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탐 장편소설 『TRICK OR TRIP』 22화

3부 「TRICK OR TRIP」 ②

by 윤아무개

“나, 어디로 가?”

N의 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는 문자 메시지로 주소 두 군데를 보내줄 테니 짐은 첫 번째 주소로 보내고 나는 두 번째 주소로 오라고 말했다. 짐은 지인이 받을 것이라고 했다.

“언제 가면 되는데?”

“이번 주 안에 언제든. 그때 보자.”

통화를 끊자 N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첫 번째 주소는 시외였고 두 번째 주소는 시내였다. 휴대폰 화면을 끄고 고개를 들었다. 새벽에 팽개친 보스턴백이 발 앞에 동그마니 놓여 있었다. 뒤통수를 긁적였다. 몸을 숙여 가방을 끌어당겼다. 보스턴백에 팔꿈치를 얹고 가까운 이삿짐센터에 전화를 걸어 일정을 예약했다. 그리고 국밥과 소주를 배달시켰다.

이틀 후 오전, 용달차가 짐을 모두 실어갔다. 나는 보스턴백만 달랑 들고 시내버스에 올라탔다. 뒤쪽에 빈 좌석이 여럿 있어 들어가 앉았다. 앞에 앉은 승객들의 고개가 버스의 진동에 맞춰 가볍게 흔들거렸다. 공연히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창가로 비스듬히 들어오는 햇빛이 판단력을 잃은 나를 비췄다. 눈을 감고 창틀에 머리를 기댔다. 눈두덩으로 스며드는 햇빛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버스 정류장에 내려 동네 안쪽으로 들어갔다. 도로가 넓고 하늘이 탁 트여 있는 동네였다. 휴대폰으로 지도를 확인했다. 목적지인 두 번째 주소는 지도상에 건물명이 뜨지 않았다. 일단 걸음을 옮겼다. 쾌청하고 추운 거리에 내 발소리만 타박타박 울렸다. 완만한 오르막길을 올라 골목으로 꺾어 들어간 뒤 빌라 두 채와 식당 한 곳을 지나쳤다. 목적지에 위치한 건물은 허름한 단층의 인쇄소였다. 새시 미닫이문의 유리창에 업체 이름이 테이핑 돼있었다. 나는 고개를 비뚜름하게 꺾고서 건물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보스턴백을 왼손에 바꿔들고 지도를 한 번 더 확인한 뒤 N에게 전화를 걸었다.

“왔어?” N이 전화를 받았다.

“도착한 것 같은데, 여기 맞아?”

나는 인쇄소 이름을 댔다. 곧이어 미닫이문이 요란하게 열리더니 N이 걸어 나왔다. 구름 한 점 없는 시퍼런 하늘과 허름한 건물, 그리고 멀끔한 N이 묘한 부조화를 일으켰다.

“들어와.”

인쇄소에는 먼지 냄새와 함께 축농 같은 고요가 고여 있었다. 컴퓨터 여섯 대와 대형 인쇄기 네 대, 누런 더께가 앉은 브라운관 텔레비전과 닳고 닳아 가죽이 해진 기역자형 소파가 있었다. 나는 찝찝한 표정으로 보스턴백을 슬그머니 소파 한쪽에 두었다. 소파 앞 테이블에는 군데군데 노란테이프가 발라져 있었다.

“어딘지 알아보겠어?”

N의 질문에 나는 생뚱맞은 표정을 지었다.

“내가 알아볼 수 있는 데야? 처음 와보는데. 이 동네도 처음이고.”

“네 친구 가게야.” N이 말했다. 나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정확히는 적시타라는 친구 부모님의 가게지. 인쇄소 운영하셨다며.”

순간 출입문을 홱 돌아보다 목에 담이 걸릴 뻔했다. 몇 달 동안 가출한 영혼이 몸에 빨려 들어온 것처럼 정신이 번뜩 들었다. 다시 N을 봤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네가 예전에 술 먹고 얘기해 줬잖아. 기억 안 나?”

“내가?” 나는 출입문을 다시 돌아봤다. 당장이라도 적시타가 나타날 것 같았다. “그런데 네가 여기 왜 있어? 나는 왜 불렀고?”

“여기 내가 인수했어.”

머리가 댕, 하고 울렸다. 그를 빤히 보다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왜? 아니, 무슨 수로? 여긴 도대체 어떻게 찾았어?”

“하나씩 물어.” N이 웃으면서 컴퓨터 책상의 의자를 빼 앉았다. “너랑 같이 창업했던 친구잖아. 미안하기도 하고 인쇄할 것도 많고 해서 이참에 통째로 인수했지. 너도 마음 불편했잖아. 값은 톡톡히 치렀으니까 걱정하지 마.”

