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으로 가라앉기》 8

윤아무개 단상

by 윤아무개

내면의 지옥과 심연을 분별하기.


“빛을 따라가면 돼.” 그렇게 말하며 빛을 가리키던 손가락이 돌연 내 두 눈을 찌른다.


작은 성취라도 필요한 시기다. 아직 올해는 삼 분의 일밖에 지나지 않았다. 작고 잦은 성취로 쌓아나가기. 나아가기.


사유가 글의 뇌라면 정서는 심장이다. 둘 중 무엇이 중요한지 따지는 것보다 어떻게 둘 다 글 속에 살릴지 고민하는 것이 먼저 아닌가? 지엽적인 비교가 전체의 온전한 형태를 망가뜨리는 폐해는 널렸다.


그는 얼음만 남은 컵에 꽂힌 빨대를 빙빙 돌렸다. 얼음이 달각거렸다. 언제 일어나야 할지 몰라 조바심이 일는 소리.


상상력에 대한 단상―작업을 할 때면 나는 두 가지 상상력을 생각하곤 한다. 무한한 상상력과 구체적 상상력. 무한한 상상력은 세계의 외연을 넓히고 구체적 상상력은 세계의 내부를 설계한다. 무한한 상상력은 세상을 바꾸고 구체적 상상력은 세상을 보듬는다.


외출을 했습니다. 오후 두 시가 넘은 시간이었고, 최고 기온 26도로 어느덧 초여름이라 할 만한 날씨더군요. 환한 햇살은 뜨겁고 눈부셨고 덕분에 모든 그림자들은 한층 더 선명해진 듯했습니다. 길바닥에 드리운 나무 그림자를 보며 문득 나무는 닿지 못할 데까지 닿고 싶어 그림자를 뻗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럼 그것은 비단 나무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세상 만물의, 나와 당신의 이야기이기도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은 제게 다소 낯선 것이었습니다. 요즘의 제가 떠올릴 생각이라기에는 감상적이라고 느꼈습니다. 이십대 초반의, 그러니까 시를 쓰기 위해 온몸의 세포를 활짝 열어 온 세상을 빨아들이려던 그 시절의 저였다면 몰라도요. 돌이켜보면 저는 제가 생각한 것보다 감상적인 사람이었고, 제가 기대한 것보다 냉소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문득 심통이 난 저는 세상 만물이 길바닥에 가 닿고 싶을 이유는 없다고, 만약 그렇다면 드러눕고 싶을 뿐이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머리 한쪽으로는, 사랑하는 사람의 그림자에 자신의 그림자 일부를 포개어 놓은 한 사람의 어여쁜 장면을 그렸습니다. 저로서는 다소 낯선 이런 문장들을 이제 닫습니다. 어느덧 노트의 마지막 페이지라서요. 노트를 채운 수많은 글들과는 좀 다른 느낌의 글로 한 권을 마무리한다니 감회가 남다르네요. 또 봅시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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