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탐 장편소설 『TRICK OR TRIP』 24화

3부 「작당」 ②

by 윤아무개

“독사진이랑 투 샷 모두 찍어 주세요.” N이 말했다.

우리는 각자 세 가지 포즈로 독사진을 찍었다. 사진 찍히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데다 사진관에 온 것도 오랜만이라 나는 다소 엉성하고 어색했다. N은 제법 자연스러웠다. 사진사가 이제 둘이 함께 찍을 차례라고 했다.

“사진은 어디 쓰시나요? 보관용?” 앵글을 조정하던 사진사가 명랑하게 말했다.

“포스터랑 프로필 사진이에요. 연극 하거든요.” N이 말했다.

“배우님들이셨구나.” 사진사가 허리춤에 양손을 얹었다. “피팅까지 하고 오셨네요.”

따로 생각해 둔 포즈가 있냐는 질문에 N이 작은 목소리로 <데블스 에드버킷>을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사진사에게 스튜디오에 책상 높이의 탁자가 있는지 물었다. 사진사가 탁자와 의자를 마련해 주고 다시 앵글 뒤로 돌아갔다. 우리는 더블 캐스팅 컨셉으로 번갈아 찍었다. 내가 먼저 의자에 앉아 탁자에 깍지 낀 손을 올렸고, N이 내 뒤에 서서 어깨와 팔이 이어지는 부분을 감싸듯 양손을 가볍게 얹었다. 사진사가 카운트를 셀 때 나는 영화에 어울리는 심각하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곧 자리를 바꿔 내가 N의 뒤에 섰다.

N과 대기실 한쪽에서 믹스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 사진사가 최종 셀렉을 하자며 모니터 앞으로 불렀다. 사진사는 무슨 연극을 하느냐고 물었다. N이 말없이 나를 응시했다.

“찰스 데이먼이 쓴 <클라운스 오페라>요.” 나는 코 밑을 손가락으로 문지르고 대답했다. “광대인 두 친구가 공연을 하는 극중극 형식으로, 소통에서 비롯하는 불가피한 오해들이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을 보여주죠.”

“심오하네요. 두 분이 주인공이신가요?”

“이인극이에요.”

“그렇구나.” 사진사가 빙그레 미소 짓더니 날 보며 “친구 분이 편하신가 봐요.”라고 했다. 그는 내 독사진과 투 샷을 비교해 보여줬다. 확실히 독사진은 표정도 자세도 경직되어 있었지만 N과 함께 찍은 사진에서는 좀 더 편안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사진 속 내 표정을 보고는 충격을 받았다. <데블스 에드버킷>을 오마주한답시고 딴에는 근엄한 표정을 지었었는데, 실제로 촬영된 표정은 멍청하기 그지없었다. 긴장이 풀린 것과는 결이 달랐다. 눈에 초점이 없고 입가가 풀어진 등신 같은 표정이었다. 앉아있는 사진에서나 서 있는 사진에서나 똑같았다. 반면 N이 풍기는 아우라는 두 사진 모두 소름끼치도록 장엄했다. 사진사 뒤에 서 있던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눈앞으로 들어올려 N의 모습을 가려봤다. 그러자 귀신같이 진지한 표정을 지은 내 얼굴이 돌아왔다. 다시 손을 거두니 등신처럼 보였다. 마른침을 삼켰다. 내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사진사는 마음에 안 드냐고 물었다. 나는 아니라고 했다.

“사진 좋네요. 모두 유에스비에 담아 주시고 함께 찍은 건 두 장 모두 인화해 주세요.” N이 말했다. “사진 크기도 정할 수 있나요?”

“어떻게 해드릴까요?”

“명함 크기로 작게 제작될까요? 지갑에 넣어 다닐 수 있게.”

사진사가 웃으며 알겠다고 했다. “각각 두 장씩 뽑아드리면 되나요?”

“아뇨. 한 장씩이요.” N이 말했다.

우리는 인화된 사진을 각자 지갑에 챙겼다. 둘 다 본인이 의자에 앉아있는 사진을 택했다. 사진사가 공연 장소를 물어 아직 소극장을 알아보는 중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공연이 보고 싶다며 일정이 확정되면 알려달라고 말했다.

“배우님은 프로필 사진으로 쓰기에는 표정이 너무 경직되어 있는 것 같은데……” 사진사가 내게 말했다. “혹시 시간 나면 한 번 더 들르세요. 할인해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시간 내볼게요.”