“걔를…… 걜 만났어?”

“부모님을 뵈었지.”

나는 입을 벌리고 그를 쳐다보다가 뒷목을 주물렀다. 얼빠진 기분이었다.

“어쩌려고 인수를 했어? 뭘 할 건데?”

“명함이 필요했지. 정확히는 명함을 만들 일.”

“그럼 발주를 넣으면 되지, 무턱대고 인수를 해?”

N이 씩 웃으며 내 어깨를 토닥였다. 그리고는 소파에 앉히려는 듯 부드럽게 밀었다.

“시세보다 더 쳐줬어. 네가 상상도 못할 정도로. 사장님도 만족했고.”

나는 소파에 주저앉아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N의 뻔뻔하고 장난기 어린 말투에 혼란스러웠다. 손가락으로 눈두덩을 지그시 누른 뒤 다시 N을 봤다.

“인수까지 한 이유가 뭐야? 명함 사업이라도 할 셈이야?”

“사업은 무슨. 네 친구니까 그렇게까지 한 거지.”

“그러니까,”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져 말을 끊었다. 애써 진정했다. “돈은 어디서 났어? 아버지께서 물려주신 거야?”

“그런 셈이지. 회사는 어머니가 물려받아서 전문경영인을 세웠어.” N이 담배를 피워 물고 내게도 한 개비 권했다. “나도 지분이 있으니까 주주로서의 권리는 행사할 수 있겠지만, 일개 주주인 거지.”

“일개 대주주겠지.”

내가 담배를 건네받으며 대꾸하자 N이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담뱃불을 붙였다.

“아버지가 원래 가지고 계셨던 재산도 전부 어머니 몫으로 돌렸고.”

“그럼 무슨 돈으로 인수한 거야?”

“아버지 생명보험금. 한 수십억쯤 들어왔어.” N이 책상 뒤쪽 소형 냉장고에서 하이네켄 한 병을 꺼내 내게 까딱였다. “줄까?”

“응.”

“돈?”

“술!”

N이 웃으며 하이네켄 한 병을 더 꺼내 건넸다. 수십억? 원래 보험금이 그렇게나 되나? 물어보기도 뭐했다. 라이터로 병뚜껑을 따려는데 자꾸만 손이 헛나갔다. 뒤엉킨 생각들이 담쟁이덩굴처럼 뻗어나갔다. 적시타의 인쇄소를 인수할 작정이었다면 나와 상의 정도는 할 수 있는 일 아니었나? N은 나 대신 배상이라도 해 준 것 마냥 굴었지만 이유를 막론하고 그의 행동은 나에게 죄책감만 가해줄 뿐이었다. 그러나 이런 분노는 입 밖으로 꺼내기 민망했다. 제 돈 제멋대로 쓰겠다는데. N이 다가와 내 맥주병을 대신 따서 건넸다.

“그래도 성깔 살아있는 거 보니 마음 놓이네. 괜히 걱정했어.”

나는 맥주병을 건네받으며 그를 바라봤다. 불현듯 N의 아버지의 장례식에 가지 않았던 것, 아버지를 잃은 그에게 연락 한번 하지 않았던 일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N이 선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와서 어색해지면 진짜 어이없는 거다?”

N이 내 표정을 살피더니 농담처럼 덧붙였다. 그가 나를 배려해 먼저 화제를 돌린 것이었다. N은 맥주를 마시며 가까운 책상에 앉았다. 나도 멋쩍음을 숨기며 맥주를 병나발 불었다.

“근데 갑자기 명함은 왜 뽑아? 취업했어?” 잠시 후 내가 물었다.

“취업은 무슨. 너랑 놀려고.” N이 담배를 길게 한 모금 빨고 연기를 천천히 뱉었다. “재밌는 생각이 났거든.”

나는 그를 빤히 쳐다봤다. N도 내 눈을 피하지 않고 눈썹을 한번 올렸다가 내렸다.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제 그럴 시간 없어. 적어도 나는.”

“그런 분이 몇 달을 자취방에 처박혀 있었어?”

할 말이 없었다. N은 고등학생 때 자신과 함께 간 파티를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딱 십 년 전의 일이었다.

“그걸 우리끼리 다시 즐기는 거야. 삼십대를 앞두고 벌이는 마지막 카니발. 필요한 건 내가 다 댈 테니까 넌 몸만 오면 돼.”

그때는 나의 사고가 외곬으로 흐른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나는 그러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며 당장 자리를 박차고 F시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본가에서 빨래와 청소를 하고 이력서를 쓰며 부모님의 눈총을 견딜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길을 방법이라 할 수 있을까. 방법이란 삶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인데, 사업이 망해 본가로 돌아가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밟아야 할 수순에 불과했다. 하지만 N은 여느 때처럼 또 하나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었다. 그는 말을 가볍게 할 줄 알았다. 가벼우면서도 심지가 곧은 말. 청자가 느낄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신뢰감은 높이는 말투와 목소리. 당장 살 길을 갈구하는 나의 마음 역시 그의 말에 넘어가도록 덩달아 부추기고 있었다.

