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청년 누아르」 ②
“무슨 생각해?” N이 물었다.
나는 잠시 눈을 깜박이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대답했다.
엘리베이터가 일 층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자 정장 차림의 호텔 직원과 공구함을 든 직원이 서 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내리길 기다렸다가 엘리베이터에 탔다. 실링팬 고치려나 보네, 내가 말했고, 그렇겠지, N이 싱겁게 대꾸했다. 우리는 로비를 지나 호텔 앞에 대기하고 있는 콜택시에 탔다. 택시는 번화가를 빠져나가 큰 강을 가로지르는 대교 위를 달렸다. 조금 전 호텔 VIP 남자의 방에서 본 강이리라 생각했다. 문득 호텔 측에서 그에게 다른 방을 내줬을지 궁금해졌다.
“호텔에서 여관으로 가시네요?”
택시기사가 말을 걸었다. 네비게이션에 우리가 목적지로 설정해 둔 변두리 여관 이름이 떠 있었다. 나는 호텔 식당에서 저녁 약속이 있었다고 둘러댔다. 이미 저녁시간을 훌쩍 넘긴 때였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손님들도 호텔에서 주무시지. 부지런히 알아보면 적당한 가격에 좋은 방 많아요.”
“네에.”
나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택시기사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사람이 게으르면 돈은 돈대로 쓰고 손해만 보더라고요. 세상 이치가 참.”
택시는 대교를 지나 한적한 도로를 달렸다. 야경 불빛이 확연히 줄었다. 어떤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타이어 유통업체 건물이 대문짝만 한 간판을 달고 도로를 굽어 살피고 있었다. 택시는 도시 외곽으로 빠져나갔다.
“무진장 게을러도 될 만큼 돈이 많으면 되겠네.”
N이 엉덩이를 시트 가장자리까지 밀어내 누우며 말했다.
“어유, 모르시는 말씀이에요.” 택시기사가 겸연쩍은 말투로 대답했다. “진짜 부자들이 얼마나 부지런한데요. 그 사람들한테는 시간이 돈이거든요. 돈 한 푼, 일 분 일 초 허투루 쓰지 않아요. 그러지 않으면 재산을 불리기는커녕 유지하기도 쉽지 않거든요.”
우리는 대꾸하지 않았다. 나는 창밖만 보고 있었다. 낮은 산을 끼고 도는 도로를 따라 택시가 유연하게 커브를 틀었다.
“잘 아시네. 근데 왜 아직도 택시나 몰고 계실까.” N이 뒤늦게 대꾸했다.
나는 녀석을 쳐다봤다. 의자에 드러눕듯 앉아서 다리를 달달 떨며 조롱하는 꼴이 아직 이서진 행세를 하는 모양이었다. 택시기사는 룸미러를 힐끔거리더니 말없이 운전했다. N이 몸을 벌떡 일으켜 조수석 헤드를 껴안고 택시기사에게 얼굴을 디밀었다.
“아, 혹시 이미 부자이신가? 택시 몰기는 취미고? 서민 체험 뭐 그런 거예요?”
나는 무릎으로 N의 무릎을 맞부딪치며 그만하라고 눈짓했다. 그게 무슨 소리냐는 택시기사의 대꾸에 긴장과 분노가 섞여 있었다. N은 차를 세우라고 했다.
“안 들려요? 차 세우시라고.”
택시가 멈추고 택시기사가 미터기를 껐다. 17,800원. 택시 예약 어플리케이션과 연동된 내 계좌에서 돈이 빠져나갔다. N은 오만 원짜리 지폐 여러 장을 콘솔박스 위에 탁 내려놓았다. “부자 되세요.” 녀석이 차에서 내려 문을 쾅 닫았다. 나도 반대쪽으로 내렸다.
“거지새끼 말 존나 많네.”
N이 멀어져가는 택시 뒤꽁무니에 대고 침을 뱉었다. 차 소리가 멀어지고 사위가 잠잠해졌을 때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녀석에게 다가섰다.
“그렇게까지 해야 해?”
“뭘?”
“애먼 사람한테 무안 줄 필요 있냐고.”
“지랄.” N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거지새끼들 꼴값 떠는 걸 봐줘야 해? 이 정도면 예의 차린 거야.”
“조용히 넘어가도 되잖아. 괜히 문제 일으켰다가 우리만 손해야.”
“무례한 건 저 인간이 먼저였잖아. 존댓말로 씨불인다고 다 매너 있는 대화냐?”