우리는 사진관을 나섰다. 사진관이 보이지 않는 골목으로 꺾어 들어가자마자 N은 격하게 어깨동무를 했다.

“꽤 잘하는데? 재능이 있어.”

“뭐, 딱히 거짓말은 아니니까. 네 계획대로라면 발 닿는 데가 다 무대일 거잖아.”

N이 기분 좋게 내 어깨를 쥐고 앞장세워 걸었다.

“앞으로 준비할 게 많아. 거짓말도 요령과 습관을 들여야 해.”

나는 아까의 오싹했던 기분을 털어버리려 웃었다. 사진은 보이지 않도록 신분증 뒤에 꽂아두었다.

그날부로 우리는 지역 도서관에 다녔다. 명함에 적힌 직업들의 기초지식을 쌓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책을 적극적으로 탐독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필요 이상으로 열심히 공부했다. 온갖 책을 쌓아놓고 필요한 부분을 필기하는 동안 우리는 무언가 작당하고 있다는 쾌감에 젖었다. 밤에는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을 읽고 정리하며 다양한 직업군의 삶을 상상과 대화로 꾸려나갔다. 사실적이라고 평이 좋은 영화나 다큐멘터리도 참고자료였다. 유튜브에서도 각종 직업인들의 브이로그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N은 행동심리학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는 침대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한손에 행동심리학 관련 서적을 들고 일장연설을 펼쳤다.

“우리의 목적은 특정 직업인을 연기하는 게 아니라 특정 직업을 지닌 그 사람 자체가 되는 거야. 직업이 중요한 건 타인에게 자신을 소개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야. 그래서 명함이 필요한 거고. 하지만 인간의 정체성을 이루는 것은 직업뿐 아니라 개인의 기억, 사고방식, 습관, 성향, 취향, 자세 등 총체적인 요소들이야.”

나는 방바닥에 앉아 침대에 턱을 괴고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보일러를 돌려 바닥이 온돌방처럼 따뜻했다.

“그래서 그 모든 요소를 만들어내겠다고?”

“불가능하지 않지. 작가나 배우들이 하는 일과 다르지 않아.”

다른 방에서 색정어린 신음소리가 넘어왔다. 나는 아무것도 안 들리는 척 대화를 이어나갔다.

“작가라…… 안톤 체호프라는 러시아 작가는 인물노트를 만들었어. 작품 속 인물의 외양묘사와 성격, 버릇 등을 구체화시키면서 생생한 캐릭터를 만들어내기 위함이었대.”

“그거 괜찮네. 인물노트 한 권 마련해야겠다.”

벽 너머의 교성은 금세 절정으로 치달았다. 나는 이 상황을 은근히 즐겼다. 우리의 작당이 퇴폐적이고 더러운 곳에서 은밀히 추진되는 대단한 일처럼 여겨졌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활력인지 몰랐다. 사업할 때 느껴오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활력이었다.

N은 몇 차례고 가장 중요한 것을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직업적인 특징보다도 그 사람의 특징적인 기질과 기분을 설정하는 게 중요해.” 다른 사람이 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그 사람의 기질과 기분을 유지하고 그와 어울리는 얼굴 표정을 짓는 거였다, 그러면 나머지는 저절로 자리를 잡았다, 라는 리플리의 가르침에 기반한 말이었다. 우리는 인상 깊었던 많은 책과 영화에서 다양한 인물들의 특징을 따왔다. 카페나 술집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을 조용히 관찰하기도 했다. 옆 동네 술집에 N을 데려가 피시 앤 칩스를 먹던 날이었다.

“저 아저씨 뭐하는 사람일 거 같냐?”

N이 술집 구석자리에 앉은 중년의 남자 손님을 보며 물었다. 남자는 혼자였다. 지퍼를 반쯤 열어둔 갈색 털잠바 안에 파란 와이셔츠를 받쳐 입고 남색 정장바지에 갈색 구두를 신고 있었다. 테이블에는 생맥주 한 잔과 가장 싼 안주가, 빈 의자에는 검고 낡은 서류가방이 놓여 있었다.

“회사원이겠지. 사무직.”

“현장근무가 잦을 거야. 정장 재킷은 사무실 의자에 걸려 있겠지.”

