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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소낙비 Mar 15. 2022

휴가를 명 받았습니다.

아닌 밤중에 1박2일의 휴가를 받고는…충성

"누구전화?"

"YJ(익명의 친구이름)"

"왜 ××씨 무슨 일있데?"

"아니, 그냥 심심해서 전화해본거래"


친구 YJ는 요즘 어렵다. 경제적으로도 심적으로도, 나도 나이가 들면서 친구들과의 만남이 여러 가지로 뜸해지고 가끔의 안부전화에도 예전처럼 기쁜 마음으로 약속시간을 잡지 않는 것은 코로나 핑계이기도 하지만 삶의 환경이 바뀌고 생각이 달라지고 대화가 점점 막히고 그 옛날의 추억으로만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것도 별로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부터 였다.


한때 가장 부러운 친구가 YJ였다. 당시 불우하고 궁핍했던 나의 가정환경과 가장 다르기도 하고 YJ어머니가 잘해주셨기도 한 이유로 대학을 졸업하고 같이 유럽배낭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던 친구가 이제는 여러가지로 힘들어하는 모습에 가끔 격려도 해주고 나의 어려웠던 귀농시절을 이야기해주며 희망이 생길거라 소줏잔을 기울여보지만 막상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진 않다.


먼저 연락을 잘 하지 않던 그 친구가 전화기를 든 것에 이유가 있어 보였던 마누라는

"내일 쉬면 하루 갔다오삼"

오호라, 어쩌다 출장길에 들르는 눈치 보이는 하루가 아니라 진짜 허락받은 외박이 생겼다.

"가는 길에 토요일 자전거 좀 타고와도 되남?"

"그러시던지"

쿨하게 허락해준 마누라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평소 집에서 잔소리를 많이 하거나 질척거리면 이렇듯 뜻밖의 횡재같은 내침을 당할 수 있다.


기혼 자전거라이더들에겐 백두대간보다 넘기 힘든 고개가 있으니 이름하여 '문턱령'과 '마눌령'인데 아싸라비야 언제인가 기억도 하기 힘든 외박겸 타지 라이딩이라니 코로나시대엔 사라져 버린 장례식 밤샘 고스톱문화같은, 외로운 늙다리 50대에겐 신병시절 부대문을 지나 신선한 사제공기를 마시는 듯한 기분으로 차를 몰고 대구로 향했다.


별다른 안주 없이 시장표 족발에 서비스로 넣어준 돼지껍데기로 소줏잔을 나누다 밤이 깊었고, 다음날 부시시한 얼굴과 숙취에도 대구에서 유명한 헐티재-팔조령코스를 돌기 위해 자전거를 꺼내 들었다.


부산은 언덕과 고갯길이 많다. 양산과 밀양쪽으로 가면 높은 산과 유명한 업힐코스들이 많은 관계로 살을 뺀다는 핑계로 자전거에 입문, 열심히 오르막을 오르며 땀을 흘리고 정신수양을 하지만 살을 점점 마블링의 그것처럼 지방과 근육의 강한 결합만 생길 뿐 빠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건 열심히 땀을 흘린 보상으로 더 열심히 챙겨 먹기 때문이라는 누구나 아는 비밀이다. 여튼 부산에서 자전거를 싣고 어디론가 라이딩을 떠난 건 처음이었고 친구를 핑계삼아, 글을 써보기도 할 요량으로 대구의 명소를 찾아 나섰다.


금호강변 자전거길에서 신천대로옆으로 나있는 신천자전거길을 따라 가창면소재지를 지나면 가창댐을 지나 헐티재로 오르는 장장 13키로 정도되는 오르막 코스다. 나름 부산도 자전거길이  정비되있다고 생각하던 동네촌놈이 90년도 대학시절을 보낸 대구에서 처음 자전거를 타보니 상전벽해라는 말이 실감나는 하루였다. 신천자전거길은 대구 도심지를 가르는, 아주  정비되고 보행길과 자전거길이 나름 구분되어진 훌륭한 코스였지만 숙취를 해소하기 위해 처음가는 코스에서 해장국 맛집을 찾기란 어려운 . 결국 자전거가  보이는 편의점 창가에 앉아서 컵라면과 김밥으로 간단한 아침을 해결하고 헐티재로 향했다. 항상 급해서  먹고 보면 나중에  나은 식당과 먹거리가 보이는  왜인가? 주유소도 마찬가지다.


비가 많이 안 온 탓이겠지만, 가창댐은 수위가 낮아져 있었고 봄철 행락객들이 많지 않은 식당을 지나치며 얼마 지나지 않으면 필 벚꽃이래야 활기를 띄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페달을 돌리며 초라한 행색의 헐티재 비석을 뒤로하고 쏜살같이 다음 코스인 팔조령으로 향했다.


또 다른 친구의 전화로 잠시 숨을 고른다.

"어디야?"

"어, 대구"

"대구는 우얀(무슨) 일로?"

"어제 YJ랑 한 잔하고 자전거타러 나왔다"

"야, 팔자 핐네"... ... ...


팔자는 폈는데 다리는 잘 안펴진다. 오랜만의 라이딩이어서인지 헐티재를 우습게 본 탓인지 점심 먹으러 급하게 들어간 도로변 손짜장집에서 잠시의 휴식과 보급으로 다시 힘을 내본다. 힘이 드는 시기인가보다 경제적이든 심리적이든 50대를 경쾌하게 살아가기엔 쉽지 않다. 사실 선거가 끝나고 잠시의 허탈함에 가슴이 답답하고 미래가 걱정되기도 한 마음에 이렇듯 바람을 쐬며 땀을 흘리는 것과 별개로 나라의 미래라는 것이 한 사람의 개인적 성향과 정치적 집단의 일방적 호도로 쉽사리 무너지지 않을 거라는 자기암시와 그렇게 교체를 외치는 이들의 간절함에 대한 댓가와 타당성도 내가 잘 모르는, 아니면 나의 또 다른 편향에서부터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팔조령 오르는 길을 잠시 헤맸다. 누구나 헤맨다.


팔조령 뒷길 오르막은 정말 '정신과 시간의 방'에서 혼자 페달을 돌리는 착각에 빠진다. 평지없는 약한 경사의 업힐 4-5키로정도를 오르는 것은 마치 강한 앞바람부는 낙동강자전거길을 라이딩하는 것처럼 사람 미치게 하는 매력이 있다. 내려야 하나 마나의 갈등이 들게하지만 차라리 아주 힘들면 핑계라도 대 볼텐데, 사는 것도 힘들면 과감히 내려놓고 쉴 수 있어야 하지만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아빠라는 이름으로 남자들은 눈물 한 방울 마음대로 흘리지도 남의 어깨에 기대어 보지도 못하는 심정처럼 팔조령 업힐은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힘들게 하는 코스였다.


헐티재와 팔조령은 꼭대기에 뭐가 없어 허전하다. 대게의 산행이나 업힐의 정점인 꼭대기에 비석이나 전망대가 있어야 하는데 여긴 헐티재의 비석도 허름하고 출입도 무지막지한 락카로 금지를 적어 놓았다. 그래서 뭐 찍은 사진이 없어서 이렇듯 주저리주저리 설명충이지만 차라리 어떨 땐 사진없는 글과 설명으로도 충분한 아날로그세대다.


팔조령휴게소엔 로드자전거를 타고 주말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하다. 자전거를 타기 좋은 토요일 대구 청도의 헐팔코스를 마누라의 허락으로 기분 좋은 라이딩과 생각을 글로 남긴다.


휴가, 고맙다. 내가 잘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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