“이서진이 아니라 N, 너한테 하는 말이야.” 나는 뒤통수를 감싸 쥐고 살짝 돌아섰다가 그에게로 다시 따지듯 손을 뻗었다. “왜 이렇게까지 해? 여기 다른 사람 있어? 나까지 속일 셈이야?”
녀석이 나를 빤히 보다 입을 열었다.
“너야말로 왜 이렇게 흥분하는데?”
N이다, 라는 생각에 소름이 끼쳤다. 아주 미묘하게 달라진 톤이지만 그가 N으로서 이야기한다는 것이 단번에 느껴졌다. 준비기간을 비롯한 며칠 동안 N이 미묘하게 비틀어 내왔던 서진의 목소리에 나까지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모종의 압도감에 말을 잃었다.
“택시기사한테 무례하게 군 것 때문에 그래?” 그가 차분하고 냉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서진 입장에서는 그 사람이 먼저 무례했어. 서진은 그걸 참을 만한 위인이 아니고.”
“이서진 행세는 호텔에서 끝내도 됐잖아. 속일 만큼 속이고 놀 만큼 놀지 않았어?”
“야.” N이 내게 한발 다가섰다. 그는 고개를 숙였다가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나를 냉정하게 노려봤다. “난 아무도 속이지 않아. 나 자신을 제외하고는. 나를 속이는 것 역시 여행을 준비하는 동안만이고. 이서진은 호텔에서나 택시에서나 그저 이서진답게 행동했을 뿐이야. 형철이한테도 마찬가지고.”
차 한 대가 빠르게 우리 곁을 지나쳤다. 나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럼 언제 끝내는지 확실히 알려줘. 매번 네가 내키는 대로 하니까 나도 감을 못 잡잖아.”
“네가 감을 왜 잡아야 하는데?” N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목소리 톤을 높였다. “뭐, 너는 아직 다른 사람 노릇하는데 내가 N으로 돌아오면 무안할까 봐 그러는 거야?”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러니까…… 그러게, 왜 감을 잡아야 하지? 적당한 대꾸를 찾기 전에 N이 다시 말을 이었다.
“애초에 여행은 일박이일이야. 그러니까 최소 일박이일 동안은 다른 사람으로 산다는 거지.” N이 손목시계를 확인하더니 양손을 들며 어깨를 으쓱했다. “네가 원하면 몇 시간 더 해도 되고. 내가 적당히 눈치 보며 맞출게.”
“나 말고 네가 원하면? 네가 더 하고 싶으면 알려줄 거야?”
“뭐가 걱정이야?” N이 담배를 꺼내 한 개비 건넸다. 내가 못마땅하게 담배를 물자 녀석이 불을 붙여 주며 말을 이었다. “이 여행은 내가 제안했고 네가 동의해 줘서 가능한 거야. 비위를 맞춰도 내가 네 비위를 맞추는 게 맞지. 안 그래?”
“지랄.”
녀석의 장난스러운 미소에 나도 헛웃음을 쳤다.
“넌 생각이 너무 많아.” N도 담배를 피워 물었다. “일박이일 정도는 제발 그냥 즐겨. 네가 나보다 여행에 더 몰입하기 좋잖아.”
그가 내 어깨를 감싸듯 툭툭 치더니 길을 향해 손짓했다. 우리는 함께 걸었다. 나는 어쩌면 그간 그와 내가 느낀 기쁨의 결이 다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가상의 인물을 연기하는 데서 기쁨을 얻은 반면 그는 다른 사람으로 사는 데서 기쁨을 느꼈다. 그것은 엄연히 달랐다. 중요한 것은 N은 그가 원하는 만큼 온전히 다른 사람으로 살 수만은 없었다는 점이다. 여행 일정 동안에도 모종의, 짐작컨대 자금 관리나 그의 개인적인 업무들에 관한 연락이 종종 오는 모양이었다. 그가 이 여행에 얼마나 공들이는지, 역할에 몰입하며 얼마나 즐거워하는지 아는 입장에서는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나도 그의 업무를 돕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글쎄, 나 따위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한 시간쯤 걸어 여관에 도착했다. 내가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먼저 씻었던 N이 침대에서 찐 감자 한 소쿠리를 끼고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여관 주인이 야식으로 먹으라며 줬다고 했다. 나는 낡은 냉장고에서 맥주 두 캔을 꺼냈다. N이 맥주를 받아들더니 장난기 어린 얼굴로 TV를 가리켰다. 맛집을 소개하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F시 수산시장 근처의 한 굴국밥 집을 소개하고 있었다. 대식가로 유명한 코미디언이 굴국밥을 한술 크게 떠 입 안 가득 씹으며 힘겹게 열기를 뿜어냈다.
