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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소낙비 Mar 23. 2022

뽑기 인형

나에게로 뽑혀준 너희들을 사랑한다.

아닌 밤중에 뽑기 인형이다. 새벽에 일어나 이리저리 집안을 까치발로 다니는 나의 레이다에 걸린 것은 눈이 커다란 토끼처럼 보이는 인형이었다. 과장된 눈과 쫑긋한 귀모양으로 추정하건데 토끼라는 것이지 정확한 정체를 알지 못한다. 대부분의 속어나 줄인말들을 잘못 알아듣거나 잘 못쓰게 되면 외계아저씨가 되어 버리는 것처럼 이 요상한 인형도 어쩌면 굉장히 유명한 인싸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세상 대부분의 유명한 것들이 나에게서 멀어진지 오래지만 여전히 요즘 애들은 뭐에 관심이 있나 요상한 눈초리로 유튜브나 기사를 검색해 댄다.


꽝손인 나와는 달리 첫째 딸래미는 뽑기에 재능이 있어 보인다. 가끔 몇 천원 아닌 돈으로도 몇 개씩의 인형을 뽑아오고 제 친구들이 놓친 인형을 뽑아서 의기양양해 하는 모습에서 눈썰미가 좋은 것인지 손재주가 좋은 것인지 몇 천원이 아닌 거금을 몰래 투자해 버린 과거의 시간을 숨기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여튼 재능이 있는 것으로 넘긴다. 그렇게 딸래미가 뽑아온 인형중에 갑자기 컴컴한 새벽 거실 소파에서 눈에 들어온 토끼 인형을 꼼꼼히 살펴보며 쓰다듬어 본다.


오호라, 허접한 인형 하나라고 치부하기엔 마치 알칸타라의 감촉처럼 보들보들 탱글탱글한 것이 제법 만듦새가 느껴지고 박음질 또한 꼼꼼하니 금방 또 딸래미의 눈썰미와 재능을 혼자 감탄하곤 하는 나와 아내에게 우리 두 딸들은 여러가지로의 업그레이드품들이다. 좋은 의미로나 나쁜 의미로도…


고집도 세고 사는(buy) 것도 좋아하고 공부도 노력의 양보다 결과가 나보다 훨씬 나은 첫째 녀석과 키도 나보다 큰 듯하고 욕도 나보다 잘하고 그림솜씨도 나의 어줍잖은 실력보다 사교육으로 업그레이드된 둘째 딸을 보며 귀농해서 실패라고 규정되어 버린 꽃 농사보단 역시 자식농사에는 나름 재능이 있어 보이는 우리 부부에게 와준 두 딸들의 존재를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굳이 어린 시절의 나와 아내를 비춰보지 않더라도 최대한 당근과 채찍을 버무려 가족이라는 이름속에 현재를 살아가는 오늘이 즐겁다.


“아빠한테 넘겨라”

“싫어…5,000원…만원”

“2,000원 싫음 말고”


혼자만의 상상으로 이 인형을 어떻게 쟁취해서 내 허접한 백팩에 달아 볼까하는 궁리와 50넘은 나이에 백팩에 인형이라니라는 아내의 잔소리가 오버랩되는 새벽…간간히 들려오는 아내의 백색소음같은 코골이를 사랑한다.


p.s 생각보다 쉽게, 쿨하게 인형을 내준 딸래미에게 놀랐지만 결국 여러 인형중 소파에 굴러 버려진 놈을 좋다고..그래도 고마워

백팩에 잘 달아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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