“글쎄. 모두가 풀세트로 정장을 입고 다니진 않잖아.”

“오후 다섯 시에 술집에서 죽치는 사무원은 드물지. 구두가 흙먼지로 엉망이잖아. 현장 갔다가 일찍 끝나서 회사로 안 들어가고 바로 퇴근했을 거야.”

“반차를 썼을지도 모르지. 낮에 볼일 봤다가 술 한잔하러 오신 거고. 푸석푸석한 얼굴에 면도도 안 하신 걸 보니 자기관리에 소홀하신 모양인데, 그럼 구두에 묻은 흙먼지야 오래됐다 하더라도 이해가 가지.”

“아까 왼손 약지에 반지가 있더라고.”

“결혼하셨나 보네.”

“기러기 아빠일까?”

N이 술잔을 입에 가져다대며 남자 쪽으로 눈을 가늘게 떴다.

“연락 올 데가 있나본데? 아까부터 휴대폰을 켰다 껐다 하시네.”

“시간 확인하시는 건가.”

“시간 때우러 온 거 같긴 해. 맥주도 안주도 제일 싼 거에다가 거의 그대로인 거 보면.”

우리는 이런 식으로 낯모르는 이들의 삶을 추측했다. 셜록 홈즈의 추론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시험도 아닌데 틀리면 뭐 어떠냐고 N은 퍽 즐거워했다. 중요한 것은 타인의 겉모습에서 상상한 이미지를 흡수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펼쳐낸 상상의 나래는 명함 속 인물을 구체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처음에는 타인의 삶을 품평하는 것만 같아 내키지 않았었지만, 그런 마음은 곧 팽개쳐버렸다. 어차피 우리가 무슨 말을 해도 그들은 모르니까. 윤리를 지킨다는 것은 원래 조용한 일이라 티도 나지 않는다. 걸리지만 않는다면 누가 선을 넘나드는지 알 수 없다.

“휴무예요?” 사장이 생맥주 두 잔과 치킨을 내오며 물었다.

“네. 친구랑 한잔하려고요.”

내가 대답하며 N과 눈을 맞췄다. N이 능청스럽게 말을 받았다.

“단골집이라던데요. 잘 먹겠습니다.”

사장이 빈 맥주잔을 들고 돌아가자 녀석은 히죽거렸다.

“선수 쳤네? 그래서,” N이 포크를 테이블에 톡톡 치고 생선튀김과 감자튀김을 겹쳐 찍었다. “선생님은 무슨 일 하시죠?”

“정답. 선생님이야. 정확히는 학원 강사.”

“그래? 무슨 과목?”

“수학.”

“그치. 수학과 전공이니.” N은 능청스럽게 내 거짓말에 살을 붙였다. “너 대학생 때부터 가르치는 재주 좋아서 과외로 학비 다 벌었잖아.”

“그 재주로 초등학교 저학년 수학 가르치고 있어.”

“해 보니까 어때? 그런 대로 할 만하지?”

나는 그렇다는 뜻으로 눈짓하며 맥주를 마셨다. N은 음식을 우물거리다가 뭔가 생각이 난 듯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상대방이 전화를 받자 녀석은 빔 프로젝터와 스크린, 스피커를 찾아서 보내달라고 했다. 말투로 미루어볼 때 친구나 친한 사이 같았다. 그는 전화를 끊고 내게 스무 살 때 기분을 내보자며 웃었다.

“어디에 전화한 거야?”

“우리 짐 맡긴 곳.”

“짐 잘 도착했는지 확인도 안 했었네.”

“안전하게 잘 모셔뒀으니까 신경 쓰지 마.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배달시켜 줄게.”

그때 털잠바 아저씨가 다가와 혹시 불 좀 있느냐고 물었다. 집에 갈 참인지 가방까지 모두 챙긴 채였다. 나는 일회용 라이터를 건네며 돌려주지 않으셔도 된다고 했다. 그가 감사하다며 가게 밖으로 나갔다. 나는 자취방에 있던 짐들 중 굳이 가져올 만한 게 없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꼭 그 시절에서 건질 만한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F시를 떠날 때 챙긴 만년필과 비숍 모두 손에 없다는 게 문득 허전하게 느껴졌다.

“저 아저씨 계산은 했나?”

N이 포크 두 개로 생선튀김 한 덩이를 가르며 물었다. 희미하게 김이 올랐다.