“저 집 알아?”
“아니.” 나는 바닥에 앉으며 대답했다. 목덜미에 걸친 수건을 빼서 발을 감싸 마사지하듯 주물렀다. 발이 부은 느낌이었다.
“다음엔 F시도 한번 갈까?”
나는 발을 주무르며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미친놈, 하고 중얼거렸다.
“어차피 F시에 우리 아는 애들도 거의 안 남아 있을걸.” N이 말했다.
“그러니까 더더욱 갈 필요 없지. 거기에 뭐 볼 게 있다고.”
“너도 안 간 지 꽤 됐잖아. 그립지 않아?”
“그리울 것도 많다.”
나는 일어나 수건을 욕실 문 옆에 던져놓고 손을 씻었다. 방으로 돌아가자 N이 내 몫의 캔맥주를 따서 찐 감자 한 알과 함께 건넸다. 바닥에 앉아 감자를 한입 베어 물고 천천히 씹어 삼켰다. 먹기 좋게 따뜻했다. TV의 코미디언은 이제 생굴을 먹고 있었다. 굴이 잔뜩 쌓인 접시가 클로즈업으로 담기자 나는 직접 비린내를 맡은 듯 속이 역했다. 다음 맛집을 소개하려는지 장면은 빠르게 전환되어 F시 도심의 번화가를 비췄다. 드론 촬영으로 부감한 화면 구석에 대관람차가 돌아가는 백화점 옥상이 잠깐 잡혔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하고 N이 운을 뗐다.
“나한테 F시는 어정쩡한 곳이 아니라 깡촌이었어. 네가 예전에 F시의 어정쩡함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사실 잘 모르겠더라고.” 그는 멋쩍게 웃었다.
“못 알아먹는 눈치긴 했어.” 나는 시큰둥하게 대꾸하고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N을 쳐다보며 웃었다. “서울놈한테야 서울 말고는 다 깡촌이겠지.”
내가 이야기한 어정쩡함은 사실 상동과 하동에 국한한 이야기였다. 산업도시와 해안도시의 광휘에 걸맞지 않은 외곽의 조그마한 촌구석 동네. 그러나 이제 와서 N한테 그것을 찬찬히 설명하는 게 무슨 소용일까 싶었다.
“근데 네가 어정쩡함을 혐오한 건 충분히 이해했다.” N의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나른하게 들렸다. “나도 그런 어정쩡함이 싫었거든. 어정쩡한 가난, 어정쩡한 부, 어정쩡한 폭력, 어정쩡한 재능, 어정쩡한 불행, 어정쩡한 인연…….”
“같은 걸 싫어하니 친구가 됐지.”
우리는 건배했다.
“너나 나나 가장 높이 날 게 아니라면 한없이 밑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게 성미에 맞아.”
N은 그렇게 말하고는 침대 헤드에 조금 더 기대앉아 맥주를 홀짝였다. 시간이 갈수록 녀석은 점점 더 알 수 없는 사람이 되어갔다. 매번 다른 사람이 되는 여행 중에는 묘한 동료애를 느끼기도 했지만 그의 과한 몰입에 외려 거리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N은 내 마음을 귀신같이 알아챘다. 그는 우리가 여전히 친구이고 자신 또한 여전하다는 것을 확인시키며 나를 달랬다. 따뜻하고 포슬포슬한 감자와 함께 F시에 대한 환멸과 N에게서 느끼는 친밀감, 나의 무능력함을 곱씹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시외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사흘간의 자유시간을 가질 차례였다. 그간 자유시간의 행선지를 서로에게 공유한 적은 없었다.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문자메시지를 확인하던 N이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일 있어?”
“그러게. 무슨 일이 생겼네.” N이 골치 아프다는 듯 대답했다. “혹시 특별히 가야하는 데 있어?”
나는 딱히 없다고 했다. N이 내게 문자 메시지를 한 통 보냈다.
“시간 괜찮으면 여기 가서 대포폰 두 개만 받아 주라. 사장한테는 내가 말해놓을 테니까 알아서 잘 처리해 줄 거야.”
