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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소낙비 Apr 10. 2022

밥을 넣어주다.

밥, 여섯번째 이야기

글을 쓰기엔 겨울이 좋다. 고즈넉한 새벽 어둠이 깔리면 자판을 두드리는 맛도 나고, 아침 산책은 평상시 잘쓰지 않는 머리까지 상쾌한 바람으로 각성시켜주는 시간이며, 겨우내 각종 글감을 어린 시절 배깔고 만화책보면서 히히거리며 까먹던 화톳불의 군밤같이 단내나는 재미로 찾아다녔던 그 몇개월의 시간이 봄바람불고 엉덩이를 덜썩일 수 밖에 없는 활동의 계절이 시작되면서 생각보다는 운동에 치중하는 봄엔 글쓰기는 여러가지 이유로 뒷전이 되어간다.


집에 며칠 차이로 확진자가 두명이나 생겼고, 음성확인을 몇 번이나 고서 출장을 핑계로 가출을 감행했다.

좁은 집안에서 확진자둘과 아내랑 같이 보내는 것은 힘들기도 할 뿐더러 나도 같이 걸리면 꼬박 일주일의 격리를 감당할 자신도 없었다. 핑계는 좋았다..하지만 출장과 가출은 다르다. 며칠 모텔방을 전전하며 식사를 해결해야 하고 들어가도 싶어도 못들어 가는 집과 마누라에 대한 그리움으로 주말을 핑계로 거창한 가출은 마무리되었다. 집이 제일이다.


화장실은 어쩔수 없이 마스크를 쓰고서라도 가야하는 필수장소이기에 같이 쓴다. 딸 둘은 지들방에서 못나온다. 다 큰 녀석들이 좁은 방안에서 이층침대와 책상하나를 두고 일주일의 격리라니 참 마음이 씁쓸하다. 방이라도 하나 더 있었으면 각자 조금 더 넓은 공간에서 답답한 격리생활을 이겨낼 수 있을텐데. 아니 화장실이라도 두개라면 휠씬 더 낫지않았을까?


목소리가 의외로 다들 밝다. 비대면 생활이다보니 가끔 필요한 대화는 전화통화다.

"뭐 맛있는거 사왔어?"

아빠의 안부보다는 뭐 먹을거 없나의 궁금함이 항상 앞서는, 밥에 목숨거는 우리 가족 아니랄까봐 딸들은 힘든 격리의 시간보다는 엄마가 때마다 넣어주는 맛난 음식과 자유시간, 잔소리 듣지 않는 격리를 즐기는 모습이다. 젠장 괜히 나만 걱정했나?

그렇다. 우리가족은 격리는 철저히, 식사는 더 철저하게 먹고싶은 것들을 엄마에게 요구하며 즐기고들 있었다..요놈들 보라 아주 살판이 났구만..게다가 체중계까지 들고 들어가 관리해가며 먹는 확--찐자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대학 새내기를 보자니 웃음을 멈출 수없다.


넣어주는 밥을 즐기는 격리시간과 잔소리없는 자유시간도 다음주 화요일이면 끝난다. 물론 오늘밤 자정에 첫째 녀석은 해방이라 벌써 몇 시간 남았는지 세고 있다. 여러가지로 재미있었던 한주간의 격리생활과 가출, 엄마의 사랑이 담긴 음식봉사로 마무리되어 가는 일요일이다.


일요일 아침 가출시간으로 불어버린 체중조절을 핑계로 자전거를 끌고 동네를 한바퀴 돌았다. 한 숨돌리려 벤치에 앉아 하늘을 보니 오랜만에 나뭇가지에 새집이 보였다. 청명한 하늘 빛과 조그마한 새집의 모습속에 격리생활의 딸 둘이 받아먹는 모이를 넣어주는 아내의 정성이 오버랩되는 것은 왜일까?


그렇게 부모가 되고 자식이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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