“좋아.” 내가 말했다.

그러나 N이 제안한 방법 역시 내게 주어진 유일한 길, 단 하나의 수순이 아니었을까. 망가진 사람에게는 다소 비뚤고 괴상한 길이 자신이 갈 수 있는 유일한 길로 보이기도 한다. 허나 당시에는 생각이 거기까지 닿지 못했다. 나는 당장 무얼 해야 하냐고 물었다.

“명함 제작 예약자들 연락처야.” N이 책상에서 서류 몇 장을 추려 건넸다. “급하게 문을 닫게 돼서 예약한 명함들 제작이 불가하다, 선불 고객들은 따로 연락을 주면 장부를 확인한 뒤 환불하겠다, 뭐 그런 얘기를 형식적으로 잘 써서 문자 메시지로 보내 주면 돼. 바로 시작하자.”

서류에 적힌 예약자들의 신상정보를 훑었다. 총 마흔세 명이었고 선불로 입금한 사람이 스물일곱 명이었다. N은 컴퓨터를 켜서 다른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낮은 탁자에 종이 한 장을 깔고 몸을 숙여 글을 썼다. 몇 번 소리 내어 읽으며 고친 뒤 문자 메시지를 작성해 일괄 전송했다. N은 계좌에 돈을 충분히 넣어뒀으니 환불 작업까지 마쳐달라고 했다. 연락이 오는 순서대로 환불을 진행하던 중에 누군가 인쇄소 문을 거세게 두들겼다. 나는 휴대폰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얼어붙었다. 네에, 하고 N이 출입문을 향해 갔다. 나는 마른 입술을 혀로 축이며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N이 배달음식 봉투를 들고 들어왔다.

“수고했어. 먹으면서 좀 쉬어. 나머지는 연락 오는 대로 처리해 주고.”

나는 적시타가 찾아온 게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N은 내게 초밥 한 세트를 꺼내주고 자리로 돌아갔다. 그는 자기 몫의 초밥을 책상 구석에 밀어 놓고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일회용 나무젓가락을 들고 그의 뒤로 갔다. 디자인 프로그램에 명함이 죽 띄워져 있었다. 전부 완성된 형태로, 당장 인쇄한대도 손색없어 보였다.

“네가 만든 거야?”

“그럴 리가.”

나는 일회용 나무젓가락을 양손으로 돌돌 돌려 떼어내면서 N이 명함들을 손보는 것을 지켜봤다. 기존의 명함에서 전화번호를 몇 자리 바꾸고, 이름도 한 글자씩 바꾸고, 주소도 가상의 주소로 바꿨다. 뭐하는 거냐고 묻자 N은 필요한 일이라면서 의자바퀴를 힘껏 굴려 뒤쪽에 있는 책상으로 반 바퀴 돌아 도착했다. 그는 컴퓨터를 켜며 내게 같이 하자고 했다.

“쉬라며.” 내가 툴툴거렸다.

“푹 쉬었을 텐데. 몸에 곰팡이 안 슬었어?”

“개새끼.”

나는 초밥을 책상에 가져와 앉았다. 간단한 설명을 들은 뒤 뻐근한 목을 풀고서 작업을 시작했다. 그때까지 나는 녀석의 계획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인쇄기를 돌릴 즈음에는 해가 완전히 진 뒤였다. 어디에 쓰일지 모르는 여든세 명의 명함이 인쇄기에서 쏟아져 나왔다. 철부지 같지만 그때부터 나는 조금씩 신이 나기 시작했다. 인생 종친 상황에도 신난다는 게 신기했고 그 기분을 즐겼다. 홀린 듯 인쇄기를 바라보고 있는데 N이 내 어깨를 툭 잡았다.

“소리 너무 좋지 않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계의 규칙적인 작동음이 처음에는 질서에서 비롯한 모종의 안정감을, 나중에는 묘한 기대감을 자극했다. 다가올 나날들의 카운트다운처럼 들리는 그 소리가 두렵다기보다 두근거렸다. 인쇄된 종이 한 장을 집었다. 기분 좋게 따끈했다. 우리는 명함을 다 뽑고서도 인쇄기 소리를 들으려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인쇄했다. 밤늦도록 돌아가는 인쇄기 곁에서 맥주를 마셨다. 나는 이제 이야기해 달라고 했다. 명함은 왜 뽑았으며 우리는 이제 무얼 할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