도 비슷한 기분이었는지 걷다가 종종 발재간을 부렸다.
“신나네.” 그가 말했다.
나는 멈춰 서서 그보다 좀 더 길게 발재간을 부렸다. 춤과는 거리가 먼, 엉성한 스텝을 밟는 수준이었다. 그러자 N도 좀 더 길게 발을 놀렸고 곧 너 나 할 것 없이 막춤을 추기 시작했다. 떠오르는 음을 허밍으로 내뱉으며 이상한 꿈틀거림에 가까운 춤을 췄다. N도 정말 춤을 못 췄다. 우리의 모습은 청춘영화에서 볼 법한 자유에의 희열이라기보다 삼류영화 속 괴짜들의 기행에 가까웠다. 나는 관절들을 이상하게 꺾으며 점점 더 괴상한 춤사위를 만들어냈다. 우리의 길이 이상한 방향으로 향하리라는 예감이 들었고, 그에 맞게 약간은 돌아버려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바탕 춤판을 벌인 후에 N이 길 끝에 걸린 사진관 간판을 가리키며 기념사진이나 찍자고 했다. 젊은 사진사가 혼자 운영하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