주소가 눈에 익었다. “여기 우리 짐 맡긴 데 아니야? 뽀리는?”
뽀리는 우리의 퀵 배달을 전담하는 친구였다.
“무슨 일이 생겼는지 배달을 못 한다네.”
“근데 대포폰은 왜?”
“여행 다니면서 우리 폰 쓰는 게 계속 찝찝했거든. 가는 김에 궁금해하던 짐들도 확인해 보고. 고맙다, 부탁 좀 할게.”
N이 사무적인 미소를 지었다. 나는 알았다고 했다. 승강장으로 가는 N을 배웅한 뒤 목적지로 가는 가장 빠른 차표를 끊었다.
N이 준 주소지는 사 층짜리 종합상가에 위치한 택배회사였다. 정문 앞 주차장에 여덟 대의 택배차량이 서 있었다. 계단을 올라 정문으로 들어갔다. 오래된 건물 특유의 먼지 냄새가 풍겨왔다. 내부는 휑했고 벽면의 페인트칠도 군데군데 벗겨져 있었다. 일 층 로비 게시판에는 빛바랜 전단지와 몇 년 전 일자가 찍힌 공고문이 압정에 간신히 매달려 있었다. 일 층에 중국집과 미용실이 있었지만 영업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폐건물에 감돌 만한 적막이 깃들었다. 건물안내도를 보니 이층부터 사층까지 전부 택배회사 사무실이었다. 물품 분류에 따라 공간을 나눈 모양이었다. 사장실과 회의실은 사 층에 있었다. 위쪽에서 누군가가 계단을 내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내 휴대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형님, 어디쯤이세요?”
뽀리의 목소리가 휴대폰과 머리 위에서 동시에 들렸다.
“아마…… 너랑 같은 곳에 있는 것 같은데.”
“벌써 도착하셨어요?”
뽀리가 계단을 마구 뛰어내려와 나를 반겼다. 전화를 끊었다. 그는 녹색으로 염색한 머리를 정리하며 환하게 웃었다.
“네가 왜 여기 있어?”
“여기서 일하니까요. 형님 오신다는 얘기 듣고 마중 나가던 참이었는데.”
“그럴 거였으면 물건 들고 일찍 터미널로 나오지.”
“에이, 또 까칠하시긴.” 그가 능청스럽게 웃었다. “오신 김에 저 일하는 데도 둘러보고 좋잖아요.”
“내가 네 일터를 왜 둘러봐?” 나도 웃으며 바깥 주차장을 고갯짓으로 가리켰다. “배달 못 한다면서? 무슨 일 있었어?”
“아, 며칠 전에 어떤 놈이 제 오토바이를 훔쳐갔거든요. 오늘 아침에 찾았는데 바퀴 두 쪽 다 펑크 나서 풀숲에 버려져 있더라고요. 바퀴만 퍼진 게 아닌 거 같아서 수리 맡겨 놨어요.”
“그건 또 무슨 미친놈 짓이래. 회사에 다른 오토바이 없어?”
“다른 애들도 배달 나가야죠.” 뽀리가 계단을 가리켰다. “아무튼 지금 큰형님께서 일 보는 중이시긴 한데 들어와서 기다리시랍니다.”
“큰형님?”
“사장님이요.”
“네가 건달이냐?”
뽀리가 헤헤거리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건물 안쪽에 위치한 계단은 벽면을 따라 사각의 소용돌이 모양으로 나 있었다. 난간 사이가 지하까지 뻥 뚫려있었다. 뽀리는 계단을 오르는 내내 쉬지 않고 종알거렸지만 쓸 만한 정보는 없었다. 사 층에서 모퉁이를 돌아 사장실을 향해 갔다. 검은 정장을 입은 떡대 두 명이 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진짜 건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뽀리를 힐긋거리더니 내게도 허리 숙여 인사하고 문을 열었다.
꽉 막힌 신음소리.
“시간은 충분히 드렸잖아요.”
안쪽에서 들리는 목소리였다. 우리는 사장실로 들어섰다. 재갈 문 소리. 탁자 위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팬티 차림의 남자.
“거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죠. 그래야 사람이지. 안 그래요?”
나는 이 목소리를 안다. 뺨을 후려치는 소리가 났다. 뽀리가 사장에게 친구 분이 도착했다고 전했다. 사장이 나를 돌아보고는 방긋 웃었다.
“왔냐?”
셜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