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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소낙비 Feb 02. 2022

봄동 2탄

제철 봄동이 가져다준 소소한 행복…

라떼다. 예전에는 냉장고가 없던 시절 찬장이라는 것에다가 반찬이나 부엌살림들을 이리저리 쟁여두었던 기억이 있다. 오래 묵은 밑반찬이나 상하기 직전인 음식들, 빛바랜 식기들이 들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 그것처럼 글도 신선도가 중요하다. 글감이 떠올라 써놓은 따스한 한 편의 글을 서랍에 넣어 묵히면 금방 데쳐서 무쳐놓은 취나물처럼 바로 먹지 않는 한 신선함도 알싸한 향기도 어디론가 날아가 버려 마치 냉장고에 들어가 버린 반찬들처럼 애들이 안 먹으니 쪼잔한 내 차지다. 그러다가 뱃살이 이 지경이다. 하지만 한 편의 허접한 글이라도 애정이 있는 한 어디론가 남겨졌으면 하는 바람에 다시 꺼내 참기름도 치고 온기도 불어넣어 재활용한다. 이번 글처럼…



지난 번 봄동으로 맛난 배추전을 해먹은 기억이 유달리 좋았다랄까? 마트에서 싱싱한 봄동을 보자말자 그냥 카트에 담았다. 어떻게 뭘 해먹을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사오면 해먹어지는 것이다. 지난 번처럼 지짐을 부쳐먹든, 데쳐서 나물을 해먹든 싱싱한 봄동은 그 자체로도 식욕을 돋게 만들어 주는 것이라 아내에게 약간의 의지만 있으면 우리 모두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냉장고에 남아 있던 도토리묵 반 개, 엊그제 사와서 데쳐놓은 생미역과 초장, 사진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그나마 싱싱해 보였던 명태에 무와 콩나물을 넣어 칼칼하게 끓여낸 생태탕과 약간 묵은 내 나는 막걸리 한 병을 고이 와인잔에 부어 놓으니 그 자체로 진수성찬이었다. 가족과 맛난 제철 봄동 뭐가 더 필요해…what else?


2022년 1월부터 두 딸들은 헬스장엘 다닌다. 대학을 들어가자 말자 첫째 녀석이 몸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탓이기도 하고 옷을 예쁘게 입고 싶은 욕심의 발로일것이다. 둘째 녀석도 덩달아 다이어트를 선언하고 목표를 세워 ‘얼마를 감량하면 10만원의 인센티브를 받기로 하고’ 헬스장을 열심히 다닌다. 바람직하다. 또 그때 열심히 해보는 하나의 과정이라 생각한다. 단 아쉬운 건 이제 가끔 네명이 모두 모여 맛난 제철음식을 함께 하지 못함이지만, 각자의 이유를 존중한다.


열심히 먹어도 보고, 열심히 살도 빼보고, 열심히 사랑도 하고, 열심히 시련의 아픔을 소주로 씻어보기도 하면서 세상을 알아갈 것이다. 책을 많이 읽어도, 다큐에 나오는 온갖 세상의 풍경과 사람들을 본다해도 자기가 직접 겪어보고 체득한 그 무엇보다 소중할 수 없다고 믿는다. 그건 자기만의 경험이고 자기의 인생이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걸 다 경험하고 모든 걸 다 이해할 순없다. 꽂히면 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남들에게 피해를 주거나, 감빵갈 정도만 아니라면 말이다. 허나 돈이 많이 드는 것은 직접 벌어서 해야 한다. 부모라고 나의 미래까지 땡겨서 해 줄 이유는 없다.


예전 백세주 광고에서 머리 검은 젊은이가 백발의 노로에게 회초리를 드는 모습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백세주를 열심히 마시지 않아서 자식이 자기보다 훨씬 늙었다나 우쨌다나…뭐 그런 이야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관리의 중요성과 백세주의 효용을 뻥튀기한 것이겠지만 지금은 훨씬 더 관리가 중요한 시절이 되어버렸다. 20대에서 60중반까지에서의 나이는 그냥 말 그대로 숫자의 차이일뿐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몸의 상태가 달라진다. 물론 예측 가능한, 통계적인 수치로서의 인생이 남은 시간은 20~30대가 길다고 우길수는 있지만 태어난 것의 순서와 가는 순서는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 행복하지 않더라고 인생은 흘러간다. 오늘이 금방 어제가 된다. 마냥 행복해질 수 만도 없는 시대이다. 인생의 목표가 그냥 많이 모으고 높은 곳에 올라서 천년 만년 사는게 아니라면 오늘부터 나와 주위를 둘러보고 무엇이 진정 필요한지 생각해보자.


작은 봄동 겉절이와 마트에서 사온 도토리묵 한 접시, 막걸리 한 잔에 취한다. 오늘 시간이 멈춘다해도 별 불만은 없다.



어제는 오랜만에 장모님이 집에 오셨다. 몸이 불편하시기도 하고 집이 깔끔해져야 하는, 명절이기도 한 몇 가지 조건이 맞았다. 장모님댁에서 모이기는 하지만 깔끔하게 치워진 거실에서 매운 닭발, 먹태와 소맥 한 잔에 웃음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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