“안 하셨어요. 우리 가게에 유일하게 외상 다는 손님이거든요.”

우리 얘기를 들었는지 사장이 구석자리 테이블을 정리하러 가며 대꾸했다.

“외상도 달아주세요?”

“원래는 안 되죠. 가게 열 때부터 오신 단골손님이라 친해졌는데 사정이 안 좋으신 것 같더라고요. 회사에서 부당해고 당하신 모양이에요. 가족들 볼 면목이 없다고 매일 출근하는 척 나와서 쏘다니다가 이따금 맥주 한잔하시고 집에 들어가는 거예요.”

“아하.” N이 눈짓하더니 속삭였다. “시간 때우러 온 건 맞네.”

나는 테이블에 팔을 얹고 맥주잔을 뜻 없이 돌렸다. 해고당했다고 그새 맥주 한잔 살 돈이 없을 리가. 외상 얘기를 먼저 꺼낸 사람은 사장일 것이다. 썩 냉정한 사람 같지는 않으니까. 동정이지. 맥주 한잔 마실 돈도 없는, 그런 인간. 나는 가게 유리창 너머로 남자를 쳐다보며, 술잔을 입에 대고 맥주가 목젖을 천천히 넘어가는 것을 느꼈다. 남자는 담뱃불을 붙이고 하늘을 향해 담배연기를 뿜어냈다.

“무슨 생각해?”

N이 천진난만하게 생선튀김을 씹다가 물었다. 나는 맥주로 입가심하는 녀석을 보고 희미하게 웃었다.

“너 없었으면 난 어떻게 됐을까.”

N이 내 머리 위로 눈길을 올리고 잠시 생각했다. “재미없었겠지?”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맥주잔을 들었다. 우리는 건배했다. 녀석을 따라 어디든 떠나고 싶어졌다. 최대한 빨리. 지나온 시절에서 건져올 게 없다는 것은 이미 뿌리가 잘린 것과 진배없었다. N과의 여행은 다시금 어디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만들어줄 것이고, 뿌리 잘린 꽃은 금방 죽겠지만, 상관없다. 나는 순간만을 살아갈 테니까.

그날 밤 우리는 모텔에서 본격적으로 여행 계획을 세웠다. 옷을 사는 것이 여행 준비의 시작이었다. N은 명함 속 인물들의 패션을 세심하게 스케치했다.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몸의 균형이 달라져. 사람이 달라지려면 옷도 달라져야 해.”

옷을 새로 사고 말버릇을 고치고, 리플리의 말대로 그들의 기분과 기질을 상상하고 유지하면서 그에 걸맞은 표정을 연습하고, 허구의 과거사를 짓고, 다양한 직업군의 기본적인 전문지식과 그들의 삶을 전공서적과 에세이, 인터뷰 등을 통해 공부하고 외웠다. 아니, 몸에 익혔다. 우리는 습자지처럼 온전하게 명함 속 인물들을 빨아들였다.

“준비한 모든 걸 다 써먹으려들면 안 돼.” N이 명함 한 장을 꺼내들며 말했다. “되레 거짓말인 게 들통 날 수 있으니까. 정작 우리가 준비한 건 한 마디도 못 할지 몰라. 어쩌면 말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지. 그래도 이런 철두철미한 준비가 우리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줄 거야.”

우리는 모텔에서 틈틈이 새로운 인물을 연기하며 처음 만나는 사이처럼 굴었다. 즉흥극을 벌이는 매순간 뇌 한쪽에서 긴장과 쾌감이 폭죽처럼 연달아 터졌다. N은 소름 돋을 만큼 디테일에 신경을 썼다. 명함 속 인물들의 취향과 성격을 제각기 다르게 잡고는 옷은 물론이거니와 생활패턴, 자주 먹는 음식, 몸이 가질 수 있는 모든 버릇을 바꿨다. 목소리와 억양, 말버릇도 인물노트에 꼼꼼하게 기록해 익혔다. 나는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다. 공부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각각의 삶에 젖은 나를 구체적으로 상상할 뿐이었다. N이 배역에 따라 완전히 다른 모습을 연기하는 배우라면 나는 어떤 배역이든 자신 본연의 모습에서 뻗어나가는 배우였다. 우리는 같은 모텔에서 몇 주간 <리플리>를 돌려보며 여행준비를 마치고 이윽고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