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칭찬과 공감, 위로 난 그게 필요했다.
상담 초창기 아이의 성향에 대해 선생님이 얘기해 주시는 것 중 하나가 아이가 자존감이 낮다는 것이다.
자존감이 낮기에, 옆의 친구들끼리 하는 말도 본인에게 하는 말인 줄 알고 오해하기도 했고,
지나가면서 아이가 귀여워 웃는 사람에게도 자기를 보고 비웃는다고 했던 아이다.
그럴 때면, 그건 비웃는 게 아니고 귀여워서 그런 거다 너의 어떤 행동이 귀여워 보였던 거니 기분 상해하지 말라고 얘기해주곤 했다. 하지만 아인 그런 위로의 말에도 쉬이 화를 삭이지 못했다.
친구의 딸인 아이와 하루종일 놀다가 무언가 자기를 기분 나쁘게 한일이 있었는데, 한참을 지나서까지
그때의 일들을 되새기면서 종일 그야말로 소가 되새김질 하듯 말을 이어가며 본인의 화를 더욱 키워가는 듯 한 일도 있었다.
정말 여러 번을 그 일에 대해 설명해 주고,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해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아이에게 결국 나의 인내심도 바닥을 쳐서 호통을 치고 말았다.
"그래서 어떡하라고, 이제 그만 좀 하자"
"엄만 충분히 들어주었고, 공감해 주었고 이해해 주고 방법을 알려줬는데 아직까지도 그러면 어떡하니
이제 그만해 제발"
말을 내뱉은 순간부터 마음 한 구석에서 후회가 밀려들었다.
내가 들었던 그 말, 그래서 듣기 싫었던 말, 응어리진 내 가슴이 더욱 단단히 뭉쳐져서 도무지 헤어 나올 수 없는 지경으로 만들었던 그 말
엄마에게 듣던 말,
그 말을 나도 아이에게 하고 말았다.
그러면서 그래도 나는 엄마만큼 내 마음을 방치하진 않았고, 나의 어려움과 외로움을 모른 척하지 않았다.
난 매주 아이의 성장을 위해 먼 길의 기관을 수년을 다니고 있다. 또 난 아이의 마음을 공감하고 이해해 주려고 얼마나 애를 쓰는지 모른다. 그리고 또 아이랑 함께 할 수 있는 친구들과 동생들을 만들기 위해 한 노력들, 아이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기 위해 주말마다 여행과 놀거리를 찾아 쏘다녔고, 아이가 배우고 싶어 하고 무엇이라도 좋아하는 듯하면 무리를 해서라도 보내주곤 했다. 난 이렇게 노력한 엄마였다고
나의 엄마랑 다른 엄마라고 난 노력했다고, 노력했다고.....
사람은 자신이 없을 때 말이 길어진다고 했던가, 바로 내가 그런 것 같다.
노력은 했지만, 우리 엄마는 엄마의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을 거고, 그리고 난 나의 주어진 환경에서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것을 했을 뿐일 텐데~
중요한 건 성인이 되어서 아이에게 남겨질 상처되는 말들을 나도 똑같이 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나이를 먹고 나서도 가슴에 맺힌 상처의 말들은 지워지지 않은 채 여전히 나의 일부로 남아 문득문득
소리 없이 올라와 나를 뒤집어 놓는다는 것을 내가 너무도 잘 아는데 그런 말을 나도 모르게, 아니 알면서도 아이를 향해 던져버리고 말았다.
그런 말들은 부끄럽지만 한두 번은 아니다.
다른 사람을 웃기는 걸 좋아하는 아이는 내가 했던 상처의 말들까지도 끄집어내 웃기면서 얘기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든다. 엄마를 웃기려 꺼낸 거지만 여전히 아이는 그 말들을 잊지 않고 있었던 거다.
내가 여전히 엄마의 말을 잊지 않고 있는 것처럼
엄마에게 난 그런 아픈 말들보다는,
잘한다는 칭찬이 듣고 싶었고, 힘들었구나 하는 위로의 말이 듣고 싶었다.
그 말 한마디가 난 필요했다.
그러나 녹록지 않은 살림에 자식을 키우고 선비 같은 남편과 살려니 자신도 모르게 드세져버린 엄마였다.
그리고 그 시대가 흔히들 그러했듯 잘 먹이고, 잘 가르치면 다인줄 아셨다고 한다. 그래서 말보다 좀 더 잘 살게 해 주기 위해 무던히 아끼고 열심히 아등바등 살려 노력하셨단다.
그리 살면서 젊은 시절의 곱디고운 가녀린 예쁜 아가씨는 억센 아줌마로 변했고 상냥한 엄마의 마음과 말투는 누구에도 지지 않으려는 단단하고 강한 쇠뭉치처럼 변했다.
그런 여유롭지 않는 엄마에게서 다정한 말을 듣기는 어쩜 사치였을지도 모른다 생각이 들긴 한다.
나이가 들면서 이렇게 조금씩 엄마를 이해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지만, 그래도 나의 이해의 벽을 가끔씩 금을 내고 있는 것은 동생들에겐 엄만 너그러웠던 것 같은 기억들이다. 큰 아이라고 나는 혼이 나고 맞았지만 동생들에겐 별로 그러지 않으셨다.
그 당시에도 차별이라고 느꼈었다. 그런 차별이 나에겐 더욱 상처로 다가온 것 같다.
단지 난 엄마의 칭찬과 위로를 받고 싶던 어린아이였을 뿐인데,
엄마옆에 나란히 누운 동생들을 제치고 엄마옆에서 자면서 포근함을 누려보고 싶었을 뿐인데
몇 살 차이 안나는 동생들에 밀려 어린아이부터 지금까지도 난 엄마의 시선에서 늘 멀리 있단 생각이 든다.
가까이 살고 계신 엄마인데도 멀게만 느껴지는 엄마, 여전히 난 엄마에게 그런 말을 듣고 싶다.
나의 수다스러운 별것 아닌 얘기에도 집중하면서 들어주는 엄마가 그립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어린 내 마음엔 여전히 가까움이 채워지지 않은 공허함이 남아
엄마가 옆에 있지만, 난 여전히 엄마가 그립다.
우리 아이에겐 지금의 내가 느끼는 감정을 돌려주지 않고 싶다.
옆에 있는데도 엄마가 그리운 그 사무친 마음을 들게 해주고 싶지가 않다.
높은 자존감과 부모가 안겨주는 평안한 지지를 받고 아이가 자라가 길
엄마의 그리움에 사무침으로 변하지 않기를