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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소낙비 Apr 03. 2022

밥 먹고 합시다.

밥, 다섯번 째 이야기

일요일 아침이 바쁘다. 눈부시게 쨍한 아침햇살에 자전거도 타야하고 글도 올려야 하기에 어제 과하게 먹은 식사의 후유증으로 아침은 간단히 사과랑 커피를 준비해 놓고 아이패드를 펼쳤다. 또 밥이야기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누구나 다 아는 말처럼, 밥을 먹는 것은 그 어려운 금강산 구경도 뒷전으로 밀어버리는 어찌보면 금강산을 밥도 안먹고 올라가는 무모함을 비꼬는 말처럼도 들리는 소리다. 삼시세끼를 다 근사하게 챙겨먹기엔 시간도 돈도 몸무게 관리도 어려워지는 요즘이지만 집밥으로 내온 정성가득한 반찬과 밥은 그 어떤 위로보다도 따스하고 사랑스럽다. 물론 집밥의 정체는 아내이자 엄마다. 세상이 바뀌고 성역할이 바뀌어 누구나가 집밥을 내올 수 있고 직접 만들지 않더라고 같이 식사를 할 수 있는 2022년을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집은 아내와 엄마의 역할이 중요한 ‘밥심가족’이다.


쌀밥과 반찬거리가 아니더라도 식사는 할 수 있다. 라면에 김치도 근사한 한끼의 식사이며, 몇 십만원짜리 오마카세나 5성급 호텔 뷔페도 뱃속에서는 똑같은 영양덩어리일 뿐 입으로 눈으로 식사를 즐기는데 각자의 경제력을 과시해 본 들 화장실에서의 배설은 똑같다. 그래도 먹어 보고 싶긴하다.

어제는 장모님과 아내랑 급하게 여수를 다녀왔다. 오랜만에 바람도 쐬드릴 겸 가까운 벚꽃구경보다는 부산에도 흔해빠진 바닷구경과 도에도 있는 해상케이블카를 멀리 여수까지 가서 현지인 맛집이라는 ‘삼방촌장어구이’에서 가성비오지는 장어(양념)구이와 맛보기 홍어삼합으로는 양이 안차 1만오천원짜리 반접시, 서비스로 나온 장어탕으로 꽉채운 3인분의 늦은 점심을 먹었다. 그렇게 장모님과의 추억 한 페이지에 여수에서 타본 해상케이블카와 장어구이, 향일암앞에 위치한 생뚱맞은 찻집에서의 진한 쌍화차 한 잔이 기록되어지는 하루였다. 그래도 아침에 화장실에 다녀오면 끝인 배부른 점심과 집에 돌아와 마신 맥주는 삶의 안식과 평화를 가져다 주는 고마운 기억과 여유인지라 아주 가끔의 장모님과의 외식여행과 출장 다녀온 남편에게 차려주는 따스한 집밥에서 헤어나오기 어렵다.


누군가 나에게 정성스런 밥을 차려주고 같이 먹으면서 기억을 공유하고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고마움은 세상 어떤 성취감보다 내겐 중요하다. 그렇다고 아내에게 밥을 강요하거나 딸내미들에게 같이 외식가자고 여행같이 가자고 조르기엔 지금까지 받아먹은 집밥과 아이들이 같이해준 고마운 기억의 조각들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하다.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쓸데없는 감정소모로 힘들어 하기도 했지만 그런 전쟁같은 시간속에 서서히 전우애가 생기고 가족이란 이름속에 사랑과 애틋함이 있는 우리는 여전히 고마움과 감사함과는 별개로 또 싸우고 삐진다. 그리고 또 같이 밥을 먹는다.


가끔 부질없는 생각이겠지만 애들 어렸을 때 천사같은 모습의 딸들을 양손에 꼭 붙들고 길가의 벚꽃을 보던 다시 오지 않을 그 행복했던 시간들처럼 오랜시간이 지나 노년의 나에게 지금의 일상의 기억들이 고맙고 행복한 추억이기를 바라며 여전히 처음 만난 그 순간처럼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내와 같이 보내는 시간이 즐겁다.


“마눌 설겆이는 내가 할게, 그동안 밥해주느라 고생 많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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