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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소낙비 Feb 18. 2022

싫어하는 것들

여전히 모른다. 여전히 헤맨다. 여전히 사랑한다.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한다. 얼굴도 하얗고, 손도 가느다랗고 옷도 화사시했다.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고 눈에 들기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다고, 믿는다. 서로의 공통점을 찾고 서로의 호감을 얻기위해 나혼자 노력했나? 여전히 상대방의 마음을 알길 없음은 처음만난 그날이나 20년을 넘게 산 지금이나 매 마찬가지인거 같다. 여자와 남자가 만나고 사랑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애들을 낳고 기르고 삶의 많은 순간들은 같이 하지만 여전히 사람의 마음은, 여자의 마음은 쉽게 알기 어려운 미지의 영역이다.


무슨 음식을 좋아할까? 술 한잔 하자고하면 속보이나? 영화는 어떤 장르를 좋아할까?

그사람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고민한다. 그사람이 좋아할 스타일을 골라 멋을 내보지만 머리스타일은 항상 만지면 만질 수 록 이상하다. 원판이 이상한 것은 지금도 잘모르고 머리스타일만 탓하고 애먼 거울만 째려본다. 장고속에 악수라고 고르고 골라서 같이 해보지만 영 반응이 시원찮은 거 같을 땐 마음이 깨름직하다.

그래도 다행히 결혼이라는 결과를 만들어 낸 내 자신에 뿌듯해 하지만 알고보면 그게 시작인 것은 해봐야 아는 것이다. 잡은 물고기가 아니었다. 내가 잡힌것 같다. ㅋ 열심히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만을 찾기 위해 머리 싸맿던 시간보다 훨씬 더 길고 긴 시간을 감정의 줄다리기를 해가며 육체와 정신의 안식을 찾기위한 가정이라고 생각하지만 임신이 시작되면서부터는 더욱 더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들에 더 열심이가 된 나를 본다.


싸움이 시작된다. 대화라는 이름의 감정찌르기가 나의 이성을 송두리채 흔들어 놓는다. 말이 안통한다고 생각한다. 대화로 해결이 요원하니 그냥 참거나 피한다. 그리곤 다시 그 사람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찾아서 화해와 용서의 절묘한 타이밍을 찾는다. “치맥어때?” 그리고도 지금까지 이놈의 전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사랑전쟁…


한참이 지나고서야 알게 되었다. 진정 필요한 것은 좋아하는 것을 해주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찾아다니는 것보다 상대방이 싫어하는 것이 뭔지를 아는게 싸움을 피하는 방법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싸움을 억지로 피하진 않지만 풀리지 않는 감정싸움으로 사이는 틀어진다. 감정싸움의 대부분은 상대방이 꼴보기 싫은 것이다. 내가, 그 사람이 서로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거나 싫어하는 행동을 하는 것으로 감정의 불씨는 시작된다. 그리곤 말이 감정을 담아 찌르기 시작하면 전쟁은 시작된다. 진짜 인생이…


자주 싸워본 놈이 싸울 줄 아는 것은 당연하듯, 영화 올드보이에서 최민식이 15년간 독방에서 홀로 연마한 싸움의 기술은 재미고 영화 그 자체. 책으로, 영상으로, 말로써 아무리 배워봐야 직접 겪어보는 것에 비하겠는가. 변수가 많은 현실에서 직접 변수들을 경험하고 변수를 제어하고 변수를 분석하는 것만이 최상의 방법임을, ‘백문이 불여일견이고 백견이 불여일행?’이라고, 부부싸움도 감정의 변수도 나의 반응과 성찰, 분석과 행동에 달려 있다고 믿는다.


이제 성인이 된 첫째 딸과의 싸움도 이제부터 본격적인 시작이다. 사춘기가 지난 딸들은 지들이 이미 성인인양 세상을 이해하고 스스로의 판단에 문제없음을 주장하기 시작한다. “내가 애예요?”

육아가 시작되면서부터 부모의 마음이란 좋은 것만, 좋은 상황만을 만들어 주고 싶은 것이겠지만 상황이 조건이 그렇지 못한 것도 있었고 굳이 쇼윈도의 그것처럼 싸움을 숨기거나 형편을 꾸민다고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가끔의 날것 그대로의 싸움과 형편을 제법 보여준 지난 시간들이었다. 부모자식간의 관계도 역시 서로에게 좋은 조건과 좋은 말만 한다고 좋아지지는 않는다. 결국 서로에게 싫은 소리도 하고 관계와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해 주는 것이 부모의 기본적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엔 가정, 학교에서나 마을 혹은 친구들사이에서 배울 수 있었던 관계속 자신의 발견이 힘든 요즘의 혹독한 풍요와 고립의 시대를 살아가는 딸에게 해주는 부모의 역할은 생각보다 어렵고 복잡하다.


좋아하는 것들과 싫어하는 것들은 서로 서로 다르다. 상황이지 사람이 아니다. 관계이지 혼자만의 이해가 아니다. 변화속 체험이고 끝없는 배움이다. 그래서 삶은 고달프고 힘들지만 살아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나의 생각과 감정이 굳세어지고 유연해지면서 싫어하는 것들을 알려고 노력하고 피하고 줄다리기를 시작한다. 내가 맞추기 시작하고 상대방이 이해하면 관계는 더욱 더 유연해진다. 격해진만큼 부드러워지는 가죽세공처럼 인생의 흐름이 자연스러워진다고 느낀다.


글쓰기를 하면서도 이러한 공식은 매 마찬가지다. 브런치의 어느 글처럼 와이프가 안봐서 편하다고 하는 말에 100프로 공감하지만 애정결핍인 나에게는 마누라의 사랑어린 검열을 피하긴 어렵고 결국 싫어하는 내용들과 싫어하는 글들은 내맘과 서랍속에 고이 간직한다. 젠장, 쓸게 없네…


“그렇게 인생을 잘 알고 상대방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 그러냐?”


그렇다. 안다고 다 바뀌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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