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짧은듯 긴 여름방학이 지나갔다.
짧았던 아이의 여름방학이 끝났다.
"엄마 실내화는 빨았어? 언제 빨거야?"
개학전날, 방학내내 현관 구석에 처박힌 실내화주머니를 본 아이는 내게 다그치며 말했다.
방학 숙제를 개학전날 겨우 다 해놓은 주제에
이젠 더는 엄마의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더해졌는지
기세등등한 목소리로 나를 다그치는 것이었다.
엄마를 흉내내는 아이의 모습이 웃겼지만,
" 응! 그건 엄마가 알아서 할게~ 넌 너의 할일을 하렴"이라고 대답해주었다.
여기서 권위가 무너지면 안 될 것 같단 얄팍한 생각에서 한 대답이었다.
여태껏 실내화를 빨지 않은 나도 문제면서 말이다.
평상시 나와 아이의 대화에서 화자만 바뀐 상황
아이가 귀엽다고 생각 들면서도 아이도 평소 내가 한 말들이 이렇게 들렸으려나 싶었다.
그렇게 또 한 번 나는 아이에게서 나를 마주했다.
학기말쯤, 선생님의 심난한 전화 한 통으로 아이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맘 졸이면 달려간 전문기관에서 아이가 ADHD경계선에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후로 매주 상담을 받으면서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던 아이의 행동들을 시간이 지날수록 이해하게 되었고,
상담선생님의 얘기들은 나에게 하는 말과 다름이 없다는 걸 근래 들어서야 깨닫게 되었다.
아이의 행동과 인지들에 대한 분석과 상담은 나에게 적용해도 전혀 무방하지 않다는 것을
시간이 한참 흐른 지금에서야 깨닫고 있는 중이다.
아마 검사는 안 해봤지만, 나 역시 성인 ADHD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가검진테스트를 해보면 어느 항목도 속하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이니 이 정도면 검사를 굳이 해보지 않아도 될듯하다.
그리고 아이의 상담을 통해 나 역시 상담을 받고 있고,
아이를 통해 나의 모습을 되돌이키며 조금씩 변화되고 있으니 이 정도면 충분하단 생각이 든다.
가끔 뭔지 모를 불안감과, 사소한 일로 시작된 화가 가라앉지 않을 땐 경미한 우울증 약 정도면
평정심이 유지되었고 아이와 함께하는 게 어렵지 않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으니
이만하면 되지 싶다.
방학을 하기 전 늦은 밤 편지 한 장을 썼다.
한참 서이초선생님의 사건으로 많은 선생님들이 힘들어하는 시기이기도 했고
(땡볕 아래 매주 주말 집회에 수만 명이 모인다고 한다. 한 번은 함께하고 싶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아이와 함께 방학을 알차게 보냄으로써
좀 더 성숙한 인간으로 개학을 맞이하게 하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명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반에 한두 명씩 있다는 손이 많이 가는 아이, 그 아이가 바로 우리 아이였고
우리 아이는 앞서 얘기했든 ADHD경계선에 있는 아이다.
아이에 대해 얘기를 할 땐 늘 꼭 경계선이고 우리 아인 약을 먹진 않고 상담으로 대체하면서 치료받고 있다고
하고 있다. 약을 먹을 만큼은 아니라는 나 스스로에게 전하는 위로이기도 하다.
먹던 안 먹던 사회성과 공감력은 떨어지고 ADHD경계선 애매한 그 말도 결국 ADHD란 꼬리표가 붙는 건
매한가지일 텐데 말이다.
학기 초 상담시간에 이런 나의 성향을 정확히 알아차리신 게 지금의 선생님이시다.
학교에서 불시에 오는 전화 한 통에도 가슴 벌렁거리며 살짝 건드리면 쏟아질 듯 눈물을 흘리는 마음 약한 엄마인걸 아셨는지, 정말 특별한 이슈가 없는 이상은 연락을 하지 않으셨다.
내가 걱정하는 것들에 대해선 그건 저의 몫이라 제가 잘 이끌어가겠다고도 얘기해 주신 선생님이셨다.
집에서 케어하고 부모가 알아야 할 부분에 대해서만 얘기하는 분이셨다.
알림장에도 안내사항과 공지들이 정성 가득 빼곡하게, 상세하게 적어주시는 꼼꼼하시 선생님이신데
부모의 마음을 알아차리시고, 그에 맞게 대응해 주시는 게 감사할 따름이다.
통화 말미에는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좋아질 거고 몇 가지 문제들만 가정에서 계속 다뤄주시면
될 것 같다고 용기를 주시는데 울컥하곤 했다.
그랬기에 한 학기를 너무나 수고로이 보내신 선생님께 선물은 못하는 현실에서
편지 한 통 적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작은 편지에 담긴 내 마음이 선생님께 가 닿았기를
한 학기도 너무 고생하신 선생님의 수고에 감사함이 전달되기를
그렇게 굳건하고, 강력한 의지를 다지면서 시작된 여름방학이었다.
아이와 함께 하고 싶었던 것도, 해주고 싶었던 것도 많았던 여름방학
조금 성숙한 인간다운 모습으로 개학을 맞이하고 지내고 있는진 모르겠다.
불태우려 했던 방학이었지만 생각한 것만큼 많은 것을 해주진 못한 아쉬움도 남았고,
아이의 학기 중의 스트레스를 확 풀어주고, 실컷 놀고 뛰고 경험하게 해주려 했는데
아이는 좋아했지만, 내가 세운 계획들을 다 채우진 못해서 아쉬운 맘이 크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